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소 Aug 18. 2022

한 접시 빠에야에 담긴 것들, 고은세

30분 인터뷰 - 고은세

언제나 저는 위인전 보다 동네 친구들과의 술래잡기, 신기해 보이는 가게에서 만난 사장님들과의 짧은 이야기들로 인생을 배워왔습니다. 불확실성과 불안함 속에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당신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그리고 다양한 삶의 형태가 세상 밖으로 더 많이 나오길 바랍니다. 우리 30분만 이야기합시다.




2022. 03. 28. 21:33, 제주 숨골


디너를 마감하고 마들렌과 차를 마시며 그는 내 앞에 앉아있다. 

인터뷰가 어려울 거라며 연거푸 걱정하던 그에게, 답변이 어려울 때면 우리가 만든 멋진 조명의 빛을 한 번 쳐다보면 답이 생각날 거라고 팁을 주었다. 그는 언제나 그랬듯 조심스레 최선을 다해서 이야기를 들려줄 준비를 한다.





Q. 요즘 어떻게 지내나. 무슨 생각을 하며 지내는지 궁금하다.


과거에 비해 건강한 삶을 살고 있다. 개인 화실을 올해 초에 오픈해서 운영하는 화두가 크고, 그걸 잘 운영하는 게 최대 관심사이다. 똑같은 무게로 주말부부로 전환되면서 아이와 아내, 가족 생각도 많이 한다.

감사할 일도 너무 많다. 사건사고 없고, 빠르진 않지만 야금야금 잘 되어가고 있다. 축구선수 이영표가 한 말도 생각난다.





Q. 요즘 어떻게 지내나. 무슨 생각을 하며 지내는지 궁금하다.


감각적으로 살고 있다. 어린애처럼 당장 눈에 보이는 거, 귀에 들리는 거, 맛에서 느껴지는 거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느껴보고 있다. 어떤 근거가 있어서 좋아하는 게 아니라 감각적으로 좋은 것들을 보고 들으면서 느끼면서 살고 있다. 제일 많이 하는 생각은, 당장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이 감각들에 반응하는 ‘나’를 생각하고 있다. 내가 느끼는 모든 감각들을 해석하는 데에 시간을 쓰고 있다. 




Q. 왜 그런 해석의 시간들이 필요하게 되었나? 어떤 이유가 있나?


그동안 열심히 일하며 길을 걸어왔는데, 그 길을 걷는 이유, 길을 정하는 근거들에는 내가 좋아하는 것이 여기에 고려되어 지지 않았었다. 지금 내가 서있는 곳의 근거를 잃어버렸다.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어떤 길을 걸어야 하는지 잃어버렸다. 그래서 지금은 그 실마리를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Q.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이 일을 하기 전과 후 삶의 변화가 있는지. 있다면 어떤 변화인가 궁금하다.


제주 동문시장과 오일장에서 오징어나 꽃게, 유채나물과 같은 풀떼기들을 주방으로 가져와서 불과 칼로 한번 가공하여 나의 몫을 조금 올려 음식을 파는 장사를 하고 있다. 요즘 잘 된다. 토끼도 두 마리 키우고, 파키라 녹색 보석 나무 귤 나무도 키우고 있다.


전과 같은 일일 수도 있고 다른 일일 수도 있다. 이전에는 내 손으로 만든다는 사실에 집착을 했었고 내 노력의 정도는 만들어낸 것과 비례한다고 생각했었다. 지금은 내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아름다운 것들에 숟가락 하나 얹고, 물 하나 주고, 가져다가 다른 사람에게 주고 있는 일을 하고 있다. 이러면서 생긴 변화가 주변에 뭐가 많아진다. 품이 넓어지는 것이다. 내 공간이라고 생각하는 곳이 넓어진 것이다. 예전엔 타인이 내 공간에 있으면 무겁고 버거웠다. 나랑 있으면 즐거워야 하고 좋아야 한다는 강박, 책임감이 있었는데 이젠 누군가 내 공간에 들어와도 편하다. 이젠 누군가 머물다가도 그 사람의 존재만큼 무겁게 느껴지진 않는다.



