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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Jan 21. 2019

서대문구 영천동을 걷다.

독립문을 지나 동네 한 바퀴

날씨가 풀리는가 싶더니 서울의 하늘은 미세먼지로 가득 뒤덮였다. 미세먼지 때문에 파란 하늘을 보기 힘들었던 2019년 1월의 어느 날, 영천동에 다녀왔다.


* 영천동은 서대문구에 위치한 작은 동네다. 근처에 냉천동, 행촌동, 천연동 그리고 독립문과 서대문 형무소가 있는 현저동까지 오밀조밀 모여있다.



1. 독립문


독립문역(3호선)에서 내리면 독립문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독립문을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라 왠지 모르게 설렜다.

독립문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독립문을 지나 길을 건너면 바로 영천시장으로 갈 수 있다. 시장에서 맛있는 음식들을 먹고 나서 산책이 필요하다면 독립문과 서대문 형무소가 있는 공원을 한 바퀴 돌아보자.




2. 영천시장


독립문 영천시장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시장은 독립문 바로 건너편에 위치한 시장이다. 오고 가는 사람들이 많은지 시장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영천시장 입구에는 백종원의 3대 천왕에 나왔다는 떡볶이 가게가 자리하고 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듯이 떡볶이를 좋아하는 나와 팀원들은 홀린 듯이 떡볶이 집으로 들어갔다.

마치 옛날에 자주 가던 학교 앞 노점 분식집을 떠올리게 하는 가게 외관


가게는 나이 지긋한 사장님이 운영하고 있었다. 가게 한 편에는 아마도 사장님의 남편으로 추청되는 분이 쿨하게 잠을 청하고 있었는데 그 순간 '아, 여기는 맛집이어야 해, 맛집일 수밖에 없겠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모든 메뉴는 3천 원이다. 
투박한 떡볶이
단출한 튀김 종류

떡볶이, 순대(내장 팍팍), 튀김 모두 1인분씩을 주문했다. 역시 매콤한 떡볶이와 기름진 튀김, 그리고 순대의 조화는 환상적이다. 원래 가려던 떡볶이 가게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맛있게 떡볶이를 먹었다.

떡볶이 한 입 드실래요?


떡볶이를 맛있게 먹고 나서 배통통 두드리며 본격적인 시장 구경에 나섰다. 생각보다 규모가 큰 시장이라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떡볶이를 먹고 나니 달달한 음식이 당기던 찰나 팥죽과 호박죽을 파는 가게를 지나는데 호박죽이 먹고 싶어서 발걸음을 멈췄다. 

팥죽과 호박죽
달달한 호박죽 한 그릇

달달한 냄새에 이끌려 호박죽 한 그릇을 먹었다. 호박죽 한 그릇에 단돈 4,000원.

적당한 단맛이지만 달달함을 추가하고 싶다면 설탕을 넣어 먹으면 된다. 반찬으로 김치도 같이 주는데 김치 없이도 한 그릇 뚝딱하고 비울 수 있다. 느끼하지 않고 달달한 호박 맛이다.


호박죽 한 그릇은 뚝딱 비우고 다시 시장 구경에 나섰다. 선짓국을 담고 있는 아주머니의 모습이 정겨워 사진에 담았다.

갓 담은 선짓국을 포장해 뒀는데 사진에 보이는 한 통에 단돈 5,000원이다. 선짓국 사고 싶었는데 아직 둘러볼 곳이 더 많아 구매하지 않았다. 집에 가기 전에 다시 들러야겠다고 생각하며 다른 가게로 눈을 돌렸다.


떡집
반찬가게
팔팔 끓고 있던 순댓국
족발집



발걸음을 돌려 영천시장 명물 꽈배기를 먹으러 갔다. 원래 가려던 집에 꽈배기가 다 팔려서 다른 가게로 갔는데 역시나 꽈배기는 맛있었다. 그리고 믿기지 않는 가격, 꽈배기 4개에 1,000원!

