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자고 일하고 공부하는 것을 혼자 한다. 책 읽고 음악 듣고 영화 보고 멍 때리는 것을 혼자 한다. 산책하고 장 보고 당근케이크 맛집 찾는 것을 혼자 한다. 안팎으로 하는 대부분의 것을 혼자 한다. 그래서 조금 외롭고 따분한데, 몹시 평온하고 만족스럽다.
그래도 일 때문에 회의에 참석해야 할 때도 있고, 내가 고독사 할까 걱정해주는 고마운 존재들에게 생존신고도 해야 하기에 가끔은 현대인처럼 차려 입고 평소의 행동반경을 넘어서까지 이동하곤 한다. 그렇게 얼마간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고 말을 섞는 시간을 보내고 집에 돌아오면, 참, 사회성이라는 것도 근육과 비슷하구나 싶은 거다. 매일 돌보지 않으면 쑥 빠져버리는.
분명 난 작년까지만 해도 10년 차 직장인이었고, 그 뜻은 전국 방방곡곡에 포진하고 있는 온갖 종류의 인간군상들을 만나면서 터득한 경험치가 웬만큼은 된다는 건데. ...칩거 생활 몇 개월 만에 죄다 리셋되어 버린 느낌이다. 뭐냐면, 자꾸 집에 와서 그날 나의 말과 행동들, 그 중에서도 정말 별 거 아니고 하찮고 보잘 것 없고 중요도 제로의 곁다리 같았던 말과 행동들을 괜히 곱씹으며 상대방이 어떻게 반응했는지, 왜 그렇게 반응했는지, 그래서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느꼈을지를 고민하곤 하는 거다.(전화해서 물어볼 수도 없고) 세세한 거 하나하나를 복기하고 의미 부여하면서 나 이러다가 개복치 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레벨100에서 천 명의 적군과 싸울 때에 내가 입었던 타격이 너무 커서 탈영병 마냥 전장에서 호다닥 도망쳐 나왔지만, 총과 수류탄을 버린 레벨1에서 열 명의 졸개들과 싸우는 것도 쉽지 않다. 아, 전쟁 같은 삶이여 생활이여 인간관계여. 히키코모리가 되지 않게 적당히 밖으로 나돌아야겠다. 사실 요새 보고 싶은 사람도 있고, 새로 시작하고 싶은 운동도 있고, 듣고 싶은 수업도 있는데 그 마음들이 사라지기 전에 코로나19가 썩 꺼져버렸으면. 겨울은 가고 봄이 온단 말이다.
갑분롤(러코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