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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윤 Jan 20. 2020

예비소집

내일은 특별한 날이 아니다

 집 밖을 나선 나의 발걸음은 매일 가던 그곳이 아닌 도보로 20분 거리의 고등학교를 향했다. 수능을 보기 하루 전에 실시하는 예비소집 때문이었다. 재수생을 포함한 수많은 수험생들은 학교 운동장에 정렬하여 인원체크를 한 뒤 내일 시험을 치를 시험장 교실로 이동했다.       


         

 나는 교실에 도착하여 가장 먼저 책상 상태를 확인했다. 중심이 맞지 않아 흔들리지는 않는지, 홈이 깊게 파여 있어 시험지가 찢길 염려는 없는지 꼼꼼히 확인하여 다시 정렬을 시켜 놓았다. 그다음에는 의자에 앉아 지금 이 공간에 최대한 익숙해지기 위해 시험장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칠판 위에 올려져 있는 시계의 모양, 교실의 벽면 페인트 색 배합, 학생들이 정성 들여 꾸민 교실 뒤편의 학급원 소개글 등. 눈에 보이는 것마다 모두 머릿속에 각인시켰다.               



 "수능이 끝난다고 해서 너희들 수험생활이 끝난 게 아니야!"            


   

 예비소집이 모두 끝난 후에는 바로 아버지 차를 타고 학원으로 떠났다. 윙-. 강하게 느껴지는 핸드폰 진동소리. 고등학교 친구들로부터의 전화였다. 일부러 연락을 끊고 살았음에도 그동안 나를 잊지 않고 내 생각을 해줬다는 사실에 너무나 고마웠다. 친구들에게 격려와 응원 메시지들을 받은 나는 기쁜 마음으로 학원에 갔다.               



 오늘은 수능 전 날의 바쁜 일정들 때문에 특별한 통제 없이 자율적으로 등원을 해도 되는 날이었다. 어제 선생님들끼리 휴양을 떠나신 것과 더불어 학원생들이 아직 절반도 오지 않은 교실은 너무나 조용했다. 하지만 교실을 가득 채우는 긴장감만큼은 그 어떤 때보다도 강렬했다. 학원생들을 조용히 시키는 선생님들이 따로 계시지 않아도 하루 내내 그 분위기가 유지되었을 정도이니 말이다.               


 물론 분위기가 좋았다고 해서 공부가 잘 되는 것은 아니었다. 수능 전 날이다 보니 무엇을 해야 할지도 알 수 없었고 새롭게 무엇을 하기도 애매했다. 나는 오늘, 새로운 문제는 하나도 풀지 않고 지금까지 정리해왔던 필기노트들만 다시 한번 정독하기로 마음먹었다. 그것이 멘탈을 관리하기에도, 긴장된 마음을 진정시키기에도 좋을 것 같다는 판단 하에서다. 시간이 너무 많이 남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과 달리 생각 외로 내가 정리해놓은 노트들의 양은 꽤 많았고 모두 다 정독하니 자습 시간이 거의 끝나 있었다. 그리고 그때 주위를 둘러보니 절반도 차지 않았던 교실이 공부하러 온 학원생들로 가득했다.               



 자습이 끝났음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자 여기저기에서 그동안의 고통을 말해주듯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학원생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지금까지 고생을 함께해온 전우들과 뜨거운 마지막 인사를 했다. 복도, 계단, 교실 등 학원 내 모든 공간이 격려와 응원소리로 가득했다. 나는 지금까지도 학원 친구를 만들지 않았었기에 조용히 짐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윤아, 내일 시험 잘 봐!"               



 말 한마디 나누지 않았었지만 지난 1년 동안 함께 수업을 듣고 공부를 해온 같은 반 친구, 누나, 형들이 반가운 미소로 응원을 해주었다. 지금까지 쌀쌀맞게 대해온 그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잊지 않고 격려를 해주는 모습에 고맙기도 했다. 나는 처음으로 다른 학원생들에게 행복한 표정과 친근한 말투로 고맙다는 말과 함께 격려와 응원을 해주었다. 긴장되어있던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고등학교 3년간 유일하게 같은 반이라 매우 친했던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덥석 전화를 받았다.     


          

 "수능 날 어렵거나 모르는 문제가 나와도 너무 당황하거나 흔들리지 말고 그냥 넘어 가. 그런 문제가 나오는 것은 정말로 당연한 거니까. 나도 작년에 문제가 너무 어려워서 힘들었는데 마음을 비우고 그냥 푸니까 성적이 괜찮게 나오더라. 물론 너는 내가 이런 말 해주지 않아도 알아서 잘하겠지만 말이야 하하."   


            

 그래 그렇지. 문제를 풀면서 내가 못 푸는 문제가 하나도 없이 쓱쓱 풀어나가면 수능에서 만점을 맞아야 할 텐데 그게 말이 되는 소리겠어? 어려운 문제, 틀리는 문제가 나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런 문제가 나온다 하더라도 절대 당황하지 말고 그냥 넘어가자. 아직 시험은 끝난 게 아니니까.               


 나는 친구의 조언을 가슴 깊이 새기며 고맙다는 말과 함께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처음 재수를 결심하고 정말 오지 않을 것만 같던 이 날이 다시 금방 찾아오는구나. 신기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공부해온 나 자신을 믿으며 그 공포를 이겨내려 했다.       


        

 내일은 특별한 날이 아니다. 어제와 같은 오늘이며 내일이 될 흔한 하루 중 하나일 뿐이다. 크게 긴장할 필요도 없고 평소보다 더욱더 강하게 집중할 필요도 없다. 그냥 매일 그래 왔던 것처럼 내일도 그저 평범한 날이 될 수 있게 내가 지금까지 보여온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자. 내일도 오늘과 같은 그저 「A Day」일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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