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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니네텃밭 Oct 11. 2019

토종, 소농의정신, 웃음이 담긴 여성농민들의 제철꾸러미

언니네텃밭 함안아라씨앗드리 공동체에서 보내는 제철꾸러미 이야기

 언니네텃밭 여성농민 생산자 협동조합이 한 달에 한 번, ‘이달의 언니’를 소개합니다. 토종씨앗을 잇는 활동으로 씨앗의 권리를 찾고, 농생태학을 배우고 실천하며 자신과 주변 생태계를 돌보는 일도 소홀히 하지 않는 언니네텃밭 여성농민들. 느리더라도 한 걸음 한 걸음 자신과 주변을 살리는 언니들의 농사 이야기를 나눕니다. 세번째 생산자는 꾸러미 공동체 중 인원이 가장 적지만 완벽한 팀워크를 자랑하는 함안아라씨앗드리 공동체입니다.



함안아라씨앗드리 공동체 언니들. 왼쪽부터 이은정, 황말순, 김순연, 송신복, 정은미 여성농민.

농민 개인을 만나는 것과 공동체 속 농민을 만나는 것은 또다른 느낌을 줍니다. 농사에 대한 가치관과 속도가 조금씩 다른 사람들이 함께 리듬을 맞춰가는 모습에는 서로를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더해져 있으니까요. 언니네텃밭 전국 열두 곳의 꾸러미공동체에는 이러한 마음을 모아 매주 한번 꾸러미를 싸는 여성농민들이 있습니다. 지역이나 모인 사람의 숫자는 달라도 이 농사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가 다품종 소량 생산을 하는 소농이라는 점이죠. 작은 규모에 다양한 농산물을 기르니 손이 많이 가고, 수확량도 적어 팔기 애매한 농사. 하지만 그런 농민이 여럿 힘을 모으면 택배박스에 다양한 제철채소가 뚝딱 담기는 꾸러미가 됩니다. 언니네텃밭 꾸러미는 일주일에 한 번 이렇게 여성농민들의 텃밭에서 나온 제철채소로 소비자 회원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대다수의 농민이 과수 농사를 지으며 단작화 된 농지가 특히 많은 지역인 함안에도 이렇게 다양한 제철농산물을 지키는 언니들이 있습니다. 고소득·대규모 농사가 발달한 지역 안에서 생태를 위한 작은 농사와 토종씨앗을 지켜내려 누구보다 애쓰는 여성농민들, ‘함안아라씨앗드리 공동체(함안공동체)’ 언니들입니다.



우리는 함안공동체의 완전체 멤버들


언니네텃밭 함안아라씨앗드리 공동체가 있는 경상남도 함안군 여향면 주동리


함안공동체는 경상남도 함안군 여향면 주동리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언니들이 살고 있는 주동리는 산 아래 작은 필지가 조각조각 흩어져 있어 단일 작물보다는 작은 텃밭 농사를 짓기에 적당한 곳입니다. 그래서 함안에서 유일하게 대규모 과수원이 적은 동네지요. 이러한 지리적 특징 때문에 여성농민회 활동을 하고 있던 정은미 언니 눈에 꾸러미 공동체의 가능성이 보였다고 합니다.
꾸러미 작업장에 도착하니 마침 은미언니와 김순연 언니, 이은정 언니가 모여 햇땅콩을 다듬고 있습니다. 언니들을 만나 공동체 소개를 들어봤습니다.



은미 언니는 함안공동체의 멤버를 모은 사람입니다. 동네에 여성농민 활동가라고는 은미 언니가 유일했던 시절부터 유일하게 꾸러미의 가능성을 보고 용감하게 판을 벌린 언니지요. 이런 ‘매의 눈’은 꾸러미를 벌리는 것 말고도 지금의 완전체 멤버를 영입하는데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렇게 구한 멤버 구성이 어떻게 되냐고요? 지금부터 소개합니다. 



