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스스로에게 안부를 묻는다. 밤새 잠은 잘 잤는지 기분은 어떤지 식욕은 도는지 첫 끼로 무얼 먹고 싶은지 몸 어디가 불편하진 않는지 밖에 나가 햇볕을 쬐고 싶은지 아니면 커튼을 내리고 따뜻한 그늘 속에 있고 싶은지. 막 잠이 깬 이불속에서 내가 나를 섬세하게 살핀다.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언제 할지 정하고, 나머지는 내키는 때에 내키는 것을 하기로 한다. 요즘 나는 나를 잘 돌보고 있고, 그래서 안녕이 계속된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문득 떠오르는 한 아이가 있다. 이건 그 아이에게 안부를 전하고 싶은데 방법을 몰라 쓰는 글. 그 아이와 함께 했던 시간과 공간에서 내가 너무 멀리 떠나와 버렸기에 그간 자연스럽게 잊고 살았으나 완전한 망각은 없는 것일까. 때론 기억은 내구성이 강하다. 켜켜이 쌓인 먼지만 잘 걷어내면, 비록 조각조각일지라도 선명하다. 그래서 그 조각 하나를 꺼내 들여다보면,
10살쯤 되었을까, 한여름 장대비가 무섭게 쏟아지던 날의 아이의 모습. 수도가 있는 마당과 옥상, 화장실을 셋 또는 넷의 살림살이가 함께 쓰는 집. 밤마다 지붕 위로 쥐들이 뛰어다니고, 화장실은 끔찍하게 더러웠으며, 한낮에도 전등을 켜지 않으면 어두컴컴했던 그 집. 아이가 거기 살았다. 그리고 그렇게 장대비가 내리던 날, 그 누추하고 형편없던 한 칸에 딸린 작은 쪽마루 끝에 걸터앉아 아이는 한참 비 구경을 했다.
묵직하게 떨어지던 빗줄기들을, 굉음과 함께 집 곳곳을 때리며 사정없이 쏟아지던, 그리고 옥상에서부터 시멘트 계단을 타고 내려와 마당의 하수구로 폭포수처럼 밀려 내려가던 그 빗줄기들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니, 아이는 생각보다는 감정에 더 예민했다. 그마저도 한쪽으로 치우친 것이었는데, 감출 것도 없는데 들킬까 봐 조마조마했고 겁낼 것도 없는데 두려워했다. 그래서 낯을 가렸고, 눈을 잘 마주치지 못했으며, 표현에 서투르고 솔직하지 못해 말수가 적었다. 잘 웃지도 울지도 않았다. 떼쓰지 않아 주변 사람들은 어른스럽다고 했지만, 사실은 아이답지 못한 거였다.
아이에겐 가족이 있었다. 깊은 밤 술에 취한 아이의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오면 난데없이 집안은 시끄러워졌고 고성 끝에 쨍그랑 무언가 박살나는 소리가 난 뒤에야 고요가 찾아왔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 보면 깨진 창의 금이 간 부분에는 누런 테이프가, 아버지의 오른손에는 반창고가 덕지덕지 발라져 있었다. 어머니는 어린 자식들을 앞에 앉혀두고 한탄하며 가슴을 쳤다. 아이의 아버지는 늘 화가 나 있었고, 아이의 어머니는 늘 울었다. 과거의 후회로 현재를 망치는 사람은 어머니였고, 현재의 불만으로 미래를 망치는 사람은 아버지였다. 긍정의 결핍은 즉각적이고 구체적인 형태로 나타났는데, 그것은 가난이었다.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던 가난을, 아이는 원망하지 않았다. 대신 수치스러워했다.
아이는 수치심이란 감정을 같은 반 단짝에게서 처음 배웠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그 나잇대의 아이들에게서 기대하는 바와는 달리 때론 잔인하고 흉악하다. 유복했던 짝꿍과 동등하게 놀만큼 아이의 호주머니는 풍족하지 못했다. 아이가 사양을 하고 거부를 해도 짝꿍은 선심 쓰듯 떡볶이를 사고 문방구에 데려갔다. 집으로 초대해 갖가지 인형과 장난감을 보여주고, 처음 보는 과일과 과자들을 내왔다. 그러면서 덧붙인 못된 말과 행동들로 아이가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기도록 만들었다. 아이가 떡볶이나 인형보다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나 '꽃들에게 희망을' 같은 책에 더 관심이 많은 걸 알자, 그 책들을 담보로 아이를 교묘하게 이용했다. 그 짝꿍과는 결국 다투다시피 하고 멀어졌지만, 그 뒤로 만난 친구들에게 아이는 그만큼 마음을 열지 못했다. 집에 데려가지도 않았고, 부모님께 소개하지도 않았다. 가난을, 부끄러운 것들을 들키지 않게 언제나 조심했다. 모르는 걸 모른다고, 해본 적 없는 걸 해본 적 없다고 말하는 상황들을 맞닥뜨리지 않게 늘 피하고, 숨었다.
아이는 아이로 남지 않았고 무럭무럭 자라서 어른이 되었다. 감정의 기저에 깊이 뿌리내린 결핍에 대한 수치심은 여전하고 거기서 조금씩 돋아나는 우울을 가지치기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지만, 몸이 커진 만큼 마음도 커진 건지 다행히도 자기혐오나 자격지심에 사로잡히진 않았다. 제법 어울리는 페르소나를 찾아 세상 속에 섞여 다양한 관계를 맺으며 무난하게 살아가고 있다. 때론 무너지지만, 남들만큼이다. 더구나 요즘엔 자기 자신을 잘 돌본다. 아침마다 스스로에게 안부인사도 건넨다. 그래서 그 어른은 20년도 훨씬 지나고 나서야 그 가여운 아이에게 안부를 묻고 싶다. 그리고 궁금하다. 누구나 겪었을 그 과정, 서툰 아이가 덜 서툰 어른이 되는 그 지난한 과정을 사람들은 다들 어떻게 견뎌온 건지. 스스로에게도 마찬가지다. 날 오늘로 이끌어 온 것은 무엇이었을까. 나빠지지 않고 나아져서일까. 혼자 또는 함께 하는 경험들이, 또 책과 음악과 여행과 좋은 사람들이 십시일반 날 도운 걸까. 모르겠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그리고 42,195km 중 어디쯤 온 걸까. 그건 더 모르겠다. 그냥 하던 대로 할 수밖에. 내게 남은 날이 50일일지 50년일지 알 수는 없지만 분명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안부를 묻고 싶을 것이기에, 미리 챙겨보려고 한다. 매일 아침 꼬박꼬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