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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욱근 Mar 23. 2020

징크스란 무엇인가

 “이것만 먹고 가. 밥을 먹어야 공부가 되지.” 사방으로 물방울을 튀기며 머리를 말리고 있는 성규에게 엄마가 김밥을 내밀었다. 그때 성규가 고장 난 기계처럼 멈칫거렸다. 드라이기 바람이 성규의 머리를 떠나 허공을 향한다. 김밥을 보자 한 달 전 버스 창문을 넘고 건물로 달려볼까 고민했던 순간이 성규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그날도 성규네 집에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침밥 전쟁이 한창이었다. 마흔두 살 최미숙 씨는 밥을 얹은 숟가락을 무기처럼 들이밀었고, 철부지 아들 성규는 방패 같이 앙 다문 입술로 엄마의 공격에 대적했다. 책가방 맨 자식 키우는 집이면 열에 아홉은 겪는다는 아침밥 전쟁이었다. 샤워를 하고 나온 성규가 식탁 위를 보고도 곧장 방으로 들어가자 엄마는 김밥이 담긴 접시를 들고 방으로 향했다. 이십 여분쯤 흘렀을까, 엄마가 히죽거리며 방을 나왔다. 학교로 향하는 버스 안, 성규는 뱃속에서는 두 번째 전쟁이 일어났다. 나가려는 자와 막으려는 자의 치열한 전투였다. 황사도 다 끝났다던데, 어찌나 하늘이 노랗던지. 성규는 눈 앞에 있는 버스 손잡이를 있는 힘껏 쥐어 잡으며 다짐했다. 다시는, 다시는 아침밥을 먹지 않겠다고. 


징크스는 체 위에 걸러진 돌과 닮아 있다. 체는 고운 모래를 아래로 흘려보내고 둔탁한 돌만 덩그러니 남겨 놓는다. 우리의 머리도 마찬가지다. 행복했던 순간은 최근의 일을 떠올리지만, 불행한 기억은 아주 어린 시절의 일도 그날의 환경, 공기, 감정선까지 생생히 기억한다. 체 위에 박힌 돌은 아무리 위에서 모래를 더 뿌린다 한들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다. 징크스도 마찬가지다. 한 번 생긴 징크스는 웬만큼 좋은 기억이 덮지 않고 서야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밥만 먹고 운동만 하는 스포츠 선수도 징크스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다. 


돌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노력도, 무력도 아닌 시간이다. 풀지도 못할 문제를 붙잡고 시간을 허비할 수험생은 없다. 과감하게 넘긴 후 나머지 문제를 풀고 다시 돌아오는 것이 시험의 요령이다. 징크스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다. 못 풀 것 같던 문제도 나중에 다시 보면 거짓말처럼 실마리가 풀리곤 하기 때문이다. 몇 달 후 성규는 또다시 배가 아팠다. 아침밥을 먹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이상하다 싶어 곰곰이 생각해보니 어제 야식으로 교촌 레드 캄보를 시켜 먹은 탓인 듯하다. 그때 불현듯 떠오르는 기억, 김밥을 먹고 배가 아팠던 아침, 그 전날 밤 성규는 불닭 까르보를 먹고 잤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흔히 징크스를 두고 애증의 관계라고 말한다. 죽어도 따라다닐 것 같던 녀석이 어처구니없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어르신에게는 징크스라는 단어가 적용되지 않는 것 같다. 할아버지께 풀리지 않는 고민을 이야기하면 그럴 수도 있지 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신다. 어쩌면 할아버지는 징크스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해결될, 훗날 좋은 추억으로 남을 것을 알고 계셨을지도 모른다. 거대한 얼음은 무작정 깨려고 하기보다 녹게 내버려 두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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