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심 작가 진절 Oct 12. 2023

퇴사하겠습니다. -CEO 올림-

어느 중소기업 CEO의 퇴장 스토리

항간에 브런치 글은 '퇴사'아니면 '김밥'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퇴사'라는 키워드는 브런치에 아주 흔하디 흔한 소재이다. 그렇게 진부하기 짝이 없는 소재임을 알면서도 내가 다시 이 '퇴사'라는 키워드를 꺼내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 다름 아닌 대표인 나의 퇴사이기 때문이다. 


사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퇴사라기보다는 퇴진 혹은 퇴장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2016년 7월 회사를 창업하고 온갖 고난과 역경의 결과로 번듯한 회사를 만들어냈지만 만 7년이 지난 지금 나는 아름다운 퇴장을 희망하고 있다. '박수칠 때 떠나라!'라는 말을 몸소 실천하려는 의지로 보면 될 것이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어느 날 갑자기 도망가고 싶어진 게 아니라 아주 오래전부터 나름 치밀하게 준비했다는 점이다. 나의 창업 스토리는 다른 글에서도 많이 다루었으니, 오늘은 나의 퇴장 스토리를 한 번 본격적으로 다뤄보려고 한다. 아직 완결형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기는 하지만...)




회사를 시작하고 처음 2년간은 이게 사람 사는 것인가 싶을 정도로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회사를 어거지로 끌고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짧다면 짧은 고난의 시간을 보내고 제대로 된 클라이언트와 프로젝트를 만나면서 회사는 빠르게 정상화되었고, 약 5년간 단일 클라이언트 &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회사의 매출은 물론 엄청난 레퍼런스를 쌓으며 승승장구했다. 그 5년의 기간에는 코로나 3년도 포함이 되어있었으니 실로 엄청난 성과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그 시기에 회사뿐만 아니라 직원들에게도 적지 않은 혜택과 복지를 제공하며 노사가 함께 성장하는 축복의 시기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2020년 코로나라는 전대미문의 글로벌 대재앙을 가까스로 탈출하였고, 2021년 겨울 정말 다행스럽게도 회사는 모든 것이 정상으로 회복되었다. 나의 조용한 퇴장을 위한 빌드업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회사가 매우 어려움에 처했다거나 위기가 찾아온 것도 아니었지만 오히려 위기를 뚫고 다시 상승세를 타고 있던 시점이었던 터라 사람들은 나의 결정을 선뜻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 마음을 먹게 된 계기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결정적인 이유를 하나 꼽으라고 한다면 '우리 모두의 행복한 미래를 위해서'이다. 이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린가 싶겠지만 코로나의 긴 터널을 지나오면서, 그리고 그것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에서 나와 우리의 구성원들이 '같이', '오래' 행복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이라는 나름의 확신 같은 것이 생겼다.


우리는 영원할 수가 없다. '회자정리 거자필반'이라는 말처럼 결국 우리는 언젠가 헤어지게 되어있다. 내가 평생 대표직을 수행하면서 수십 명의 직원들의 인생을 영원히 책임질 수 없고, 또 직원들 역시 언제까지나 우리 회사에서 2인자, 3인자를 하면서 함께 늙어갈 리 만무하다. 우리가 언젠가 헤어짐을 맞이해야 한다면 그 타이밍이 가장 중요한데, 3년 가까이 지켜본 결과 지금이 마지막 골든 타임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회사의 성장이라는 것도 언제나 부침이 있다. 잘 가고 있나 싶다가도 코로나와 같은 거대한 악재를 만나기도 했고, 또 지옥의 문턱에서 운 좋게 튼튼한 동아줄을 잡고 기사회생하며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했다. 우리는 지난 5년간 좋은 프로젝트와 좋은 클라이언트를 만나 남들보다는 조금은 덜 고생하면서도 운 좋게 좋은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그 기회를 발판 삼아 우리는 꾸준하면서도 안정적인 성장을 맞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영원할 수는 없기에 그 좋았던 기회가 조금씩 사라지고 있던 타이밍에 우연히 또 다른 대형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새로운 기회를 맞이하는 분기점에 서있는 중이다. 만약 현재 회사의 주축이 되는 직원들이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한다면 바로 지금이 적기라고 보는 이유이다. 7년 전 우리가 처음 회사를 시작했을 당시 아무것도 없이 맨주먹으로 시작해서 처음 2년간 너무 많은 시련과 설움을 경험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가능성을 가지고 시작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회이고 축복인지 너무 잘 알고 있다.


얼마 전, 유튜브 '장사의 신'이라는 프로그램에서 500억대 자산가인 은현장 대표가 했던 말에 격하게 공감한 적이 있었다. 자신의 회사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에게 다른 회사보다 많은 연봉과 좋은 혜택을 줄 수 있지만, 그렇다고 직원들에게 천만원, 2천만원의 급여를 줄 수는 없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큰돈을 벌고 싶다면, 직원이 아니라 자신만의 길을 찾아서 남들보다 더 열심히, 치밀하게 준비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고 직원 중 누군가 그러한 길을 선택한다면 정말 최선을 다해서 조언하고 도와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200% 동감)


올해 지독한 불경기로 인해 20명이던 직원들은 어느새 14명까지 줄어들었고, 그마저도 올해는 상당한 적자를 면치 못할 상황이었지만 회사는 새로운 기회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했고, 그 결과로 지금의 작지만 새로운 기회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우리에게 새롭게 찾아온 기회가 튼튼한 동아줄인지, 썩은 동아줄인지 지금으로서는 100% 확신할 수는 없으나 적어도 남들에게는 없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고, 그것을 잡을 것인지 말 것인지는 이제 직원들의 선택에 달려있다. 


현재의 많은 직원들을 유지하며 내년에도 적자를 감수할 만큼 프로젝트의 규모나 회사의 재정상황이나 넉넉치 않으므로 이제는 이번 기회를 계기로 크고 움직임이 둔한 크루즈가 아니라, 작고 민첩한 모터보트로 갈아타야 할 최적의 시기이다. 최소의 인원으로 최대한의 효율을 낼 수 있는 젊고 민첩한 조직으로 새로운 승부수를 띄워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회사의 핵심 직원들에게는 이미 오래전부터 여러 차례 공유된 상황이고 현재도 끊임없이 논의 중인 사안이다. 또한 나의 이러한 생각들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주장할 수도 없고, 강요할 수도 없는 일임은 분명하다. 다만 불확실성의 미래에 대비하여 지금 빠르게 체질을 변화하여 준비하지 않으면 결국 모두가 공멸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지금 우리는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다가올 미래를, 변화할 미래를, 기회의 미래를 위해 지금 바로 한 걸음을 내딛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할 수 있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업은 소꿉놀이가 아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