은미 언니가 가장 먼저 영입한 여성농민 1호는 순연 언니. 은미 언니와 순연 언니는 오가며 인사만 하던 사이였지만 은미 언니가 꾸러미공동체를 결심하고 대화를 걸자 운명처럼 잘 맞는 상대였습니다. 작은 텃밭 여러군데에 식구들이 먹기 위해 다양한 농사를 짓던 순연 언니는 지금이나 그때나 같은 방식의 농사를 짓고 있지만, 지금은 어엿한 소득이 생긴 여성농민입니다. 순연 언니는 꾸러미 작업장을 이전해야 할 때 자신이 갖고 있던 창고의 재산권을 포기하면서까지 통 크게 꾸러미 작업장으로 내어준 고맙고 든든한 원년멤버입니다.



은정 언니는 은미 언니와 학부모로 만난 사이입니다. 농사를 짓지는 않지만 꼼꼼하고 깔끔한 성격의 소유자라 은미 언니가 꾸러미 총무로 영입한 실무담당자입니다. 목소리가 가장 크고, 잔소리를 많이 하는 막내. 하지만 나이가 많은 언니들의 작은 실수도 야무지게 채워냅니다. 그는 농민들이 어려워 하는 회계와 소비자 응대 업무를 척척 해내며 언니들의 빈 자리를 완벽하게 메우고 있습니다.


땅콩 작업을 마무리 하던 중, 갑자기 사륜구동차 한대가 꾸러미 작업장 앞으로 오더니 폼나게 주차합니다. 꾸러미 왕언니 황말순 언니가 송신복 언니를 태우고 멋지게 등장했지요.



꾸러미 작업장에서 유일하게 멋진 사륜구동차로 출퇴근한다는 말순 언니. 앞뒤로 짐을 한가득 싣고 달리는 언니는 포스에서 느껴지듯 농사도, 반찬도 가장 야무지게 하는 여성농민입니다. 40대, 60대인 언니들 위로 나이가 껑충 뛰지만 일을 가장 많이 하는 든든한 일꾼입니다.



신복 언니는 꾸러미에 내는 농산물이 많지 않아 농사 뿐 아니라 공공근로도 하고 있습니다. 거기엔 다 이유가 있다네요. 꾸러미에 내는 농산물 보다 나눠주는 게 더 많다나요. 적게 벌어도 넉넉한 마음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기부천사 신복 언니. 공동체에서는 토종채종포를 관리하며 다양한 토종 농산물을 이어가는 여성농민입니다.


“우리 꾸러미가 2011년에 생겼고, 언니야들이 2011년부터 2013년까지 합류하기 시작했으니 전부 초창기 멤버야. 누구 하나 없으면 꾸러미 공동체가 돌아가지 않는다니까.”


‘눈에 꿀이 떨어진다’는게 바로 은미 언니를 두고 하는 이야기일까요. 꾸러미를 싸는 언니들을 보며, 꾸러미 구성원 한 명 한 명을 소개하는 언니의 눈에는 꿀이 뚝뚝 떨어지는 듯 애정이 서려 있습니다. 그런 은미 언니를 보며 왕언니 말순 언니가 말을 더합니다.


“은미가 우리의 실세지. 우리 때문에 일도 많이 하고 꾸러미에 싸다 남으면 그것도 팔아주니까 고마운 존재야. 실세이긴 실세인데, 일도 제일 많은 실세지. 하하.”




(순연) 고구마 심어놓은데 뽕나무 세 그루가 자랐어. 뽑아야 하나? 그런데 어떻게 심지도 않았는데 저기에서 저렇게 자라고 있지? 신기해서 못 뽑겠어.






(은미) 맨 처음에 농사를 지을때 엄마한테 땅콩 종자를 받았거든. 우리 엄마는 경기도 안성에서 충주로 시집왔는데 충주에서는 아무도 땅콩 농사를 안 하더래. 그런데 우리는 형제가 많거든. 새끼는 많고 간식줄 게 없으니 우리는 꼭 심어야 했던 게 땅콩이야. 이 땅콩으로 귀농한 첫 해 농사를 지었는데 억수로 많이 달렸어. 계산해 봤더니 100배가 넘었으니까. 그런데 그해 땅콩 값이 엉망이어서 남는게 거의 없었지. 지금은 꾸러미 식구들과 같이 나누니까 얼마나 좋아...







(신복) 두부는 아무나 못 만들어. 기술이 있어야 해. 힘도 많이 들고. 여기 콩물 좀 마셔봐. 이게 두유야. 간수 해서도 먹어보고 그냥도 먹어봐. 우리 두부가 얼마나 고소하고 맛있는데...