영천시장의 명물 꽈배기


꽈배기를 사들고 원래 가려던 떡볶이집에 자리를 잡았다. 떡볶이, 순대, 튀김을 골고루 시켜서 2차 떡볶이를 했다. 역시 떡볶이는 언제 먹어도 맛있다. (아까 먹었던 떡볶이와 비교하자면 전자와 후자 중에 후자를 택하겠다.)

떡볶이와 순대, 튀김 모두 맛있었고 카드로 결제하기 편해서 더 좋았다.


통닭집

사진을 찍고 있으니 통닭집 사장님이 즐겁게 웃는 얼굴로 브이를 날려준다. 통닭을 살 건 아니었는데 사장님이 환하게 웃으며 사진을 찍게 해주시니 통닭을 사야겠다는 마음이 목구멍 끝까지 차올랐다. 배가 불러서 통닭을 사지는 못했지만 혹시나 독립문 영천시장에 가게 된다면 친절한 사장님이 있는 통닭집으로 가시길. 친절하게 웃는 사장님 덕분에 기분 좋게 시장에서 나왔다.


영천시장에서 먹은 것들

떡볶이/순대/튀김(1인분) 각 3,000원

꽈배기 1,000원

호박죽 4,000원




3. 골목 책방


영천시장에서 서대문역 방면으로 나와 독립문이 있는 방향의 큰길로 걷다 보면 골목 책방이라는 입간판을 볼 수 있다.


입간판이 가리키고 있는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 보니 '책'이라는 작은 간판과 함께 양 옆으로 책들이 한가득 쌓여 있다. 가게 내부는 물론 외부에도 자리하고 있는 책꽂이에는 사람들의 손때가 잔뜩 묻은 중고 서적들이 꽂혀 있다.

책방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지나가던 동네 주민분이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여기서 거래되는 중고서적을 청계천이나 다른 중고책 상인들이 사들이고 있어서 좋은 물건이 없다고 했다. 이런 소소한 만남이 꽤나 즐거웠다. 다음번에는 청계천 헌책방 골목에 가봐야겠다.


중고 서적을 정리하고 있는 사장님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이 많은 책들은 누구의 손을 거쳐 여기까지 오게 됐을까? 마음에 드는 책을 고르지 못한 아쉬움을 내려두고 발걸음을 돌렸다.



4. 하이드아웃(카페)


동네를 돌아보다 예쁜 카페를 발견했다. 카페 이름은 하이드아웃, 아지트라는 뜻을 가진 이 카페의 이름과 깔끔하게 꾸며진 외관이 좋아서 카페에 들렀다.

카페 광고를 하는 것 같아서 쓰지 않으려고 했는데 사장님의 친절함에 넣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직 오픈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았다는 이 카페가 잘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았다.


예쁘게 세팅되어 나오는 음료와 디저트 메뉴들


음료 3잔과 케이크를 시켰더니 빵 하나를 서비스로 줬다. (아, 내가 이 동네에 살았으면 단골이 되었을 거야.)

그리 크지 않은 카페 내부는 LP와 직접 기르고 있는 레몬 나무가 있었다. 곱게 말린 꽃과 테이블마다 켜져 있는 양초가 따뜻한 느낌을 줬다. 뜨끈한 레몬차를 마시니 추운 날씨에 얼었던 몸이 사르르 녹았다.


주소 : 서울 서대문구 통일로 161 (하이드아웃, 카페/디저트)



5. 영천동 주택가 골목


서울은 화려하고 큰 건물이 많다. 야근하는 사람들 덕분에(?) 아름다운 야경을 볼 수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그런 서울에서 아직 힙한 곳으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옛날 느낌이 물씬 풍기는 골목은 너무나 반갑다. 시골에서 상경한 나는 서울에서 꽤나 유명한 곳을 제외하면 지명으로 거기가 어디에 위치한 동네인지 잘 모른다. 영천동도 그랬다.


요즘 일하면서 촬영 나갈 곳을 찾아보고 있다. 그날도 어디를 가면 좋을까 여러 곳을 찾아보고 있었는데 영천동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영천동에 오게 됐다.

