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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기록 Dec 17. 2024

일과 나 사이, 건강한 거리를 유지하는 법

더 잘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진 주니어라면

2024년 11월 3일


날짜의 앞자리가 2개나 바뀐 뒤에야 소식을 전합니다. 편지를 쓰는 지금 이 장소는 동네 서점입니다. 주말 중 하루는 꼭 혼자 시간을 보내곤 하는데, 그때 가장 좋아하는 것이 바로 이 서점에 오는 거예요. 책을 읽는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는 게 마음에 들어서 참새가 방앗간 가듯 들리게 됩니다. 이사 3개월 차가 되니, 슬슬 동네에 좋아하는 장소들이 하나 둘 생겨나요!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넘겨버릴까 싶었지만, 한 달 넘게 답장을 보내지 못했던 이유가 우리 편지의 재료인 ‘일’이었기 때문에 그냥 쓰기로 결심했습니다. 문득문득 터지던 눈물을 떠올리니 왠지 목이 타서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는 말도 덧붙입니다.




지난 편지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가 퇴사하고 새로운 동료가 왔다고 말씀드렸었지요. 어떻게 하면 협업을 잘할 수 있을지, 팀장 없이도 팀장처럼 일할 수 있을지 고민이라고 털어놓았던 것도 같습니다. 그런데 형석님의 답장을 받은 그날, 다른 팀에서 넘어온 새 동료도 퇴사 소식을 전해 왔습니다. 업무 환경을 바꾸고 싶던 차에, 좋은 제안을 받게 되어 이직을 하게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솔직한 마음으로는 ‘그럼 우리 팀에 왜 오겠다고 했지?’ 생각부터 들었습니다. 고작 3일이지만 그 동료의 온보딩을 위해 몸과 마음을 썼던 시간이 허망했어요. 하지만 이런 자연재해 같은 상황 속에서도 회사는 돌아가야만 했습니다. 분명한 내상을 입었는데, 그걸 들여다보거나 치유할 틈도 없이 그냥 앞만 보고 달려야 했어요. 아니 정확히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죠.


사실 금방 말한 그 두 동료의 퇴사 외에도, 정말 의지하고 좋아하던 팀 동료 2명이 같은 시기에 부서이동, 출산휴가를 갔습니다. 예정한, 그리고 예정하지 않은 이별들이 계속되는 10월이었어요. 함께하는 사람들을 중요하게 여기는 제게는, 그 이별 하나하나가 절대 작지 않았습니다.


다행히도 너무 늦지 않게 또 한 번 내부 인사이동으로 누가 올지 정해졌지만, 아직은 기존 파트 일을 끝낼 수가 없어 10월 말이 되어서야 정식 합류를 한다고 하셨어요. 그 사이 인턴 포지션으로 한 명을 추가 채용하였는데, 그 분마저도 2주 정도 하다가 퇴사를 하셨습니다.


모든 게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 '나라도 중심을 지켜야 해' 되뇌었던 게 문제였을까요? 난 괜찮다, 상황은 지나갈 것이다 계속 저 자신을 다독이려 애썼지만 결국 지난주 월요일 회사에서 엉엉 울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상황을 탓하지 않고, 지금 할 수 있는 일들에 집중하고 싶은데 그게 쉽지 않았어요. 부정적인 생각의 굴레 속에서 빠져나오기가 힘들었습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팀장과 파트장에게 DM을 보내 제 상태를 말씀드리고 하루만 연차를 쓰겠다고 했어요. 그날이 형석님께 돌연 전화드린 날이었습니다.




멈추고 쉬어갈 용기


그렇게 얻은 하루치의 시간은 잠시 역할과 책임에서 벗어나, 제 날 것의 마음과 생각을 바라보는 데에만 사용했습니다. 필요로 하던 문장을 선물하는 책도 읽고, 일기를 몇 바닥이나 쓰고 돌아왔어요. 결과적으로 지금은 다시 안정을 되찾았습니다. 돌이켜 보니, 그때의 저는 멈출 용기가 없었던 것 같더라고요.


영화 인사이드 아웃 2에서 '불안이'가 너무 많은 계획과 강박으로 자신을 몰아붙이다가 결국 스스로 만든 소용돌이에 갇혀버리고 말잖아요. 그 장면을 보고, 불안감에 압도당해 쉴 틈 없이 살아가는 건 고장 나서 멈춰버린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은유가 아닐까 생각했었습니다.


저 역시 비슷한 경험을 하며 다시금 on/off의 중요성을 깨달았습니다. 일을 잘하고 싶다면, 그리고 무엇보다 오래 일하고 싶다면 더더욱 잘 쉬는 법을 알아야만 한다는 사실도요. 너무 가까워진 일과 나의 거리, 내가 바라는 나와 실제 나와의 거리를 인지하고 그걸 유연하게 조절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간의 일을 축약하고 또 축약했는데도 편지가 길어졌네요. 아침저녁으로 날이 부쩍 쌀쌀해지니, 작년에 먹었던 도쿠리가 생각납니다. 조만간 오뎅탕에 한 잔 하면서 더 이야기 나눌 수 있으면 좋겠네요. 그럼 이만 줄이겠습니다.



▶ 그날의 깨달음을 담았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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