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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ing Ko Aug 30. 2023

우리가 헤어진 진짜 이유

K의 이야기 (2)

"처음에는 번호까지는 못 받았고, 인스타 아이디나 겨우 받았지."

"그러다가 나중에 번호도 받은 거고?"

"그치."


(5)

"이야, 많이 컸네. 많이 컸어. 상상도 못 했네, 진짜."

"나도 내가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다."

"내가 형을 몇 년을 봤는데, 그렇게 적극적으로 뭔가를 할 사람이 아니었거든."

"그러게, 근데 그땐 라도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어서."

그는 잠시 숨을 고르고, 천천히 소주잔을 입에 갖다 대었다.


"뭐라도 해야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너나 다른 애들이나 연애하느라 바빴잖아. 학교도 다니고 있었고. 되게 부럽더라. 나는 하루종일 일하다가 집에 돌아오면 침대에 하루종일 누워서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퇴근해서 술이라도 한 잔 하고 싶은데 너네한테 전화하기도 좀 그렇더라고."

"그렇긴 했지. 수업이 많았으니까."

"몇 번 전화했는데, 바쁘다, 여자친구 만난다, 그러니까 괜히 미안하기도 하고, 바쁜 애들 발목 잡고 늘어지는 것 같아서..."

"괜히 좀 미안해지네."


"그리고 그때 너네들이 입버릇처럼 만날 하는 얘기가 있었잖아. '형은 언제 연애함? 연애할 생각은 있음?' 이런 식으로."

"근데 그때 형이 뭐 아무것도 안 하긴 했잖아. 정확히는 바빠서 못 했던 거긴 하지만."

"그치. 근데 그땐 뭐랄까, 제대로 연애할 자신이 없었지. 나조차도 먹고살기 힘든데 여자친구까지 행복하게 할 자신이 어디 있겠냐. 너도 알잖아. 나 16년, 17년에 뻥튀기에 펩시만 먹으면서 일주일 버틴 거."

"진짜 어떻게 버텼냐. 리스펙 한다. 진짜."

"아무튼 그래서, 일 시작하고 하다 보니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여유가 생기기 시작하다 보니까, 슬슬 그런 쪽으로 시선이 옮아가는 거지. 나 혼자 어디 여행 가거나, 재밌는 거라도 보면 같이 노가리 까면서 놀면 더 좋았을 텐데 싶은 생각도 들고, 그랬던 거지."


그는 다시 초록 병의 끄트머리를 잡았다. 밑바닥에 조금 남은 술이 찰랑거렸다. 사장님, 후레쉬 하나요.


"아무튼 그렇다 보니까 나도 궁금해지는 거야. 도대체 연애라는 게 뭘까. 뭐길래 나 빼고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데이트도 하고, 인스타에서 그토록 꽁냥대는 걸까 싶은 순수한 궁금증? 그런 게 있었지."

"그래서, 지금은 좀 해결됐어? 왜 연애라는 걸 하는 건지?"

"아직 모르겠다. 이렇게 대가리 싸매고 힘들 거 뻔히 알면서 왜 하는지."

그의 친구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이윽고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헤어져보니까 어때?"

"그냥 좀... 허무하달까. 영화 한 편을 봐도 여운이라는 게 남는 법이고, 재밌었으면 한 번 더 볼 수도 있잖아. 하다못해 남들이 남겨놓은 리뷰라도 찾아보면서 내용을 되짚어보기도 하고, 실없이 감상에 젖기도 하면서 이런저런 생각도 해볼 수 있는 거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난다면 인간적으로 성숙해진 상태에서 다시 보면 또 새롭잖아.


근데 건 헤어지는 순간, 그냥 끝인 거야. 돌아갈 수도, 새로 시작할 수도 없는 거지. 단절되 고립된 상태에서 머르길 강요받고, 그간의 모든 관계가 종말을 맞이하면서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려. 마치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그냥 서로가 아무 연관성 없는 인간과 인간으로 분리되어 언제 알고 지냈냐는 듯이 각자 살 길 찾아 떠나는 거잖아. 


그러다 보니 뭔가 런 상황과 지나가버린 일에 조건반사적으로 감정을 쏟는 것 자체가 비효율적이고, 무가치한 일로 변질다는 게 참... 당연할 걸 알면서도 받아들이는 게 힘들기는 하다."


조금 술기운이 올라온 그는 연신 소주잔을 들이켰다. 그가 안주 삼던 짬뽕탕은 어느새 밑바닥을 보였고, 생기를 잃은 야채들만이 냄비 벽면에 흉하게 달라붙어 있었다.


"너는 땠는데. 넌 헤어질 때 딱히 힘들어했던 게 기억이 안 나네."

"나도 힘들었지. 근데 좀 다른 의미로 힘들었어."

"나처럼 감정적으로 힘들었던 게 아니라?"

"그치. 일종의 배신감이라고 해야 되나..."

"처음 듣는 말이네."

그의 친구는 천천히 벽에 뒤통수를 갖다 대며 나지막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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