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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ing Ko Sep 01. 2023

우리가 헤어진 진짜 이유

J의 이야기 (2)

"오늘 공부한다고 하지 않았어?"

"그러려고 했는데... 어차피 뭐 일 년은 잡아야 되는 시험이니까."

"그래도 그렇지..."


저녁 11시, 그는 지난 몇 년 동안 반복해 왔던 하루 일과 중 하나를 끝마치기 위해 핸드폰을 들었다. 통화 내역에 빼곡히 차있는 '♡'를 오른쪽으로 슬라이드 하여 전화를 걸고, 어느 순간 깜빡 잠에 드는 것이 그의 오래된 루틴이었다. 그날도 역시 익숙한 통화 연결음과 함께 들려오는 여자친구의 목소리에 약간의 심적 평안함을 느끼며 하루를 마무리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핸드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 끄트머리에는 난잡하게 두들기는 키보드 소리가 있었다.


"뭐 하고 있어?" J는 평소에 들리지 않던 불규칙한 기계식 키보드 소리에 눈을 게슴츠레 떴다. 아마 졸업논문 작성에 여념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그였다.

"아, 나 지금 피시방."

"피시방? 지금 이 시간에?"


평소에도 피시방에서 데이트를 종종 하던 그들이었지만, 이 시간까지 피시방에서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던 J였다.

"스트레스 너무 받아서 왔지. 금방 들어갈게. 걱정 마." 그의 여자친구는 별스럽지 않게 대꾸했다.

아, 메르시, 메르시. 오케이. 메르시 컷. 거점 먹어. 거점.

핸드폰 너머로 들려오는 어수선한 소음과 여자친구의 쉴 새 없는 브리핑에 J는 이내 통화하기를 단념했다.

"알았어. 집 가서 연락해." J는 힘없이 핸드폰을 침대 구석퉁이에 던져놓고는 이불을 덮어썼다.


다음 날, 그다음 날도 J의 여자친구는 여전히 거점을 점령하고, 화물을 옮기는 데에 여념이 없었다. J는 지난 몇 년간 차곡차곡 쌓아온 루틴의 일부가 무너졌다는 것보다 그의 여자친구가 대체 무슨 생각인지 궁금해졌다.


단순히 공시생이라는 이유로 그깟 게임 한 판 제대로 하지 못하도록 타박을 하는 것은 남자친구라는 이유로 행하는 월권행위에 불과하다는 것을 잘 아는 그였지만, 서로가 서로의 나아갈 길을 응원해 주기로 한 상황에서 이를 방치하는 것도 몹시도 부적절하다고 생각하였다. 매일 아침, 잘 잤냐는 안부 인사와 함께 오늘은 각 잡고 열심히 공부하자는 다짐과 함께 집을 나섰던 그였지만, 그저 의미 없는 헛손질에 불과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착잡했다.


"오늘 공부한다고 하지 않았어?"

"그러려고 했는데... 어차피 뭐 일 년은 잡아야 되는 시험이니까."

"그래도 그렇지..."


J는 하염없이 이마의 왼편을 손끝으로 긁어댔다. 이게 아닌데... 일개 취업 준비생으로서 그의 여자친구에게 공부하라고 잔소리를 늘어놓을 입장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이렇게 하는 것이 옳은 길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그였다.


하지만 쉽사리 조언과 훈수를 늘어놓을 수는 없었다. 어쩌면 괜한 행동일지도 모를 텐데, 그로 인해 빚어질 크고 작은 마찰에 서로가 감정을 소비하고, 관계를 불필요하게 악화시킬 용기가 그에게는 없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파이팅 하자! 나 내일 강의 있어서 먼저 잘게용'이라는 짤막한 메시지만 남기는 수밖에 없었다.


"어디야?"

"나 지금 스터디 사람들이랑 술 먹고 있어."

"아깐 카페에서 공부 중 이라며."

"아니... 공부하고 이제 잠깐 머리 식히려고 온 거지."

"뭔 생각이야, 대체? 아니, 공부 안 해?"

"왜 얘기를 그렇게 해? 누가 보면 하루종일 놀고 있는 줄 알겠다?"

"하..."


그로부터 약 두 달, 그들은 점차 지쳐갔다. 서로 꿈꾸는 곳이 달랐고, 살아온 방식이 달랐기에 그들은 외면할 수 없는 다툼에 휘말릴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엇갈려버린 갈림길에서 맞잡은 손을 놓아도 이상하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들의 관계는, 이제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준비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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