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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욱근 Mar 23. 2020

독일 교수 테일러 씨가 본 한국 대학생

 독일 바이로이트 대학의 테일러 교수가 자료화면을 띄우며 말했다. “한국 20-30대 청년들의 움직임 속에서 아주 흥미로운 사실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이들의 움직임은 곤충들과 매우 흡사합니다. 곤충 중에서도 다리가 여섯 개 이상인 이른바 ‘벌레’라고 불리는 녀석들과 가깝죠.” 영상 속의 한국 청년들은 특정 시간이 되면 일제히 한 건물로 몰려들었다. 그 숫자가 어마어마해서 건물이 진공청소기처럼 사람들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테일러 교수가 포인터로 화면을 정지시키며 말을 이어갔다. “어릴 적 개미에게 과자를 던져 준 적이 있나요? 불과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과자가 거뭇한 개미들로 수북하게 덮이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과자는 아주 귀한 먹일 테니까요. 한국 청년들도 어딘가 괜찮은 먹이가 있다고 알려지면 너나 할 것 없이 몰려듭니다. 이들의 먹이는 주로 종로나 노량진의 학원가에서 분포되어 있죠.” 몇몇 학생들이 신기한 듯 고개를 들었다.


“곤충들의 사회는 위계질서와 사회 체계가 명확하게 정립된 사회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회학적 관점에서는 탈코트 파슨스의 구조 기능주의로 설명하곤 하죠.” 구조 기능주의는 사회가 하나의 사회 체계로서 개념화되고, 사회 각 부분의 특징과 역할이 체계의 유지에 공헌한다는 관점에서 설명하는 이론이다. “초등 교과과정에 개미의 집을 보는 시간이 있는 걸로 압니다. 일개미들은 먹이를 물어 집에 있는 여왕개미에게 바치고, 여왕개미가 먹다 남은 음식을 아래층으로 보내 어린 애벌레들을 먹이고…” 테일러 교수가 잠시 뜸을 들이다 목청을 높여 말했다. “한국 청년들도 여왕개미가 좋아할 만한 먹잇감을 구하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그들에게 여왕개미는 기업이고 먹이는 토익 점수나 자격증 같은 것이 되겠죠. 여왕개미는 수많은 개미 중에서 좋은 능력을 가진 개미만 골라내 집으로 들여보냅니다. 자신의 집을 탄탄하게 지켜내고 발전시킬 수 있는 좋은 일개미들을 말이죠.” 


노란 머리의 앤드류가 손을 들고 말했다. “교수님, 어떻게 인간을 개미와 비유할 수 있죠?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는 명확한 차이를 이성 체계라고 배웠습니다. 세계 최고의 벌집보다 세계 최악의 건축가가 지은 집이 더 나은 이유는 건축가의 생각이 들어갔기 때문이라 합니다. 인간을 벌레로 설명한다는 건…” 테일러 교수가 앤드류 쪽으로 고개를 돌려 말했다. “좋은 질문이네요. 이들에게도 생각이란 것이 있죠. 그래서 벌레와 달리 한국 청년의 76%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자신이 왜 이런 능력을 키워야 하는지 의문을 가진답니다. 토익 점수, 자격증. 사실 바람에 휩쓸려갈 나부랭이 같은 것들 이거든요. 토익 점수가 높다고 영어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포토샵 자격증이 있다고 디자인 감각이 좋은 것도 아닙니다. 조금 더 정확한 묘사로는 껍질이 되겠네요. 알맹이는 사라진, 먹고 남은 땅콩의 껍질…”


강의실 안은 찬물을 끼얹은 듯 숙연함이 흘렀다. 테일러 교수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미소를 보인다. “하지만 한국 청년들은 굴레 같은 사회 속에서도 자신의 존재를 잊지 않는 방법을 터득한 듯합니다. 바로 껍질을 활용해서 말입니다.” 테일러 교수가 화면에 사진을 하나 띄었다. 작지만 단단해 보이는 번데기 사진이었다. “그들은 껍질을 하나하나 모아 둡니다. 낱개로는 바람에 날아갈 부스러기지만 그 껍질이 모으고 모아 자신을 둘러쌀 단단한 방패를 만듭니다. 그리고 그 껍질 속으로 들어가 번데기가 되길 자처합니다.” 학생들이 의아하다는 표 정이로 교수를 쳐다보았다. 교수가 말했다. “번데기는 애벌레가 나비로 변화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니까요.” 한국에서는 번데기의 과정을 거치는 사람을 다른 말로 ‘취준생’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제이슨이 말했다. “그럼 그들은 언제까지 번데기로 살아야 하는 거죠?” “껍질이 떨어질 때까지.” 테일러 교수가 교단에서 내려와 학생들 사이를 걸었다. “번데기 속의 벌레들이 잠을 잔다고 생각하나요? 번데기의 특징이 뭔지 아십니까? 에프킬라에 맞아 죽는 나방이 될지 사진에 찍히는 호랑나비과 될지 아무도 모른다는 겁니다. 그들은 껍질 속에서 끊임없이 꿈틀거리며 자신의 근육들을 성장시킵니다. 넓은 들판을 날아다니는 나비가 되기 위해서 말입니다. 껍질 때문에 보이지 않아 다른 사람들은 그들이 마냥 쉬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들은 가장 힘든 시간을 견디고 있는 것이죠. 그렇게 1-2년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그 꿈틀거림에 껍질이 자연스레 벗겨질 때쯤 그들은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죠. 


한국의 유리 천장도 녹여낼 뜨거운 불꽃을 품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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