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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카위빙 바이 경 Sep 01. 2021

0. 행복 아카위빙

짜임있는 글을 위한 첫 코를 꿰며.

* 이 글은 작가 신청할 때 심사받은 글로써 당시 글에 기재된 날짜는 일부러 고치지 않고 문맥만 조금 수정하고 발행했습니다.




사실 요즘 새롭게 좋아지게 된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지금까지 8년 동안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노력해왔고 최근엔 슬럼프도 겪었단다. 처음엔 그가 갖고 있는 실력과 어느 정도 내가 좋아하는(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법한) 수려하고 깔끔한 외모를 갖고 있어서 호감을 가졌지만 알면 알수록 내 안목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인정할 정도로 그 사람의 태도와 진국인 내면을 보고 더 좋아졌다. 본업에 늘 간절해 보였고 충실했고 때론 잘 안돼서 그가 슬럼프를 겪었다는 모습마저 진심으로 다가왔다. 그만큼 노력했다는 거니까. 그의 본업 외에 좋아하는 취미 하나엔 자기 인생의 전부라고 할 정도로 빠져 있는 걸 보니 부럽기까지 했다. 동갑인 나는 되돌아보면서 순간 부끄러워졌다.



나는 과연 그처럼 어떤 것에 빠져서 그것만 생각해도 행복해 미칠 것 같고 설레고 그게 내 인생에 있어서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까?라고 생각했더니 잘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뭐든지 ‘적당히‘였다. 좋은 공간도, 좋아하는 영화, 음식, 음악 심지어 가끔씩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마저 일부러 적당한 거리를 뒀다. 많이 누렸을 때 스스로가 쉽게 질려할까 봐 하는 나의 소심한 두려움에서 비롯됐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앞뒤 재지 않고 미친 듯이 직진하는 건 없었다. (요즘엔 그래도 좋아하는 것들에 느리지만 지속적으로 꾸준한 애정을 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물론 행복을 느끼는 속도와 마음의 크기는 저마다 달라서 비교할 수는 없지만 내가 오랫동안 은은하게 행복을 느끼는 방법을 안다. 동시다발적으로 나 스스로에게 행복의 오감을 느낄 수 있도록 자극을 주는 것인데 특히 난 내 손때 탄 것을 좋아한다. 내가 꾸민 머릿속 작은 공간에, 분위기에 맞춰 내가 선정한 노래에, 내가 찍은 사진을 액자에 넣어 벽에 걸어놓거나 바닥에 기대 놓고, 그리 훌륭하진 않지만 애정과 노력이 깃든 어떤 형태의 내 작품들을 내가 보이는 곳곳에 즐비한 것을 상상했을 때 행복함을 느낀다. 그래서 그런지 평소에 음악이나 예술 분야에 더 시야를 넓히는 걸 좋아하고 전시회에 갔을 때는 무조건 엽서나 포스터를 사 오는 습관이 있다. 감상을 하고 나서의 여운을 간직하기 위함과 진짜 내 물리적인 공간을 가졌을 때를 대비해서 말이다.



어쨌든 이걸 누리기 위해선 물리적이든 심리적이든, 온라인상에서든 혹은 오프라인 상에서라도 공간은 필요하다. 유독 왜 이렇게 공간에 집착하냐고 묻는다면 사실 내 트라우마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강하게 열망하는 대상이다. 그리고 오히려 내가 아직 제대로 가지지 못한 대상의 부재이기에 그걸 갖기 위해 내 삶에 더 열심히 임해야겠다고 노력하게 만드는 수단이기도 하다.



내가 브런치에 꾸준히 글을 남기려는 이유는 나를 정의할 수 있고 오직 나를 피력하기 위한 공간이라는 것이다. 알고 보면 나는 마음과 생각이 복잡해서 정리가 늘 필요한 사람이다. 그래서 남들에 비해 특출 난 능력은 없지만 생각을 잘 정리해서 검은 활자를 빈 배경에 천천히 채워나가는 것에 행복을 느낀다. 하물며 휴대폰 메모장에 단 한 줄만 써도 말이다. 또한 과거에 쓴 기록이 남아있기에 언제든 생각나면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글을 쓸 수 있었던 계기 중 하나인데 5년 전 이맘때쯤 내 개인 블로그에 남긴 글을 보며 더 남겨 놔야겠다는 마음에 박차를 가했다.) 나는 그래서 앞으로 글을 더 열심히 쓰려고 한다. 가끔 나를 잊고 살아갈 때 과거의 나는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아갔던 사람일까 하며 돌아보고자 하고,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둘씩 글로 표현해서 이 공간에 하나의 아카이브를 꾸릴 수 있는 이유도 있다. 결론은 이왕 태어난 이상 내가 좋아하고 나를 잘 표현할 수 있는 수단으로 행복을 느끼며 살고 싶고 남들과 함께 동시대 살아가는 이십 대 후반의 나로서 이 공간에 나를 남겨보려고 한다는 것이다. 글을 쓰며 내가 뭘 좋아하고 뭐에 미칠 수 있는지 외사랑 하는 것 마냥 나 자신을 자꾸만 알아내고 싶다.



돌아와서, 요즘 빠진 그의 지난 8년간의 노력을 다시 돌아보니 어렵사리 살아왔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방법으로 늘 고민해왔고 발자국처럼 잘 남겨온 점에서 나도 꾸준히 나를 남겨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지난 아카이브를 봤을 때 어려운 시기 덕분에 간절함과 진정성을 느낄 수 있었던 것처럼 내 글도 값진 경험들로 인해 그럴 수 있기를 바란다. 앞으로 공개된 곳에서 글로 꾸준히 나를 더 잘 드러낼 수 있다는 점에서 다시 조금씩 마음이 동한다. 사실 이것저것 한다고 바쁘다는 핑계로 오랫동안 글을 미뤄왔지만 며칠 전, 혼자 맥주 한 캔을 따며 여전히 본업에 미쳐있었던 그를 봤을 때 이유 모를 울림과 함께 ‘아 정말로 내가 제대로 된 글을 쓸 때가 된 것 같다.’라는 마음이 들었다. 그날 밤 초안을 쓴 뒤 며칠 째 수정을 거쳐 이렇게 첫 글을 쓰고 마무리한다.


p.s.


사실 누가 봐도 나는 아직도 어린 나이지만 5년 전 이십 대 초반의 내 글을 보고 사뭇 놀랍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예기치 못하게 내가 글을 다시 써야겠다고 맘을 먹게 된 계기 중 하나가 되기도 했다. 마침 그 글도 이때와 비슷하게 7월 초 장마시기였는지 그때도 열심히 애정을 주고 있었던 어린 나는 그런 글을 썼나 보다. 이런 말 하기 뭐하지만 그 시절의 내 글을 보니 당시의 보존된 감정이 값지며 풋풋하고 싱그럽다. 행복의 순간이었다. 그 글을 아래에 남겨본다.





2016.7. 1 “기습호우”라는 제목의 글 중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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