영천동은 독립문 건너에 위치한 작은 동네다. 산을 끼고 있는 지형이라 주택가도 오르막길에 형성돼 있다. 조용한 주택가 골목을 걸으니 마치 먼 곳으로 여행을 온 것만 같다. 새로운 것은 생각보다 우리 가까이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주택가를 지나 좁은 골목을 걸었다. 색이 바랜 옛날 간판과 오래된 주택들을 마주하니 마치 과거로 돌아간 기분이다.

낮은 지붕들 뒤로 아파트가 보인다. 예전에는 이런 풍경들이 이질적이라 느껴졌는데 사진을 찍으면서 이게 바로 서울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문득 영천동이라는 지명의 유래가 궁금해졌다.

영천동 동명의 유래

영천동 동명은 현재 독립공원 뒤 현저동 105번지 현저동사무소 서쪽 부근 산 정상에 오르면 속칭 ‘악박골’ 약수터 일명 영천이 있던 데서 유래되었다. 이 약수는 하루에 약 57석 정도의 약수가 나왔는데 위장병 등에 신기한 약효가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찾았다. 이 부근은 화강암의 열하수가 솟아 나오는 관계로 좋은 우물이 많아 영천 · 냉천과 같은 동명이 생겼다. -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예로부터 물이 맑은 동네였다고 하니 왠지 더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에 영천동을 찾게 되면 맑은 물 이 있는 약수터에 들러야겠다.



6. 대성집


독립문 바로 근처에 위치한 행촌동에는 유명한 도가니탕 맛집이 있다. 60년 원조라는 간판에 걸맞게 식당은 초저녁부터 사람들로 가득하다.


자리를 잡고 도가니탕과 도가니 수육을 주문했다. 주문하자마자 거의 바로 나오는 반찬과 음식 덕분에 기다리지 않고 빠르게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도가니 수육을 시키면 건더기 없이 국물만 따로 주는데 국물이 식어서 데워달라고 하면 바로 따뜻한 국물로 바꾸어 준다. 국물이 식었다고 하니 바로 따뜻한 국물로 가져다주는 사장님의 마음이 더 따뜻하게 느껴졌다. (도가니 수육이 식었다면 따뜻한 국물에 넣어 따뜻하게 드시라.)


도가니 수육을 간장소스에 탁! 찍어 먹으니 세상 무엇도 부러울 것 없다.

처음 먹어본 도가니 수육은 생각보다 훨씬 더 맛있었다. 음식을 먹으며 주위를 둘러보니 젊은 사람들보다는 나이가 있는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에게 이 식당은 어떤 의미일까? 


사람들이 노포를 많이 찾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요즘 재개발되면서 사라지고 있는 곳들이 늘어나고 있다. 한 동네의 역사를 함께한 노포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에 아쉬운 마음이 크다. 최근 뉴스에 자주 등장하고 있는 을지로 재개발 이야기도 그렇고 한 동네와 역사를 같이한 오래된 가게들이 그냥 재개발이라는 이름 하에 무턱대고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성집도 자리를 지키며 계속 손님들을 맞이했으면 좋겠다.



마무리하는 이야기


영천동이라는 동네를 돌아보면서 이렇게 넓은 서울에 아직 가보지 못한, 또 잘 알려지지 않은 동네가 얼마나 많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레트로 열풍이 불면서 옛날 느낌이 물씬 풍기는 동네들이 엄청나게 각광을 받고 있다. 그런 곳이 힙한 장소로 알려지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지역이 되면 활기가 생기지만 동네가 유명해지기 시작한 특유의 감성이 오래 유지되기 힘들다.


그래서 나는 영천동이 조금 덜 '핫'했으면 좋겠다. 독립문을 기준으로 영천동뿐만 아니라 여러 '동'이 밀집되어 있는 서대문구의 이 작은 동네가 나는 조금 더디게 유명해지길 바란다. 이 동네가 좀 더 살기 좋은 곳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서.


사람들이 있는 곳, 무심코 지나쳤던 곳 모두 동네라는 추억의 공간으로 기억되길 바라며 오늘 동네 구경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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