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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규 Oct 26. 2024

십자가를 대체 왜 좋아할까

멋, 감성 그리고 마케팅

 정말 자주 보이는 것 중에 관점을 달리하면 섬찟한 물건이 하나 있다. 바로 십자가다. 사람을 못 박아 매달아 죽이는 처형 도구다. 같은 용도로 쓰이는 물건을 떠올려보면 단두대, 교수대, 화형대, 가마솥, 전기의자 등이 생각난다. 그렇다면 사고는 자연스럽게 다음 질문으로 이어진다. 유대인들이 십자가가 아니라 교수대를 사용했다면 어땠을까? 지금 종교 건물에는 십자가가 아니라 목을 매다는 밧줄이 걸려 있었을까? 단두대를 사용했다면 성가대 옷에는 살벌한 단두대가 그려져 있었을까? 가마솥은?


 솔직히 십자가는 좀 멋이 있다. 가로세로 비율부터 인간이 아름다움을 느끼는 황금비에 가깝다. 심플하면서도 관대하게 팔을 벌린 인간을 형상화한 구조다. 심지어 십자가에서 처형되는 모습도 '희생'이라는 숭고한 개념이 이 땅에 현신한 것처럼 느껴질 만큼 멋이 있다. 나는 무교이며 특정 종교를 찬양하거나 폄훼할 생각이 없다. 다만 평범한 인간으로서 십자가에 대한 나의 감상은 그러하다. 내가 생각했을 때 십자가를 심벌로 사용하는 여러 종교들의 흥행에는 이 십자가 마케팅의 공이 크다.


 이 세상의 본질은 건조하다. 우주가 있고, 기본 입자들이 핵력, 전자기력 따위의 상호작용을 통해 현실을 구성하고 있다. 인간이 살아가고 일으키는 일들에 대해서도 이런 식의 환원적인 표현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결국은 물리적인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모든 현상을 물리적으로 설명하는 사고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밝혀졌지만, 어쨌든 우리가 알아낼 수 있는 수준과는 별개로 객관적인 사실이 있다는 것은 변함이 없다. 다만 이런 팩트가 인간의 인식 수준으로 들어와 해석되는 과정에 마케팅의 요점이 있다.


 같은 사실을 표현해도 이성이 아니라 가슴을 때려야 효과가 있다. T인 전두엽이 아니라 F인 변연계, 즉 우리 조상님들이 파충류였던 시절부터 키워온 감성의 뇌를 자극해야 한다. 심지어 본인이 이성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이성적이고 싶다는 감성적인 판단의 꼭두각시에 불과하다. 전기의자나 가마솥은 변연계를 때리지 못한다. 십자가 정도는 돼야 두꺼운 대뇌피질을 깊숙이 뚫고 들어가 변연계를 찌를 수 있다. 즉, 마케팅이란 '감성적인 뇌를 공략해야 한다는 팩트에 기반한 철저히 이성적인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사실 마케팅에 대해 막연히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클릭을 유도하는 자극적이고 멍청한 제목들, 허위광고, 뻔뻔하고 오그라드는 광고 문구들을 보면서 정직하지 못하다는 인상을 많이 받았던 것 같다. 하지만 많은 돈과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무릇 응달진 곳이 생기기 마련이고, 부정적인 부분만 확대 해석해 일반화하면 안 된다. 마케팅은 어떤 가치를 필요로 하는 곳에 알려주기 위한 수단이다. 과장과 허위는 내가 안 하면 그만이다. 또 선물을 포장하듯 나의 콘텐츠를 정성스럽게 포장하는 일로 본다면 오히려 아예 안 하는 것이 잘못된 쪽에 가깝다고도 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작은 실천으로 이 글을 포함해 앞으로 발행할 브런치 글에 커버 이미지를 넣기로 했다. 제목도 조금은 자극적으로 지을 것이다. 글 내용만 마음에 든다면 사람들이 많이 봐주겠지 하는 소극적인 생각이 아니라 마케팅의 일환으로 독자들의 변연계에 영업을 뛰기로 마음을 먹었다. 부디 효과가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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