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아는 후배 사업가를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어떻게 화를 참고 차분하게 얘기할 수 있느냐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나는 회사 생활을 통 털어서 딱 3번의 화를 내본 경험이 있다. 한 번은 협력사 대표, 한 번은 직원 A, 또 한 번은 직원들(B, C, D)이었다. 20여 년의 회사 생활 중에 업무적으로 화(angry)를 낼 필요도 없고, 효과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후배의 질문에 나는 화를 참는 게 아니라 화가 애초에 나질 않는다고 답했다. 그랬더니 그 후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나랑 아예 결이 달라.. 달라.."라며 선을 그었다. 그 후배의 말도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그는 사업 초기에 나를 롤모델로 삼아 직원들에게 해보았지만 결국 모두 실패하고 말았던 것이다. 잘해주면 잘해줄수록 고마움보다는 이용해 먹거나 대표의 권위만 추락하는 결과를 맛보았다. 다시 새롭게 세팅된 직원들에게는 더 이상 잘해주는 것을 포기하게 되었다고 한다.
내가 화를 내지 않는 이유, 아니 내가 화가 나지 않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 정도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첫 째, 화가 나는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사전부터 끊임없이 직원들에게 선의의 가스라이팅을 했다. 우선 룰북을 통해 직원의 복무규정을 세세하게 적어놓는다. 또 반대로 회사의 의무 사항도 세세하게 적어 놓는다. 가급적이면 서로 얼굴 붉힐 일 없도록 최대한 예방하지만 사람의 일이란 게 어디 또 그런가... 규정 따위에 담기지 않는 수많은 일들이 생기지만 룰북에 있는 내용을 기반으로 유권해석을 할 수 있도록 교육했다. 대부분의 규정들은 직원을 옭아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자그마한 배려를 위함이기에 직원들도 큰 이견 없이 잘 따라 주었다.
둘째, 지랄한다고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짧게는 20여 년 길게는 40여 년을 자기 방식대로 살아온 사람에게 고작 몇 년 본 내가 지랄한들 달라지지 않는다. 지랄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아예 없다 보니까 일단 화가 나지 않는 것이다. 무슨 일이 생겨도 상황을 이해해 보려고 최대한 노력한다. 만약 이해가 되지 않으면 질문을 해본다. 자신의 잘못이나 실수를 인정하면 재발 방지 다짐을 받고, 만약 인정하지 않을 시 그냥 과감하게 헤어짐을 선택한다. 아무리 본인이 잘못을 했다 해도 내가 지랄하는 순간 공은 저쪽으로 넘어가게 되어있다. 나쁜 기억으로 헤어지면 결국 나에게 안 좋은 감정을 갖게 된다. 자신의 잘못은 쏙 빼놓고 맹목적으로 비난할 확률이 높아진다. 어떤 쪽으로 던 지랄을 하는 순간 나만 손해이다.
마지막으로 직원들에게 일관된 모습을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다. 예측 가능한 사람이 되어야만 직원들이 일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된다. 대표나 임원들의 기분에 따라 컨펌이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는 경우에는 직원들이 눈치라는 것을 보게 된다. "야, ㅇㅇ이 지금 빡쳤으니까 보고할 거 있는 사람 좀 있다 가!" 나도 직원이던 시절 이런 말 많이 해봤다. 비즈니스의 자리에 상대방의 기분 때문에 해야 할 일을 미룬다는 게 만드는 건 너무 아마추어 같은 발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직원들이 언제 어떤 상황에서든 빠르게 보고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나는 최대한 한결같은 스탠스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게 업무적으로 가장 효율적이다. 쓸데없는 감정 로스 없이 그저 일만 열심히 할 수 있게 만드는 비법이다.
"나랑 아예 결이 달라.. 달라.."를 외치던 그 후배의 말이 웃프게 느껴진다. 그의 말이 맞다. 나는 아예 결이 다른 사람이다. 화가 없는 사람이 아니라 화가 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나와 주변을 어느 정도 컨트롤 하려 노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상황이 발생하면 최대한 그 사람의 입장에서 이해해 보려 노력한다. 이건 사실 노력해서 되는 일은 아니고 어느 정도는 타고나야 하고, 또 어린 시절 가정에서 비슷한 경험들을 많이 해야만 가능한 것이다.
내 생각이 무조건 옳다는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들의 장범과 비법들을 습득하고, 그것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승화시키는 사람만이 성공으로 가는 조금 빠른 길을 갈 수 있게 된다. 남의 단점도 나의 장점으로 만드는 사람이 있다. 네거티브 에너지를 포지티브 에너지로 만들면 +2점이다. 내 이야기를 소스 삼아 자신만의 요리를 만들어내는 법인 대표들이 되기를 기원한다. Pe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