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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ing Ko Aug 31. 2023

우리가 헤어진 진짜 이유

J의 이야기(1)

"서로의 꿈 때문에 보내줬다?"

"하고 싶은 게 서로 다른데, 붙잡아 둘 수가 없더라고."

"그렇게 쿨하게 헤어지는 것도 신기하네."

"사실 그것도 그거지만..."


(6)

그의 오랜 친구인 J는 약 천일 가까이 장기연애를 했었다. 햇수로 몇 년인지 세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그런 오랜 시간이었지만, 그 역시 이별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단 하루, 아니 단 한 시간이 필요할 뿐이었다. 들이 이별을 결심했던 것은 너무나도 사소했다.  이상 재미가 없어져서. 꽤나 쓰레기 같은 이유처럼 보이지만, 이만큼 명료하게 설명할 수 있는 방법도 없었다. 함께 있는 순간이 단순한 시간 보내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들은 비로소 이별을 결심했다.



J의 여자친구는 그와 같은 학교의 CC(Campus Couple)였다. 학교 축제 때, 행사 부스에서 2천 원에 부스에 들렀던 이성의 번호를 무작위로 뽑을 수 있는 이벤트에 참여했던 J는  여성 분의 번호를 얻을 수 있었다. 평소의 그였다면 이런 걸로 연락이 되겠냐며 손사래를 쳤을 테지만, 속는 셈 치고 카오톡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 당시 J는 1년 간 장거리 연애로 위태롭게 유지해 온 관계를 정리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학교 선배와 바람이 나서 J와 헤어졌다는 전 여자친구의 소식을 접하자, 인간에 대한 환멸에 심신이 지쳐있는 상태였다. 슬픔보다도 일종의 배신감에 속을 썩였다. 그런 J였기에 평소였다면 무심히 지나쳤을 그 행사 부스를 '내가 기필코 너보다는 좋은 사람 만나겠다'는 분노가 조금 섞인 의지로 조심스레 들어섰던 것이었다.


안녕하세요ㅎㅎ 오늘 축제 부스에서 연락처 받은 OOO라고 합니다.


10분이 채 지나지 않아, 연락 줘서 고맙다는 짤막한 메시지가 도착했다. 의례적인 거절 의사인 줄 알았지만, 밥이라도 한 번 먹자는 말과 함께 처음 만나게 된 둘은 이 후로도 줄곧 연락을 주고받으며 몇 번의 데이트를 거쳐 연인이 되었다.


2년 차 커플이 될 때까지 그들은 꽤나 행복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지만,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은 조금은 다른 형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졸업과 취업이라는, 상당수의 20대가 으레 그 방향을 선택해야 하는 인생의 무수한 갈림길 사이에서 그들은 엇갈렸다. J는 공기업을 희망하는 취업준비생으로의 길로 들어섰고, 그의 여자친구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공시생의 길로 나아갔다.


처음에는 각자 나아갈 길을 존중했다. 누가 어떤 일을 준비하든 서로 응원해 주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이는 명백한 이상주의에 가까웠다. 지향하는 목적지가 달랐던 이들에게는 행동양식과 생활패턴의 작은 변화마저도 그들의 관계에 큰 위기를 초래했다. 주말마다 만나던 데이트조차도 더 이상 평범할 수 없었다. 취업 스터디와 인터넷 강의, 학원 수업에 치이다 보면, 아무리 그럴싸한 데이트 계획일지라도 한순간에 어그러지기 일쑤였다. 때마다 이해한다고 말은 했지만, 그런 날들이 반복될 때마다 그들의 관계가 권태로워지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가끔은 평일에 카페에서 함께 시간을 보낼 때도 있었지만, 어느 순간 그들은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걸 받아들여야 했다. 그들이 들어선 길은 사뭇 달랐고, 발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힘에 부쳐 이내 맞잡은 손을 놓을 수밖에 없는 지독한 운명에 놓여있을 뿐이었다. 그들이 NCS니 행정법총론이니 관세법이니 하는 지리멸렬한 것들을 대화의 주제로 삼는 것은 세 살배기 조카에게 단어 카드를 무질서하게 나열하는 것만큼이나 가치 없는 행동일 뿐이었다. '어렵지는 않냐'는 껍데기뿐인 위로, '힘들겠다'는 형식적인 공감에 그들은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때부터였네. 너가 입버릇처럼 힘들다고 한 게."

"내가 그랬었나."

"그래서 그때마다 너랑 나랑 편의점 앞에서 맥주 까고 그랬잖아."

"아 맞다. 맞다."

"근데 그러고서 한동안은 별 탈 없이 사귀지 않았나? 그 이후로 뭐가 있었던 거야?"

"사소하긴 했는데, 있었지."

J는 소주 대신 물 한 모금을 입에 머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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