(은미) 신복 언니는 남편이 돌아가셨어. 그럼 시골에서는 사람들이 우습게 보거든. 그런데 우리가 김장배추 사업을 하면서 동네 친환경 배추를 먼저 수매해줬더니 이제는 마을에서 신복 언니를 우습게 못 보는거야. 그러면서 신복 언니 목소리도 커지기도 해. 그런 변화가 참 다행이야.








우리가 하는 일이 경제적 관점으로만 놓고 보면 엄청난 성과는 아니야. 근데 지금까지 남성들이 마을기업하면서 오래 못가고 다 그만뒀거든. 대부분 남자들끼리 뭘 하면 잘 못해. (왜 그럴까요?) ‘큰 돈’이 안 돼서 그런거 아닐까. 근데 여성농민들은 말아먹지는 않아. 큰 돈이 안 돼도 자기들끼리 그냥 하는 거야. 그래서 군에서 맨날 ‘문 안 닫고 계속 운영해줘서 고맙다’고 해.








젊은 사람들하고 일하니까 재밌고 젊어지지. 여기서는 새로운 얘기, 젊은 사람 생각도 듣고 좋아. 이제는 그냥 다 친구같아. 나이가 좀 더 어린 친구, 나이가 좀 더 많은 친구. 다들 그렇게 생각하지...







소 한 마리와 닭 한 마리의 경제학


다양한 작물이 조금씩 다양하게 심겨있는 순연언니의 텃밭


같은 농민이라도 소 한 마리 파는 것과 닭 한 마리 파는 것은 사정이 달라. 소 키우는 농민은 소만 키워. 소 한 마리만 키워도 수입이 많으니까. 하지만 닭 키우는 농민은 닭 한마리에 몇 천원밖에 안하니 닭도 키우면서 다른 것(농사)도 하잖아. 우리 농업이 지향해야 하는 방향은 이런 게 아닐까. 예전에는 자급자족의 삶을 사는 것이 농민의 삶이었잖아...



신자유주의 이후, 빚을 내서 한가지 작물을 대규모로 농사 짓는 것이 농민의 삶이 되었습니다. 큰 빚을 내서 넓은 땅에 시설을 짓고, 큰 규모로 단일작물을 심습니다. 대규모로 심는 종자와 모종을 농가에서 해결할 수 없으니 비싸게 사야하고, 농가가 노동력을 해결할 수 없어 기계를 사고,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해 농사를 짓죠. 그렇게 농사지어 수확한 농산물을 좋은 가격에 전부 팔게 되면 큰 소득을 얻지만 팔지 못하거나, 가격이 폭락하면 다시 빚만 늘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지금의 대규모 농사는 투기처럼 되어버린 것이 현실입니다.


“나는 처음 도시 살다 촌에 들어와서 보고 놀랐던 게 도시와도 소비형태가 다르다는 거야. 대농은 1년에 몇 억대의 수입을 올리잖아. 우리는 꾸러미로 매년 800만원 정도 벌어. 우리랑 그런 농민들은 같은 농민이라도 씀씀이가 다른 거야. 그렇다고 대농들이 잘 사냐면 주변에서 본 사람들은 그렇지도 않아. 일단 빚이 많고, 많이 벌어서 빚도 조금 갚지만, 다시 빚내서 농사짓는 거야. 그래서 잘 팔면 본전이고, 망하면 폭삭 망하는기라. 소농은 고추가 안 되면 마늘이 잘 될 수 있고, 마늘이 안 되면 배추값이 좋을 수 있고. 리스크를 한꺼번에 받지 않아. 하지만 단작화는 한번 망하면 다시 일어나기 힘든 거야. 이걸 연속으로 살아가는 거야.”


심는시기가 다르고 수확시기가 달라 농번기에는 많이 일하지만, 농한기가 있는 소농의 삶. 겨울에는 신체리듬에 따라 쉬고, 돈을 많이 벌지는 않지만 큰 걱정 없는 소농의 삶이 훨씬 좋다고 말하는 언니들. 본인 자신도 농민운동을 하는 활동가이지만 “농민 스스로가 농업의 가치와 농민의 삶을 고민해야 한다” 말하는 은미언니의 얼굴에는 단호함과 당당함이 느껴집니다.



