정신이 육체에 머물지 못하고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날이 있다. 이왕 날개를 달았으면 훨훨 날아올라 깜짝 놀랄 만큼 창의적이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든지 아니면 크레바스 틈 사이로 깊이 내려가 오래된 생각과 고민에 심도를 더해 철학으로 승화시키든지 하면 좋을 텐데, 결국은 생활권 안에서 깔짝거린다. 오늘이 그랬다.
차가운 바람에 손끝이 시려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 넣고 어슬렁어슬렁 산책을 하는데, 머릿속은 온통 밥 생각이었다. 점심 메뉴는 무엇으로 할지, 냉장고 속에는 뭐가 있는지, 가본 빵집과 안 가본 빵집 중 어디를 들릴지, 집 앞 마트 두 곳 중 내가 찾는 요거트와 치즈를 파는 곳은 어딘지. 그렇게 발걸음을 돌려 도착한 마트에서 먹거리를 고르면서는 오늘 끝내야 할 업무에 대해 걱정했다. 마감을 앞둔 작업을 끝내느라 키보드를 두드리면서는 보고 싶은 유튜브 채널의 최신 영상을 떠올렸고, 유튜브 보면서는 이따 공부 진도를 어디까지 뺄지 고민했다.
3월 환절기의 공기를, 마트 진열대의 플레인요거트를, 책상 위의 키보드를, 휴대폰 속 구독 채널을 톡톡 건드리고 있는 내 손끝에서 잠시도 머무르지 못하고 혼자 설레발치며 저만치 앞서가 있는 나의 영혼. 정신머리를 두고 온 게 아니라 먼저 보낸 오늘 온종일, 유독 어느 순간에도 제대로 집중하지 못했다. 그래서 점심밥을 제대로 씹고 삼키긴 했는지, 일은 실수 없이 마무리했는지, 10분도 안 되는 영상을 끝까지 보긴 했는지 모르겠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공부한다고 책은 있는 대로 죄다 펴 놓고선 이렇게 글 쓰는 중. 그러면서 동시에 침대 맡에 둔 에세이의 뒷부분이 궁금해 못 견디겠고. 아마 잠들기 전 책 읽으면서는 내일을 계획하겠지. 그러다 펼쳐 놓은 보따리를 제대로 추스르지도 못한 채 까무룩 잠.
행복은 '지금' '여기' 충실함에 있다는데, 어느 날은 성공하고 어느 날은 실패한다. 물론 성공한 날도 핍진은 말도 안 되고 몰입도 과하며 겨우 집중이란 단어를 붙일 수 있을까 말까. 손끝에 애기띠 두르듯 정신을 매달고 겨우 어르고 달래며 몇 시간 보내고 나면, 그래도 집중했다는 뿌듯함이 드는 거다. 10대, 20대에 비하면 허들이 참 많이 낮아졌다. 너그러워진 건지, 나태해진 건지. 지금 여기 내가 하고 있고 해야 하는 일에 혼이 쏙 빠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내 온 마음이 손끝에 오래오래 머무르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