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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조리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한 컷의 건축

by demji

2024년 프리츠커상 수상자로 잘 알려진 건축가 야마모토 리켄山本理顕의 건축사상은 그가 학생시설 경험한 취락답사에 그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이 답사를 주도한 지도교수 하라 히로시原広司는 야먀모토 리켄을 비롯 코지마 카즈히로, 쿠마 켄고 등 현대 일본건축을 지탱하는 훌륭한 건축가들을 배출한 건축가이자 교육자입니다. 그는 지난 1월 3일, 88세의 나이로 타계했으며, 일본의 주요 매체들이 이 소식을 보도했습니다.


아사히신문에는 부고와 함께 야마모토 리켄의 추도문이 실려있었습니다. 이 글에는 그의 학생시절 당시 일본의 상황과 하라 히로시의 제자가 되는 과정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야먀모토 리켄이 학생이었던 70년대 일본은 고도성장의 부작용과 같은 부조리가 만연한 시대였습니다. 미나마타병과 같은 공해문제의 대두와 열도개조론에 따른 무분별한 개발, 미시마 유키오의 죽음과 전공투로 상징되는 정치적 혼란 그리고 화려하지만 비전이 사라진 엑스포 70 등, 돈은 넘쳐나지만 정신적으로는 빈곤한 희망 없는 상태였습니다. 이런 상태가 지속될 것이라고 생각한 야먀모토 리켄은 취업 대신 하라 히로시의 연구실에 들어가기로 결정합니다. 얼마 후, 그는 스승의 저작 한 페이지에서 다음과 같은 글귀를 만납니다.



"다양한 부조리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우리는 희망에 충만할 수 있다"

「さまざまな不条理を了解する過程で、なおかつ私たち 希望にあふれるだろう」



이 글은 하라 히로시가 31살에 쓴 것입니다. 야먀모토 리켄이 그의 연구실을 선택한 이유는 다른 건축가들은 표정이 어두운 반면, 하라 히로시만이 밝은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당시 그의 밝은 표정 아래 어떤 생각이 숨겨져 있었는지 짐작해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하라 히로시의 부고는 오래전에 접했으나 여러 가지 일들을 처리하느라 지금에야 자판 앞에 앉습니다. 그의 영혼이 평화와 안식을 얻기 바랍니다.



Kyoto Station / Hiroshi H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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