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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심 작가 진절 Nov 15. 2022

사업은 소꿉놀이가 아냐

너무 나이브한 리더들에게 고함

그들을 과연 리더라 부를 수 있을지 의문이기는 하나, 사업을 '애들 장난'이나 '소꿉놀이' 정도로 생각하는 리더들을 보면 정말 답답함에 한숨이 나올 지경이다. 배는 이미 한참 기울어져있고, 골든타임은 점점 다가오는데, 여전히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차일피일 결정을 미루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보다 못해 답답한 마음에 수많은 힌트를 주고, 시그널을 보내봤지만 여전히 태평한 목소리로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 자위하는 사람들이다.

모든 일에는 양과 음이 존재하며, 성장이 있었으면 분명 후퇴도 있고, 기회가 계속되다 보면 필연적으로 위기가 찾아오게 마련이다. 그것은 너무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그렇다고 아무 대비도 하지 않고 그냥 가만히 앉아서 그 위기를 마냥 반갑게 맞이해서는 안 될 일이다. 당장에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갑작스레 들이닥칠 위험을 먼저 인지하고 그에 대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가 만약 우려했던 위기가 오지 않는다면 그 상황에 감사하면 되는 일이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고 넋 놓고 앉아있다가는 갑작스러운 위기에 제대로 된 대처를 하지 못하고 결국 큰 화를 당할 수 있음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




현재 우리가 하고 있는 이 비즈니스에서 이 상황이 답답해서 미칠 지경인 것은 오로지 나 혼자뿐인 것 같다. 아무런 변화 없이 내년을 맞이하게 될 경우 우리는 99% 파국을 맞이할 것이다. 이것은 단지 나의 감(感)에 의존한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의견과 여러 가지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시뮬레이션해본 결과이다. 물론 1%의 가능성으로 파국이 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혹시나 견뎌낸다 해도 아마 모두에게 상처뿐인 영광이 될 것이 자명하다. 그리하여 나는 다양한 방법으로 여러 사람들에게 현재의 상황을 호소했다. 모두들 하나같이 이 위기의 상황에는 공감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해결 방법에 대해서는 뜨뜻미지근한 반응이 주를 이뤘다. 물론 나처럼 아주 오래전부터 치밀하게 이 위기에 대해 분석한 사람들이 아니다 보니 이제야 위험한 상황을 인지했고, 천천히 고민하고 결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천천히 고민하며 해결책을 찾기엔 우리의 배는 이미 너무나도 기울어져 있었고, 우리의 바로 한두 걸음 앞에 깊은 낭떠러지가 펼쳐져있으며, 당장 소방차를 불러 불을 끄지 않으면 전소될 수도 있는 백척간두의 위험에 놓여있다. 위기의 상황이니만큼 신속한 판단과 총체적이고 구조적인 변화가 불가피하여 소리 높여 '불이야, 불이야'를 외쳐보지만, 나의 성대결절만 악화될 뿐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의 판단에 대해 너무 과장되었다거나, 호들갑이라고 하거나, 너무 앞서간다고 한다. 사업이라는 것을 시작한 지 고작 6년밖에 안되었지만 그간 수많은 위기의 상황을 간신히 뚫고 이 자리에까지 온 것은 수많은 행운과 더불어 나의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호들갑에서 기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가 생기고 나서 해결하는 것보다는 문제가 생기기 전에 미연에 차단하는 것이 훨씬 쉽고 간단하다. 위험이 감지되면 바로 경보를 울리고 원인을 찾아 제거하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다. 연기가 나고, 냄새가 나고, 경보가 울려도 그저 멍하니 바라보며 불이 알아서 꺼지길 바라는 리더를 우리는 참된 리더라고 부를 수 있을까? 거기서 더 나아가 원인을 찾기보다는 경보를 울린 놈이 누군지를 찾아내 불이익을 주는 리더를 우리는 과연 믿고 따를 수 있을까?


배는 이미 심각하게 기울어졌다. 일단 배를 다시 정상으로 띄울 수 있도록 조치하는 게 우선이지만 그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 신속하게 구조선을 보내 사람을 구출해야 하고, 그마저도 시간이 없을 경우 구명조끼와 구명보트로 안전하게 탈출시키는 일이라도 해야 하는 것이다. 배는 기울어 가라앉고 있고 사람은 안에서 구조를 요청하는데, 멀찌감치 남의 일인 양 팔짱 끼고 구경만 하며, '구명조끼를 입었다는데 왜 발견하기가 힘든 겁니까?'와 같은 한가한 소리나 하고 있는 누군가가 떠오르는 순간이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내가 할 수 있는 한도를 넘어서 이미 충분한 시그널을 주었고, 이제 그 상황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에 대한 각자의 선택만이 남아있다. 나는 이미 최악의 경우를 상정하여 마음의 결정을 해둔 상태이다. 누군가의 선택에 따라 내 결정이 조금은 달라질 여지가 있지만, 아마 내 결정을 바꿀 수 있을 만큼 획기적인 변화를 만들어 낼 조직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사실상 큰 기대를 하지는 않고 있다. 그래도 일말의 가능성이 남아있는만큼 그 결정을 기다릴 것이고, 데드라인을 넘어서는 시점이 되면, 자동적으로 나는 내 결정을 실행할 예정이다. 누군가는 미친 짓이라고 손가락질하겠지만 죽기를 각오하고 덤비지 않으면 절대로 이 냉정한 사회에서 살아남기가 어렵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내가 지켜야 할 사람들과 조직을 위해 냉정하고 과감한 결정을 해야만 한다. 그것이 우리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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