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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예강 May 16. 2020

043. 습도 높음, 벌레 많음

  잰걸음에 금세 살갗이 촉촉해졌다. 조금 찐득해지기도 했다. 하루살이들이 달려들었다. 마스크로 얼굴을 한 겹 씌운 것이 다행스러웠다. 무게와 부피가 없는 작은 벌레에 대한 가벼운 공포가 있다. 어린 시절 다녔던 피아노 학원에는 레슨을 기다리는 아이들이 시간을 때울 수 있도록 동화책이나 잡지, 만화책들이 구비되어 있었는데 그때 읽은 장르:공포의 만화책이 트라우마가 되었다. 거미가 콧구멍을 통해 몸속으로 들어가 알을 깠고 나중에는 거미떼들이 실을 자아 숙주의 온몸을 미라처럼 꽁꽁 묶어 죽여버린다는 내용이었다. 


  천변 허공에 무리를 지어 그 자리를 윙윙 맴도는 하루살이 떼들을 못 보고 부딪히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얼른 휘휘 손을 저어 쫓아버리게 되는데, 그 스윙에 온몸을 가격 당한 미물들은 사고를 당하지 않은 것들에 비해 건강하지 못한가. 골절이나 뇌진탕 같은 후유증을 겪는가. 그래서 수명이 주는가. 하루살이가 한나절살이나 반나절살이가 되는가. 쓸데없는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결국에는 살아야 할 이유와 죽어야 할 이유까지 이어졌다. 선택의 문제는 아니었다. 그저 분명한 이유를 한 가지씩이라도 댈 수 있으면, 일상 속 사소한 생각과 태도와 행동에서 주저함은 덜고 분명함은 더할 수 있을 듯해서. 진정성 여부와 상관없이 이유를 주렁주렁 달고 살았던 때도 분명히 있었는데. 아니다, 진지해지지 말자. 심각해지지 말자. 그새 벌레를 피해 더 빨라진 걸음으로 인해 땀을 더 흘렸다. 시원하고 상큼한 에이드가 당겼다. 처음 가본 카페에서 자몽에이드를 테이크아웃했다. 속이 서늘해지며 온몸이 리프레시되는 느낌. 내 마음에도 에이드를 주입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요새 한동안 안 읽던 소설을 읽었다. 이제 한동안 안 읽던 시가 읽고 싶다. 동경과 질투를 불러일으키는 문장들을 너무 자주 맞닥뜨리면 내가 너무 투명하게 드러난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쓰겠다고 말했나 보다. 이제는 쓰지 않겠다고 말해야겠다. 그럼 언젠가는 쓸 수 있을지도 모르지. 청개구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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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동안 안 듣던 음악도 다시 듣자. 까먹은 노래들을 망각의 웅덩이에서 하나씩 건져 올리는 소소한 즐거움. (원치 않은 기억도 함께 소환될 수 있음 주의.)

  

https://www.youtube.com/watch?v=htsH7X5lti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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