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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엠 저리킴 Oct 20. 2022

모두가 행복해지는 결정

식상하지만 <Happy Together Project> 

우리 모두가 잘 알듯이, 세상에 '모두가 행복해지는 결정'이라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은 다시 말해 완전히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말이기도 하다. 다만 그것이 세상에 존재하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그런 결정을 내려야 할 용기를 가진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누구나 다 '모두를 위한 결정'이라고 포장은 하지만 결국 자신에게 유리한 결정을 내리는 게 일반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훌륭한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 나타나기라도 하면 우리는 무슨 꿍꿍이가 있을까 하고 계속 의심하게 마련이다. 그러한 반응은 사실 너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살면서 우리는 직간접적으로 많은 거짓들을 겪었고, 그렇기에 누군가 이유 없이 친절함을 보이면 본능적으로 거부 반응이 먼저 드는 게 사실이다. 


'모두의 행복을 위한 결정'이라는 것은 필연적으로 그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 자신의 것을 많은 부분 내려놓을 수 있어야만 그 공식이 성립될 수 있다. 자신의 것을 꽁꽁 싸매고 지키면서 할 수 있는 '모두를 위한 결정'이란 단언컨대 존재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런 사실을 잘 알기에 사탕발림 같은 달콤한 말을 신뢰하지 않는 것이다. 그만큼 '모두를 위한 결정'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르고, 수많은 오해와 억측을 받기 좋은 매우 힘들고 고통스러운 결정인 것이다. 




지금까지 회사를 만들고 성장해오는 과정에 우리는 수없이 많은 결정의 순간에 맞닥뜨렸고, 그런 중요한 순간들에 놓였을 때 항상 결정의 기준은 '모두를 위한 행복'이 가장 우선순위였다. 이른바 <Happy Together>를 실현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나의 결정이 항상 옳았던 것은 아니고, 좋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결과가 매우 좋지 않았던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만약 다시 그런 상황에 놓인다고 해도 나는 결국 똑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결정의 기준은 언제나 명확했고, 그 결과에 대해서는 내가 스스로 책임을 졌다. 


직원들로부터, 협력사로부터, 클라이언트로부터, 심지어 나의 가족들까지도 나의 이상한 결정에 고개를 절레절레하곤 했다. 어떤 이는 무슨 꿍꿍이가 있나 오해를 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그렇게까지 할 필요 있냐고 만류하기도 했다. 그런 수많은 오해와 의심을 받으면서 나도 가끔 흔들리기는 했지만 결국은 내가 처음 설정했던 기준대로 최대한 일관된 결정을 해왔고, 결과적으로 그 크고 작은 결정의 결과들이 하나씩 모여 지금의 나름 훌륭한 회사로 성장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최근 올렸던 몇 번의 글에서 현재 우리의 상황은 굉장한 위기의 상황임을 이야기했다. 정말 힘든 시간들을 견뎌내고 조금 숨을 쉬어보나 싶었을 때 코로나가 우리를 덮쳤고, 다시금 힘겹게 기지개를 펴고 있는 지금 전혀 새로운 형태의 위기가 우리를 둘러싸며 전방위적으로 압박하고 있는 상황이다. 보통 이런 상황이 되면 움츠러들거나 지금까지의 결정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위기를 모면하려 하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정말 신기하게도 오히려 이런 상황이 되니 나의 생각은 오히려 더욱 확고해졌다. 지금이야 말로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내려놓을 각오로 덤비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내가 지금 가진 것을 조금이라도 움켜쥐려고 주먹을 펴지 않으면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느낌적으로 알 수 있다. 이미 2년 전부터 준비해오던 계획이 다소 빠르게 앞당겨진 것일 뿐, 모든 것이 나의 시뮬레이션  범위 안에 있었던 위기 상황이기에 나는 전혀 당황스럽지 않고 오히려 진심으로 이 위기의 상황을 즐기고 있다. 


만에 하나 내가 이러한 결정을 했을 때 피해를 보거나 상처를 입는 사람은 없는지 다시 한번 꼼꼼히 살펴보았다. 다소간의 반발과 저항은 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상황이 될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이후 노력 여하에 따라 각각의 결과는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고, 이러한 선택은 현재의 상황에서 내릴 수 있는 가장 현명한 선택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모든 평가는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내려질 것이다. 그때에 지금의 나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려면 또 치열하게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우리 후배들이 보다 더 좋은 조건과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길을 만들고, 또 뒤에서 언제나처럼 든든한 후원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려고 한다.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아주 평범한 결정을 하고 살았다면, 더구나 그 결정이 누구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결정이었다면, 아마 나는 지금쯤 그저 그런 평범한 장사치가 되어있거나 혹은 진작에 회사를 강제로 정리당하고 또다시 지옥의 불구덩이를 헤매고 있었을 게 분명하다. 물론 우리의 성공은 나를 비롯한 모든 직원들과 주변 지인들의 노력을 통해 함께 얻어낸 값진 성과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의 이 작은 성공에 안주하여 샴페인 따위를 터트리는 미련한 짓은 결코 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의 성공이 내일의 성공을 보장할 수 없기에,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시련을 초현실적으로, 그리고 항상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오늘 나의 새로운 선택이 지금까지 함께 고생한 우리 모두의 행복한 미래를 만드는 중요한 결정임을 명심하여, 더욱 신중하고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겠다고 또다시 스스로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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