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 속의 인물 '엄친아'에 대하여..
'엄친아'라는 말, 이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말이 되었다. 엄마의 입에서 무시무시한 잔소리가 나올 때 꼭 등장하는 공포의 단어 "엄마 ・친구 ・아들". 누구나 한 번쯤 아주 높은 확률로 본인의 엄마에게서 들어봤을 것이다. 자매품 '엄친딸'도 있다.
사실 나는 엄친아의 공포와는 거리가 멀었다.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울 엄니가 나한테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학창 시절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하지도 않았고, 성적이 좋았던 것은 더더욱 아니었지만 엄마는 '엄마 친구 아들들'을 들이대며 나를 압박하지 않았다. 그 시절 부모님들이 모두 바빴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내가 알아서 잘하겠거니 하고 믿어주신 것이다.
그렇게 믿어주신 부모님의 덕에 이제 반백살의 나이를 앞두고 있는 지금의 나는 말 그대로 '엄친아'가 되어 있었다. 공부를 잘했던 것은 아니지만 대학 입시가 수능 시험으로 바뀌면서 성적이 떡상을 하면서 우여곡절 끝에 홍대 불문과에 입학을 했다. 수없이 많은 '실연'의 '시련'을 겪은 후 현재의 아내를 만나 2명의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키우며 살고 있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한 번의 쉼 없이 열심히 일을 했고, 아내는 첫 아이의 임신과 함께 10년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전업 주부로서 가정생활과 육아를 전담했다.
18년 정도의 직장생활을 마치고 사업이라는 것을 시작했고 2년간의 지옥 같은 고생 끝에 안정적인 매출을 올리면서 홍대에 사옥을 올릴 만큼 회사가 급성장하기도 했다. 코로나라는 최악의 상황까지 간신히 극복하며 현재까지도 안정된 삶을 유지하고 있다. 7년 반의 회사 운영에 대한 이야기를 소설화하여 얼마 전 <지옥에서 사옥까지>라는 제목의 논픽션 창업 소설도 냈다.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한 것은 단연코 엄마의 가정교육 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앞서 말했듯이 내가 잘못한 것에 대해서는 따끔하게 혼을 내지만, 기본적으로 나에게 무리한 강요나 압박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엄마는 항상 주변 사람들의 아픔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살뜰히 챙겼다. 나는 어려서부터 그런 모습들을 보고 자라며 나도 모르게 그것이 몸에 습관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생긴 것 자체가 비슷하니, 유전적으로 타고난 것도 한몫할 것이다)
그렇게 나는 엄마 친구들 사이에서 '엄친아'로 불린다. 엄마의 친구 아들이 가져야 할 모든 조건을 다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엄친아로 불리는 이유를 쭉 열거해 보자면...
1. 닮은 꼴
엄마와 나는 유전적으로 매우 닮았다. 외모뿐 아니라 성격이나 행동(예를 들어 트림소리 같은..)까지도 닮았다. 엄마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오면 항상 깍듯하면서도 유머러스하게 맞이하며 지루할 틈이 없게 만들어 준다. 고스톱을 쳐야 하는 데 인원수가 부족하면 가끔 머릿수를 채워주기도 하며, 멤버들이 다 모이면 커피를 타주거나 설거지를 하는 등 효자 코스프레를 잘한다. (물론 용돈은 덤이다.)
2. 인서울 대학 입학
공부를 썩 잘하는 편은 아니었으나 대입 시험이 수능으로 바뀌며 그야말로 성적이 떡상을 하게 되면서 재수 끝에 인서울 홍익대 불어불문과에 입학을 하게 되었다. 거기에서 만난 A 선배님을 따라 이벤트 프로모션 업계에 뛰어들게 되었으면 훗날 회사를 차리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3. 빠른 결혼
또래들에 비해 결혼을 빨리 했다. 아내는 엄청 싹싹한 편은 아니나 술을 좋아하는 관계로 엄마(즉 시엄마)와 자주 술자리를 가졌다. 심지어 3년 차부터는 같은 아파트 같은 동에 살면서 자주 교류했다. 또한 아들을 2명이나 낳아 떡두꺼비 같은 손자를 2명이나 선물했다.
4. 자가 소유
결혼 후 3년 정도를 전세로 살다가 집주인과의 마찰로 인해 그 시절 영끌(?)을 하여 5천만원 대출과 함께 1.2억의 주공아파트를 매입했다. 부모님이 살고 있는 아파트의 같은 동 다른 층 아파트로 엄마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다. 10년 후 아파트의 가격이 2배가 되었을 때쯤 커가는 두 아들들을 고려하여, 주공 아파트를 정리하고 5분 거리에 있는 30평대 아파트로 대출 2억과 함께 이사를 했다.
5. 사업의 성공
30평대 아파트로 이사를 가고 나서 얼마 후 친구의 투자 제안에 창업을 준비했으나 투자는 이내 철회되었고, 결국 아파트를 담보로 1억 추가 대출을 받아서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온갖 우여곡절 끝에 회사는 지옥을 탈출하여 매출 상승과 더불어 사옥까지 매입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한창 코로나 시국 중, 사옥 오픈하던 때에 부모님 모시고 회사에 갔을 때 감격하던 표정을 잊을 수가 없었다. 물론 코로나를 겪으며 또 한 번의 시련이 있었지만 운 좋게 잘 헤쳐 나오면서 현재 안정적인 상황을 유지하고 있다.
6. 논픽션 소설 출간
7년 반의 창업 일기를 바탕으로 논픽션 스릴러 창업 소설 <지옥에서 사옥까지>를 출간했다. 평소 책을 잘 읽지 않으시던 엄마는 책을 읽다가 중간에 눈물이 나서 포기하셨다고 했다. 이렇게까지 힘들었는지는 몰랐다며, 왜 그동안 말하지 않았냐고 하셨다. 그리고 친필 도서 20권을 받아가셔서 친구분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이 밖에도 누나하고 화목하게 지내는 것, 아내하고 엄마가 가끔씩 술잔을 부딪히는 것, 가끔씩 모시고 맛있는 것 먹으러 다니는 것, 여행 가신다 하면 몰래 용돈을 조금씩 챙겨드리는 것, 어머니들 사이에서는 약간 먹어주는 외모 등 소소한 행복거리가 가득한 엄마는 엄마의 친구들로부터 시샘 아닌 시샘을 받고 있다고 한다. 아주 친한 친구들은 부럽다고 하고, 어중간하게 친한 친구들은 부러운 나머지 뒤에서 험담을 한다고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내가 엄친아 소리를 듣고 싶어서 그런 것도 아니고 그냥 내 삶에 충실하게 산 것뿐인데 엄마의 친구들이 나를 엄친아라고 불러준다면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그게 엄마에게도 좋은 일이고 나에게도 좋은 일이기에 마다할 이유가 없다. 살면서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도록 엄친아 코스프레를 열심히 하면서 알아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