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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예강 Feb 27. 2020

038. 감쪽같이 사라지는 법

  공기가 쾌청하고 볕이 따뜻해서 천변 벤치에 앉아 책 읽기에 참 좋았다. 몸에 찬 기운이 돌 때쯤에 일어나 군고구마 사러 가벼운 발걸음을 옮기는데 갑자기 든 생각. 죽으면 새들은 땅으로 떨어지고 물고기들은 수면 위로 떠오를 텐데, 왜 난 한 번도 본 적이 없을까, 자연사한 그들의 사체를. 죽음과 동시에 감쪽같이 사라지는 방법이라도 알고 있는 건지. 


  일 때문에 며칠 동안 경기도 외곽의 낯선 지역으로 출퇴근했던 적이 있었다. 첫날, 갈 때는 주변에 신경 쓸 겨를이 없어 몰랐는데 깊은 밤 그곳을 빠져나오면서 사위를 살펴보니 가로등 하나 없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겨우 가늠할 수 있는 거라곤 이름 모를 야산의 흐릿한 실루엣뿐인 거다. 함께 차를 탔던 동료에게 여기 밤에 혼자 있으면 무섭겠다고 하자, 그는 의미심장한 말투로 이 어둠 속에 뭐가 있는지 내일 밝을 때 확인해 보라고 했다. 


  다음 날, 물론 확인해 봤다. 야산 밑 허허벌판 텅 비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그곳은 별천지, 아니 무덤 천지였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무덤이 야트막한 언덕 전체를 빼곡히 뒤덮고 있었는데, 그게 뭔가 충격적이었다. 공동묘지를 처음 본 것도 아닌데, 왜였을까. 묻혀 있는 사람도 새겨진 이름도 저마다 달랐겠지만 전혀 구분되지 않는 똑같은 형태의 봉분과 비석들. 게다가 마치 모눈종이에 대고 찍어낸 듯 가로세로 일정한 간격으로 반듯하게 늘어선 모습. 그리고, 그 단조롭고 인위적인 질서를 파괴하는 강렬한 색깔들-각각의 무덤 앞에는 저마다 꽃다발이 몇 개씩 놓여 있었는데, 그 빨갛고 파랗고 노란 더미들이 내뿜는 극도의 화려함은 멀리서 보니 마치 서낭당 오색띠처럼 묘하고 기이했다. 어둠에 가리어졌던 공간을 밝을 때 확인해보니, 정말 여기 밤에 혼자 있으면 무섭겠다.  


  기계적인 조의. 박물관처럼 진열된 죽음. 사람만이 죽음을 죽음 자체로 전시한다. 나 죽었다. 비록 땅 속에서(또는 항아리 속에서) 썩고 있지만, 나 여기 있다. 몇 번째 줄 몇 번째 칸. 몇 번째 방 몇 번째 층. … 나의 죽음은 내가 사는 동안에는 쉬쉬해야 하지만내가 죽고 나면 남겨진 사람들에겐 중요한 화두이길 바란다. 오래 추억되고 많이 회자될수록 더 가치 있는 사람인 건가. 죽은 자는 잊히길 원치 않고, 산 자들 역시 당분간이라도 기억하려고 노력한다. 그 누구라도, 그 삶이 어떠했든. 근데 죽음을 기리는 방식이나 형태가 몰개성적이다 못해 때론 폭력적으로 느껴진다. 


  걸리는 시간은 다 다르겠지만, 모든 건 빛바래고 흐려지고 지워지고 아스러지다가 종국엔 사라지기 마련이다. 먹먹하고 슬프지만 필연적이고 또 필요하다. 아무것도 아닌 나는, 그래서 탄천의 새들이나 물고기들처럼 감쪽같이 사라지고 싶다. 실버타운이나 병원에 있지 않다면 난 분명 홀로 집에서 생을 마감하게 될 텐데, 죽으면 그뿐이라지만 그래도 낯선 사람에게 한참만에 발견되고 싶지는 않은 거다. 죽을 때 누가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든지, 죽고 난 뒤 누군가가 얼마간은 슬퍼해줬으면 좋겠다든지 하는 마음과는 상관없다. 그저 주인 때문에 몇십 년간 고단했을 내 육신이 죽음 앞에서 비참해지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 죽자마자 연기나 가루가 되어 사라진다면 좋을 텐데. 타노스 건틀렛 손가락 한 방처럼. 딱.


  아직까지는 해결책이 없으니, 일단 사는 동안엔 몸에 좋고 맛도 좋은 군고구마나 많이 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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