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짤막하게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예강 Jun 26. 2020

046. 컴퍼스, 동그라미

  꼿꼿이 바로 선 몸을 축으로 해서 컴퍼스처럼 가상의 동그라미를 그린다. 동그라미 안에 들인 사람과 아닌 사람을 대하는 태도. 아버지에 대한 어머니의 불만은 아버지의 그 태도에 있었다. 좋게 말하면 가족에게는 엄격하지만 타인에게는 관대한. 나쁘게 말하면 가족은 낮추고 타인은 높이는. 그나마 자녀들은 가끔 자랑거리라도 됐으나, 아내는 평생 무시의 대상이었다. 그 진절머리 나는 관계를 한 집에 살며 20년 넘게 보고 자랐다. 난 완벽하게 어머니의 편이었으나, 


  어쩔 수 없이 아버지의 자식인 나는 부계로부터 몇 가지 신체적 특징과 함께 그 태도도 함께 물려받았다. 가족과 연인과 친구- 곁을 내어준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이런저런 잣대를 들이밀었고 그에 부합하지 않으면 폄하하고 괄시했으며 딱딱하고 냉정하게 굴었다. 혹은 남보다도 무관심했다. 내 속의 일이었으나 눈빛과 표정과 말투를 통해 겉으로 비집고 나오기도 했겠지. 그건 관계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싶고 우월감을 느끼고 싶어 한, 어리고 어리석은 태도였다. 그와는 반대로 어느 정도의 거리두기가 되는 사회적 관계망에서 나는 배려 있고 친절하며 때론 바보처럼 당하기만 하는 숙맥이었다. 인간의 감정과 상황별 대화법을 익힌 A.I.처럼 잘도 칭찬하고 위로하고 공감하는 것이다. 


  소중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서 난 컴퍼스의 각을 좁혔다. 한껏 웅크려 가능한 최소의 예각으로. 10년 전 고향을 떠나면서는 가족을, 1년 전 서울을 떠나면서는 친구를 밀어냈다. 이제 그들에게도 난 따뜻한 사람일 수 있다. 볼품없는 동그라미는 너무 작아서 내가 겨우 서 있을 뿐이다. 앉지도 눕지도 못하는 공간이고, 쓰러지면 누구도 일으켜주지 않아 스스로 일어서야 하는 공간이라 다리에 힘을 꽉 준다. 몇 개월 동안 내가 만난 사람의 대부분은 일로 맺은 관계였다. 그래, 요새 난 완벽히 혼자임을 느낀다. 낮에는 익명의 사람들 속에서 외로움을, 밤에는 홀로 누운 침대 속에서 두려움을 느낀다. 그래서 후회하냐고?... 아니. 


https://www.youtube.com/watch?v=QgPNGyJdYw8

매거진의 이전글 045. 소강상태, 장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