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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떼엉 Nov 26. 2020

가사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세대

'슬픔은 간이역에 코스모스로 피고'


의미를 곱씹을수록

생각나는 구절   


글을 쓰거나 책을 읽을 때 80.90년대 노래를 간간히 틀어 놓는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김광석의 '기다려줘'를 듣고 있다.) 김광석 노래 매들리를 즐겨 듣는데, <그 날들>에 ‘부질없는 아픔’이라는 어감을 좋아한다. 바다새의 바다새에서는 ‘새야 아픔 맘 어이하나’의 어이하나, 라는 음악적 말투도 새롭다. 생각해보면, 옛날 노래 가사들 중에 의미를 곱씹게 만드는 구절이 많은 것 같다.  


문득 이문세의 휘파람의 ‘그대여 나의 어린애 그대는 휘파람 휘이이~'라는 대목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왜 어린애라 하는지 휘이를 왜 '휘이이'라고 부르는지 의아해졌다. 가사 속 정확한 단어의 의미를 알고 싶어 부모님께 여쭤봤다. ‘휘파람을 왜 휘이이~라고 불러? 사랑하는 연인을 떠나보냈는데도 휘파람이 나오는 거야?’ '슬픔은 왜 간이역에 코스모스로 피는 거야? 해바라기나 튤립이나 큼지막한 꽃들도 있잖아’라고, 다소 성가실 법한 질문에도 부모님은 동시에 서로를 쳐다보며 말씀하셨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가고 나서 휘이히히... 하고, 구슬프게 부르는 휘파람이지.’ ‘시골 아무도 모르는 작은 간이역에 코스모스들이 자잘 자잘하게 줄지어 있다고 생각해봐. 지나간 슬픔도 결국 아려한 추억으로 남아서, 쓸쓸하면서도 어여쁜 자태로 피어난 거지.’



두 분의 얘기를 듣곤 ‘가사말이 어떻게 머릿속에 그려지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더군다나 같은 소절을 듣고 같은 감성을 공유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뭉클하면서도 부러움이 앞섰다. 생각해보면, 부모님 세대는 낭만이 불가피했던 시절이었다. 후일담이지만 두 분은 첫 만남 이후, 서로의 번호를 몰라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 될 뻔했다고 들었다. 결국 우연을 계기로 이뤄졌지만, SNS에 이름 석자만 검색하면 그 사람에 대한 정보가 술술 나오는 요즘에는 상상도 하기 어려운 장면이다.


낭만이 필연적인 세대와 낭만을 쥐어짜야 느낄 수 있는 세대. 전하지 못한 말은 애써 편지로 옮겨 에둘러 표현했던 그 시절에는, 문학이 허용되는 정서가 존재했었다. 그래서 예전 노래들 중에 유독 의미를 곱씹을만한 시적인 가사가 많은 걸지도  모른다. 터치와 전송 버튼 한 번이면 언제든 상대와 통할 수 있는 요즘. 진심의 무게는 가히 비교할 수 없지만, 가끔은 필연적인 낭만이 지닌 더딘 속도감이 그립게 느껴진다.



그래서,

낭만으로 해석되는 세대





문체적 삶, 방떼엉 

/@vingt_et_un____

@soyeongb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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