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흥이라고 하기보다는 ‘해야지 해야지’ 하던 일을 내일은 꼭 하고 말겠다고 생각했다. 기타를 치기 시작한 지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남들보다 실력이 더디게 늘어가는 나를 보며 자책하기를 반복하다 혼자 버스킹을 하기 위해 떠나보기로 했다. 그래서인지 전날부터 속이 영 좋지 못했다. 과민대장 증후군. 몸이 말을 듣지 않아 시작하기도 전에 기진맥진이다. 예민함의 끝을 달렸다. 답답하고 겁이 났다. 무대 위를 올라가기 전부터 조여오는 긴장감으로 무대공포증이 나타났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다.
제주에서 '바다'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곳인 함덕해수욕장을 찾았다. 노을이나 해가 뜰 때오면 더 좋을 것 같긴 했지만 나에게 시간 따위는 상관없었다. 하는 게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온통 머릿속에는 혼자 하는 버스킹 생각뿐이다. 다른 걸 생각할 틈이 없었다.
해수욕장에서 조금 떨어진 잔디밭에 자리를 잡아 바다를 등지고 기타와 앰프를 세팅했다. 평일 낮이라 그런지 바다는 생각보다 한산했다. 관객이 없어도 노래는 시작해야 한다. 절대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돌아갈 수는 없었다.
긴장을 푸는 데는 템포가 빠른 곡이 최고다. 내 뒤편에 나란히 앉아 이야기하고 계시는 아저씨 세 분에게 바치는 곡으로 ‘목로주점’을 선곡했다. 앰프에서 기타 선율과 목소리가 나오자 시선이 느껴졌다. 짜릿한 순간이다. 평일 낮의 분주함이 느껴지는 듯 지나가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잠시 멈춰 나에게 시간을 내어주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준비한 노래를 연이어 부르고 있었다.
당신에게서~ 꽃내음이 나네요~하고 부르는데 여성 한 분이 내 앞에 떡하니 섰다. 어깨끈을 메고 F코드와 Bm코드를 나오는 노래를 치려니 여간 노래나 기타가 볼품없었는데 핸드폰을 들고 촬영을 하며 같이 몸을 들썩이며 리듬에 맞춰 춤을 추시며 찍었다. 노래가 끝나자 나를 위해 환호와 박수를 쳐주셨다.
그녀에게 “감사합니다. 여행 오셨어요?” 물으니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녀는 중국어로 설명을 해주고 있었다. 제주에 중국 붐이 불던 때 배웠던 짧은 중국어로 감사하다고 연신 인사드렸다. 한국 가사에 잘 모르는 노래일 수도 있었을 텐데 함께 즐긴 음악은 남녀노소 국적을 마다하는 놀라운 힘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한무리의 사람들이 주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긴장감이 몰아쳐 노래를 부르는 내 목소리에 고스란히 떨림이 느껴졌다. 그때, 무리에서 웃음이 터졌다. 의식하지 않으려 애썼지만 쉽지 않았다. 노래가 다 끝나기도 전에 자리를 뜨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며 마음이 무거워졌다. 노래를 부르다보면 지나가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나를 향한 웃음이 아닌데도 스스로 위축되어 버린다.
악보를 뒤적거리는데 옆으로 큰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지나가는 아저씨가 있었다. 아저씨를 보며 한 곡 부르실래요? 했다. 아저씨는 노래는 좋아하는데 기타는 칠 줄 모른다며 여기서 무얼 하냐고 물었다. 기타 연습하러 나왔어요. 라고 이야기했다. 얼마나 기타를 쳤냐는 물음에 이제 기타 친지 1년 됐는데 실력이 안 늘어서 연습하러 나왔다고…. 차마 기타 친지 3년이라고 말을 할 수 없었다. 아저씨는 뭔가를 잘하고 싶으면 꿈에 나올 정도로 열정을 바쳐서 해야 한다며 자신은 노래를 엄청 좋아해 꿈에서도 노래를 부르신다하셨다. 저도 노래를 더 좋아하고 싶어요. 잘하고 싶고요. 제주에 내려온 지 1년이라는 아저씨에게 ‘la vie en rose’를 불러 들려드렸다. 흔쾌히 노래를 듣겠다 해주시고 칭찬도 해주시며 열심히 하면 된다며 노래를 부르시며 멀어지셨다.
1시간도 채 되지 않는 시간이었지만 어렵고 한없이 감사한 시간이었다. 누군가에게 내 목소리로 위로를 드리고 싶었는데 오늘 나는 위로를 받고 왔다. 생각만 하던 일을 하고 나니 너무 홀가분했다. 생각지 못한 일들이 있었지만, 그것이 마치 이벤트인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좋은 시간이었다.
생각 속에 있는 걸 실천으로 옮기는 건 몹시 어렵다. 시간과 용기가 필요한 일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