버릴 것 하나 없는 물건과 정돈 안 된 공간의 사랑스러움


이 주의 꾸러미는 쪽파, 햇땅콩, 겨울초, 고추장, 홍고추, 두부, 호박잎, 쌈채, 유정란입니다.


꾸러미를 포장하는 화요일 오전. 언니들은 아침 9시부터 꾸러미 작업장에 모여듭니다. 부지런한 총무 은정 언니가 동사무소에서 꾸러미 편지를 뽑고, 신문뭉치를 가득 들고 꾸러미 작업장에 왔습니다. 모두가 자신이 내는 농산물의 가격을 당당하게 정하고, 포장은 내것 네것 할 것 없이 일손이 부족하면 누구나 붙어서 함께 합니다. 어쩌면 한없이 지루할지도 모르는 단순작업이지만 자신의 농사이야기, 가족이야기, 동네에서 생긴 이야기... 끊임 없이 이야기 꽃을 피우다 보면 어느새 포장이 끝납니다. 





작업장이 정돈이 안 됐어도 쓰레기는 하나도 없어. 너무 버리는게 없어 정리가 안 돼서 정신은 없지만, 그러니까 이 꾸러미를 쌀 수 있는거야. 우리가 이런 방식으로 사니까 토종종자도 심고 가꿀 수 있는 거야.





낡고 허름한 물건이 잔뜩 쌓여있는 꾸러미 작업장. 정리를 해도 어지러진 듯 낡은 물건이 잔뜩 쌓여있지만 모두 쓰임이 있는 것들입니다. 당장 순연 언니가 쌈채를 포장하는 흰 천은 비닐에 채소를 가지런히 넣는데 큰 공을 세웁니다. 언제 어떻게 다시 쓸지 모르니 박스 하나도 버릴 수 없고, 가까운 거리는 택배를 이용하지 않고 직접 배송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큰 보냉가방도 많이 사용합니다. 이렇게 쓰임도 사연도 많은 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귀하게 여기며 끊임 없이 쓰임을 찾아 쓰는 것. 이것이 언니네텃밭 여성농민들이 지향하는 소농다운 삶이 아닐까요. 



여전히 청춘인 언니들을 응원합니다



1박 2일동안 언니들 곁에서 꼬치꼬치 캐묻고, 꾸러미도 함께 싸다보니 순연 언니가 묻습니다.
“우리 인터뷰, 어느 신문에 낼 거예요?” 언니네텃밭 홈페이지에 올린다고 하니 우리 언니들, 제발 신문에 내 달라고 성화입니다. 꾸러미 회원이 적으니 많이 늘었으면 좋겠다고요. “얼마나 늘면 좋겠어요?” 물어보니 글쎄 딱 10명만 늘면 좋겠다네요. 언니네텃밭 함안공동체 제철꾸러미는 언니네텃밭 홈페이지에서 신청할 수 있습니다


금전적인 목표는 소박하지만(?) 신념과 실천은 거대한 함안공동체 언니들. 언니네텃밭 여성농민들은 ‘1농가 1토종 지키기’ 운동을 하고 있지만, 함안공동체 언니들은 최소한 3가지 이상의 토종씨앗을 지키기로 약속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농사를 짓지 않는 은정 언니까지 토종씨앗 3가지 이상은 모두 심고 있죠.
이렇게 꾸러미 작업장의 작은 물건 하나까지 아끼고, 토종을 더 많이 심으며, 꾸러미 소비자회원들과 나누는 언니들이 제철 꾸러미로는 버는 돈은 월 20~60만원 정도입니다. 지금의 최저임금에 비하면 훨씬 못 미치는 금액이지요. 하지만 생태를 살리는 작은 농사가, 공동체에 꾸준히 이야깃거리를 만들어주는 정든 소비자가,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두런두런 꾸러미를 쌀 수 있는 서로가 좋아 앞으로도 꾸러미를 싸겠다는 함안공동체 여성농민들. 언니들의 이런 농사와 꾸러미를 어찌 응원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 언니네텃밭 여성농민 생산자 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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