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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프리카 마치 Jan 17. 2019

1. 역사를 기리는 다양한 방식과 각자의 의미

2018년 12월 28일 ~ 2019년 1월 3일

AFP / 이 전통은 케이프 식민지 시절 노예제가 폐지되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노예들은 새해 다음날에 휴식을 허락받았다.


2019년 새해의 첫 글은 어떤 주제로 쓰게 될 지 궁금했다. 새해를 맞이하는 희망에 대해 쓰게 될 것인가, 여전히 아프리카를 괴롭히는 힘겨운 사실에 대해 쓰게 될 것인가.  그런 생각으로 유심히 사진들을 보며 영어로 된 해설을 번역하던 중, 다음의 문구를 마주하게 되었다.


남아공의 케이프타운에서는 축제가 계속되었다. 케이프 민스트럴 밴드는 전통 카니발을 고수한다. 이 전통은 케이프 식민지 시절 노예제가 폐지되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노예들은 새해 다음날에 휴식을 허락받았다.


새해 축제로 전통 카니발을 고수하는 것은 당연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식민지 시절에 노예로 학대받던 모습을 축제로 재현한다는 것은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일 년에 고작 하루 ‘허락’받은 휴일. 저 사람들은 자신의 조상이 그렇게 힘들고 비참하게 살았던 것이 슬프지도 않은가. 일 년에 겨우 하루 쉴 수 있는 노예의 삶을 새해 축제라 명명하며 재현하는 것이 미안하지도 않나. 어떻게 저렇게 웃으면서 그 때의 참혹했던 일을 즐길 수 있을까. 이런 것이 문화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럼 이것도 다양성의 차원에서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이 사진은 편협함을 지향하고  열린 사고를 지녔다고 자부했던 나마저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우리는 경각심을 갖기 위해 일제 강점기 시절을 복원하고 역사적으로 기록은 해도 그것을 축제로 즐기진 않는다. 식민통치는 아픔으로 기억되는 것이지, 절대 유희로 재현될 수 없는, 재현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독립 후 한국전쟁과 사회적 혼란, 고도의 경제성장과 (절반의 성공인) 민주화를 거의 반 세기 만에 마무리짓는 저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독립 후 7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과거 친일을 했던 자들의 후손들이 현재의 기득권이 되어 이 사회를 좌지우지하는 기막힌 현실 속에 살고 있다. 그러므로 그 시절을 축제로 만들어 즐거워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일일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잘못 이용될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일이다.  


EPA / 도심에서는 수십 명의 공연단이 음악을 연주하고 춤을 추면서 퍼레이드를 한다.


그러나 한국인으로서의 민족의식만을 갖고 이 축제를 바라보면 내 의식은 절대 성장할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당장 ‘케이프 민스트럴 카니벌’을 검색했다. 피상적인 설명의 한국 기사들 사이에서 이런 문구를 발견했다. 출처는 <네이버 지식백과>의 ‘케이프타운 민스트럴 카니벌’이다.


인종차별정책으로 오랜 시간 고통받는 과정에서 흑인들은 자신들의 역사와 문화, 정체성을 확인하는 방법으로서 결코 이 축제를 포기하지 않는다.

(내 생각과 달리 그들은 이 축제를 자신의 역사와 문화, 정체성을 확인하는 방법으로 활용하는구나.)


다양한 인종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결속시키고 화합하게 하는 연결고리 역할을 충실하게 해내고 있다.

(나는 이런 축제가 정치적으로 잘못 이용되는 것을 걱정했는데, 이 나라에서는 오히려 국민들을 화합시키는 연결고리가 되는구나.)


공연단(클롭세)에 소속되어 축제를 준비하는 동안 각종 혜택으로부터 소외된 계층의 아이들에서부터 범죄, 약물 남용, 질병 같은 사회문제에 노출되어 힘겨워하는 어른들까지, 음악과 춤, 악기 연주, 의상 디자인 등에 몰두하며 고통스러운 현실을 잊는 것은 물론 새로운 적성이나 능력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소외계층의 사회진입과 적성 및 진로교육’은 내가 가장 중시하고 가치를 부여하는 활동인데… 이 축제가 이런 실질적인 효과를 내며 소외된 사람들의 사회적 재기를 돕고 사회에 기여를 하다니… 이해하지 못할 활동으로 폄하했던 게 미안해지는군.)


그들의 선조들에게 소중한 ‘자유’를 상징하던 춤과 노래는 이제 삶에 대한 열정과 기쁨을 상징하며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밝고 평화로운 미래를 향한 ‘희망’의 울림이 되어가고 있다.

(나는 일 년에 고작 하루밖에 쉴 수 없는 것을 ‘억압’으로만 생각했는데… 이 사람들은 그것을 ‘자유’로 받아들이고 삶에 대한 열정과 기쁨으로 여기며 밝고 평화로운 미래를 향한 ‘희망’으로 만들었구나.) 


AFP / 수요일, 남아공의 케이프타운에서는 축제가 계속되었다. 케이프 민스트럴 밴드는 전통 카니발을 고수한다.


이 글을 읽는 내내 가슴이 뭉클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승화’라는 표현은 이런 경우에 사용되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의아했고 심지어 패륜이라는 생각까지 했다. 그런데 조금만 알아보고도 이것이 얼마나 멋진 의미를 지닌 축제인지를 알게 되었다. ‘정말 많이 알고 볼 일이야’라는 농담어린 말이 입에서 절로 나왔다. 비슷한 역사적 경험이 서로 다른 문화적 현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을 ‘케이프 민스트럴 카니벌’을 통해 확실하게 체험했다. 다른 나라와 다른 문화를 공부하는 즐거움이란 바로 이런 것인 것 같다. 앞으로도 이해하기 힘든 현상을 이해하기 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는 편협한 시각과 자기 우월적 사고에서 벗어나는 기회가 자주 생기길 바란다. 


그러나 주의할 것이 있다. 우리나라의 일부 사람들이 정치적 노림수를 갖고서 하는 표어, ‘과거를 잊고 미래로 나아가자’와 이 축제 ‘케이프 민스트럴 카니발’의 미래지향적 가치는 결코 같은 종류의 것이 아니라는 것! 이 둘을 혼동하여 ‘케이프 민스트럴 카니발’의 의미를 훼손하고 가치를 떨어뜨리는 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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