Q. 어떤 것이 당신을 계속 앞으로 나아가게 하나.


요즘 에너지는 제로에 가깝다. 바다 위에서 시동을 끈 배 같다.  삶은 바다 위에 떠 있는 배 같다. 항상 어디론가 흘러간다. 그래서 지금은 시동 꺼놓고 기대는 힘으로만 살고 있다. 어떤 바람이 불어오고 흘러가는지 모르지만 그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모두 내 뜻대로 할 수는 없겠지만 주변이 어떻든 내 길로만 가려고 했던 과거보다는 편안한 것 같다. 나는 어디로 가고 싶은지 들여다보고, 주변에 어떤 바람이 부는지 보면서 균형을 찾아가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 감각에 집중한다. 




Q. 본인의 인생을 드라마로 본다면, 현재 이 시기는 어떤 부분인가? 좋고 나쁨을 제외하고 표현해 봐도 좋다.


고난과 역경.(웃음) 드라마보다는 연극에 가까운 것 같고. 1막 끝나고 2막 기다리는 것 같다. 사람들 화장실 갔는데 10분 후에 올지 모르겠다.  2부가 끝인지도 모르겠고.




Q. 빠에야에 그 많은 재료를 올리는 이유는 뭔가.


요즘은 제주 식자재를 가져와 내 손을 통해 사람들에게 파는 일을 하고 있다. 중개자다. 이 다리 역할을 잘하려면 서로가 서로에게 매력적으로 보이도록 해야 한다. 살아 있는 존재 간의 만남은 마법 같은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존재와 경험이 만나면 그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틀어지게 된다. 어떠한 경험이든 어떠한 작은 변화라도. 길을 변화시킨다. 나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하나의 경험을 준다고 생각한다. 이 공간에 온 사람들은 이 식자재를 만나면서 어떤 방식으로든 조금은 다르게 살게 될 것이다. 이 사람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기 때문에 이 사람이 만나는 경험이 온전한 경험이었으면 좋겠다. 그들의 앞으로의 삶에 책임감이 있는 것 같다. 




Q. 마지막으로 세상에 어떤 걸 주고 싶고, 또 받고 싶나?


세상과 서로 온전한 경험이고 싶다.

그래서 나는 세상을 온전하게 경험하고 싶고 받아들이고 싶다. 그래서 내 인생을 이전과는 다르게 살고 싶다. 세상도 그랬으면 좋겠다. 내 존재를 온전하게 받아들여서 세상도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마음. 서로를 만나기 전과는 달랐으면 좋겠다.



Q. 정말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존재의 무게는 생각보다 너무 무겁고 힘이 있어서, 그 존재와 닿는 다른 존재들에게 항상 변화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지금 인터뷰하는 이 순간, 얘기하고 밥 먹는 하루들 그 순간들은 우리를 어떻게든 변화시켜왔다. 우리 사이의  그 숱한 변화들을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다.  그 모든 변화들을 사랑한다. 당신은 나에게 좋은 경험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좋은 경험일 것이다.  그러니 많은 행위를 하시길!







인터뷰가 끝나고, 그가 말하는 책임감이라는 단어는 이때까지 내가 여러 마음들에 붙였던 책임감이란 단어의 무게 보다 훨씬 무거워 오래 들고 서있었다. 과연 우리는 어떤 것들에 책임을 느끼며 살고 있었나.

이러한 책임감들이 조금만 더 세상 밖으로 나와도, 많은 인생들이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을까 생각했다. 한 접시의 빠에야에도 책임을 다하는 그가 만드는 모든 것을 경험하고, 또 응원하고 싶어진다. 

그리고 나의 책임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은 어떤 모양인 지 헤아려본다.




숨골 인스타그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