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우를 키운다고? 갑자기?
지난 글에서 나는 항해사로 일하면서도 프로그래머가 되기를 꿈꿨다고 적었다. 만약 배를 내리고 바로 프로그래머가 되었다면 누가 봐도 꽤나 자연스러운 서사였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중간에 흰다리새우 양식업에 도전을 했는데, 어쩌다 이렇게 뜬금 없는 일을 벌였는지 적어보고자 한다.
사실 알고보면 내가 새우 양식장을 차리려고 했던 건 마냥 갑작스러운 일은 아니다. 나는 대학생 때 새우 양식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신규 양식장 건축부터 출하 과정까지 참여했는데, 중간육성조에 그물망을 설치하거나 콘크리트 수조에 플라스틱 필름을 씌우는 작업 등을 도왔었다. 이 과정에서 사업의 기술적 주축이었던 양식 엔지니어 분을 알게 됐는데, 이하 (기술)고문님이라고 부르겠다. 당시 양식장 공동 투자자 분들과의 갈등으로 인해 결과적으로 그곳을 나오게 됐던 분이었다. 당시 모든 상황을 지켜본 내 입장에서는 가진 실력에 비해서 억울하게 당하신 느낌이었다. 고문님은 기술적으로 뛰어나고 성품도 훌륭하신데 비해, 다만 사업적인 드라이브가 꽤 약하신 듯했다. 그래서 내가 해운 회사를 퇴사할 무렵까지도 마땅한 성과를 내지 못 하고 계셨는데, 이렇게 썩히기에는 기술이 아까운 마음이 들어서 내가 한 번 도전해보기로 했다. 새우 양식은 여러 모로 보나 미래 유망 사업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꽤 하이테크 산업이라 재미있어보였다.
새우 양식 시장에 대해 간략히 요약하자면, 국내에서 흔히 소비되는 '왕새우'의 99%는 흰다리새우이며, 이중 90%가 수입된다. 국내 생산인 10% 중에서도 대부분은 바닷가 근처 노지에서 물을 갈며(환수) 양식하며, 따뜻한 물에서 자라는 새우 특성 상 여름에 키워 가을에 판매한다. 따라서 실내 양식으로 8월 ~ 11월을 피해 연중 출하할 수 있으면 2배 이상의 가격을 받아 큰 수익을 낼 수 있다. 실내 양식 방법 중에서도 바이러스나 가온비 등의 부담 때문에 물을 교환하지 않는 무환수 방법일수록 경쟁력이 높은데, 무환수 실내 양식 방법으로는 미생물로 물을 정화하는 바이오플락 방식과 기계/생물/화학적으로 물을 정화하는 순환여과 방식이 있다. 바이오플락 방식은 사실상 실패해서 전세계적으로 사장되고 있는 추세이며, 실제로 바이오플락 양식업체는 물을 일부 교환하는 방식으로 타협을 보거나 몇 년 가지 못해 파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가 추진했던 사업은 물을 전혀 교환하지 않는 순환여과 방식이었다.
사실 국내 바이오플락 새우 양식은 국립수산과학원이 주축이 되어 10년 넘게 도전하고 있고, 관련돼 아픔을 가진 분들이 많은 분야라 함부로 언급하기는 그렇지만, 어쨌든 나는 2022년 당시 조사 결과 국내 바이오플락 방식의 실내 양식의 미래가 매우 어둡다고 보았고, 바이러스 및 토질 오염에 의해 그나마 있던 생산량 마저 떨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글을 쓰는 지금 확인해보아도 전망이 그렇게 좋아보이지 않는다.
사업 추진은 2022년 11월부터 2023년 9월까지 진행됐다. 일단 양식장 지을 땅을 사야해서 내 고향인 전남 영암군에 500여평 되는 논을 구매했다. 사육수를 100% 재사용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해수를 끌어다 쓰거나 오염수를 배출할 필요가 없었으므로 내륙 한가운데에 있는 땅을 구했다. 논을 양식장 부지로 쓸 수 있도록 인허가를 받아야 했다. 영암 군청에 2월 중순 쯤 개발행위를 신청했으나 4월 말에 재심의 의결이 났고, 6월 중에서야 조건부 의결이 났으며, 조건 서류를 제출하고도 한 달을 더 넘기고 7월이 돼서야 겨우 개발행위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나는 당시 성남에 전입신고가 돼있었는데, 인허가 사무소에 의하면 도시계획 심의위원 중 한 명은 좋은 성남 땅을 놔두고 왜 굳이 영암으로 와서 사업을 하냐는 비아냥 섞인 말도 했다고 한다. 그나마 내가 고향 사람임을 호소해서 이정도로 허가가 난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군에서 농지를 이렇게 깐깐하게 관리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나쁘지 않은 일이지만, 결과적으로 차일피일 지연된 허가로 인해 사업에 상당한 지장을 받았기 때문에 참 답답했었다.
관련 지원 사업으로는 귀어창업 및 주택구입 지원사업, 양식시설 현대화사업, 전남 청년창업지원사업 세 가지를 지원했고, 양식시설 현대화사업과 전남 청년창업지원사업 두 가지에 선정이 됐다. 양식시설 현대화사업은 농림수산업자신용보증(농신보)에서 일정 부분 보증을 서주고 수협에서 대출을 받으면 정부에서 이자의 일부를 지원해주는 이차보전사업이었고, 전남 청년창업지원사업은 전남에서 창업을 하려는 청년들에게 기자재 구입, 설비 투자 등에 연 1,500만원씩 2년 간 총 3,000만원을 지원해주는 사업이었다. 세 가지 사업 모두 내가 직접 사업계획서를 쓰고, 서류를 만들고, 발표 평가도 받아가면서 선정이 됐는데, 나중에서야 보통은 행정사를 끼고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이 과정에서도 영암군청에서 열받는 일을 좀 겪었었지만 굳이 적지는 않겠다. 지원 사업은 지원 사업일 뿐, 누군가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고 성을 내는 것도 이상하기 때문이다. 다만 당시 영암군으로 들어가는 초입에 '기업하기 좋은 도시 영암'이라며 걸려있던 현수막이, 빈말 알레르기를 앓는 내게 참 공허하게 느껴졌던 기억이 남아있다.
한편 관련 공부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원천 기술은 고문님이 가지고 있었지만, 결국에는 내가 모든 기술적인 부분을 알아야 했기 때문이다. 수처리와 미생물 관련 전공서적을 사서 기초를 공부했다. 특히 수질을 관리하려면 화학을 알아야 했기 때문에 어떤 달은 매일 12시간 이상 일반/환경화학을 공부하기도 했다. 기본적인 화학 개념부터 시작해 알아야할 것들이 끝도 없었다. 이해가 안되면 외우면서 보고 또 봤다. 자꾸 보다보니 서서히 머릿속에 관련 개념들이 들어차고, 이어지기 시작했다. 개념과 원리들이 체화될수록 더 복잡한 수식을 이해할 수 있게 됐고, 필요한 계산 공식을 만들 수 있게 됐다. 아래는 당시 공부하면서 메모해두었던 기록의 한 조각이다.
특히 화학은 흔히 말하는 시뮬레이션 우주론이 떠오를 만큼 신기했다. 왜 혹자가 자연을 연구하다 신을 보았다고 했는 지 얼핏 이해가 됐다. 그리고 필요와 호기심에 의해 내적 동기가 부여된 공부가 참 즐겁다는 것을 또 한번 느끼게 됐다. 그밖에 세무/회계, 각종 법률, 투자 유치 등등 경영과 관련된 온갖 잡다한 것들을 공부하고 정리했는데, 덕분에 잡지식이 많이 늘게 된 계기가 됐다.
참고로 고등학교 정도의 화학 지식만 있으면 국내 새우 산업이 (일부러? 애써?) 외면하는 사육 환경의 물리적 한계를 계산할 수 있게 되는데,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새우 양식에 뛰어드는 것이 얼마나 위험천만한지 느낄 수 있고, 이미 그렇게 뛰어든 사람이 또 얼마나 많은지 알게되면 놀라움을 감추기 힘들다.
새우 사업을 하면서 하나 늘게 된 잡기 중 하나가 3D 모델링이다. 양식장 설계를 하고 견적서를 요청해야 하는데 전문 설계 업체를 쓸 여력이 안 됐고, 그냥 직접 했다. 특히 내가 사용한 스케치업은 직관적이고 쉬운 편이면서, 간단한 동영상을 만들 때 렌더링 작업을 거치지 않아도 되는 큰 장점이 있었다. 특히 우리 양식장은 수직 다단 구조로 쌓아 올린 랙 형태의 구조물이었기 때문에 각 파트의 수량을 알아야 견적을 뽑을 수 있었는데, 스케치업 덕분에 매우 수월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었다. (이 잡기술은 지금도 가구 배치, 로봇 모델링 등에 유용하게 쓰고 있다.)
두서없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적었는데, 결과적으로 사업은 추친 약 10개월 여만에 자금 문제로 삽도 못 떠보고 끝이 났다. 우연히 고등학교 동창의 어머님을 만나 큰 도움을 받는 등 운이 좋았던 부분도 있었고, 당시 건설자재 가격이 80% 이상 폭등하는 등 운이 나빴던 부분도 있었다. 어쨌거나 운칠기삼 종합해서 새우양식 사업은 중단되었고, 지금은 땅과 지원사업, 부채 등을 깨끗하게 정리하여 재밌고 다채로웠던 기억 조각으로만 남아있다. 무엇보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월급을 받으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알게됐기 때문에 남은 삶의 만족감을 가져다준 경험이었다.
우리나라 무환수 새우 양식 기술은 아마 나같은 다른 누군가가 발굴해내지 않는 이상 로스트 테크놀로지가 될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만약 사업이 계속 진행돼서 양식장을 완공했다면 명분과 사업성을 고루 갖춘 좋은 사업아이템이기 때문에 정부와 민간에서 많은 지원과 투자를 받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쉬운 마음도 있지만, 열심히 했기 때문에 미련은 없다. 재밌었으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