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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맹현 May 17. 2021

5. 일상의 경험으로 만든 우화 두 편

일상의 소재가 이야기가 되는 순간


우화 <슬픈나비>, <두더지 아주머니와 포도나무>는 일상의 경험으로 만든 우화이다.
그 과정을 살펴보자.



<일상의 경험 1>


중학교 시절, 나는 공부보다는 책 읽기를 좋아했다. 중1 때부터 브론테 자매, 모파상, 펄벅, 토마스 하디, 톨스토이 등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흥밋거리가 문학에 있어서 그런지 수다를 떨고 싶을 만큼 마음이 맞는 친구도 없었고,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끼리끼리 노는 무리 속에서 딱히 내 자리를 찾지도 못했다.

문학에 대한 흥미와 친구 관계가 어려웠던 상황에 대한 회피라는 두 가지 욕구를 충족하느라 쉬는 시간에도 책 속에 얼굴을 파묻던 나는 그때 좀 외로웠던 것 같다.

한 번은 일진 중에서도 입지가 꽤 단단했던 아이가 짝꿍이었던 적이 있다. 하루는 그 아이가 책을 읽고 있는 나에게 말을 걸었다.

"너는 왜 계속 책만 읽어? (미간을 가리키며) 너 책 읽을 때 여기에 주름 빡 생기면서 엄청 무서운 얼굴 된다. 나는 책 잘 못 읽는데, 너 책 많이 읽는 거 보면 좀 부러워."

무슨 대답을 해야 할까 망설이다가, 그냥 책 읽는 게 좋다고 말했던 것 같다.

중학교 때는 일진 아이들이 무섭기도 하지만(괜히 심기 잘못 건드려 다구리를 당하니까) 좀 위대해 보이는 구석도 있었는데, 이런 말을 들으니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그날 나는 집에 가서 <슬픈 나비>라는 제목을 글을 한 편 썼다.  




<슬픈 나비>_ 글이 남아 있지 않아 대략의 내용만 기록


동산에 나비 한 마리가 살았다. 동물들은 그 나비를 '슬픈나비'라고 불렀다.

누가 처음 그렇게 불렀는지는 모르지만 모두들 그렇게 불렀다. 슬픈나비는 늘 슬픈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루는 길고양이가 슬픈나비에게 물었다.

"슬픈나비야, 너는 왜 이름이 슬픈나비니?"

나비는 길고양이의 말에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이제 슬프지 않아. 그동안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갖아주지 않아서 슬펐거든. 그런데 고양이 네가 이렇게 나에게 말을 걸어주니 난 이제 슬픈나비가 아니야!"

그 후로, 나비와 길고양이는 서로 좋은 친구가 되었다.





<일상의 경험 2 >


최근 우리 집은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활기가 넘치는 7살, 9살 이이들이 사는 집이라 쿵쿵거리는 일이 발생하였는데, 이사를 하기 전 인테리어 공사 소음으로 지칠 대로 지친 아랫집 아주머니는 우리 집의 소음을 참지 못하였다. 본인의 표현대로 화가 치밀어 뚜껑이 열릴 대로 열려 우리 집에 3차례 방문을 했다.

우리 집이야 당연히 소음을 발생시켰으니, 죄송한 마음에 각별한 주의를 하고 있지만 계속되는 공격적인 항의와 자식을 훈계하는 듯한 항의 문자로 우리 가족도 극도의 스트레스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이제는 누가 피해를 주고, 누가 고통을 받고 있는지 구분이 되지 않는 지경이 되어버렸다. 두 집 모두 서로가 서로를 힘들게 하는 관계가 되어버린 것이다.




<두더지 아주머니와 포도나무>


어느 날 땅 속 두더지 아주머니의 집 천정이 '우드드드' 울렸습니다. 낮잠을 즐기던 아주머니는 깜짝 놀라 깨어났습니다.

"아이코! 이게 무슨 일이람! 지진이라도 난 건가?"

이때 나무뿌리 하나가 천정을 뚫고 두더지 아주머니의 집으로 내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나무뿌리는 무럭무럭 자라서 아주머니의 집 중앙에 큰 기둥이 되었습니다. 이동이 불편하기는 했지만 이사를 갈 생각이 없던 아주머니는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불편하지만 땅 속에 사니 어쩔 수 없지. 나무도 살아야 하니까."


그렇게 한 계절이 지나고 여름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무슨 요리를 해 먹을까?"

두더지 아주머니는 갓 잡은 지렁이를 도마 위에 올려놓고 콧노래를 불렀습니다.

"재잘재잘, 조잘조잘, 쿠르르 까까."

"응? 이게 무슨 소리지?"

시끄러운 소리에 두더지 아주머니는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집안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소리가 나는 곳을 따라가 보니 천정 너머에서 나는 소리였습니다.  

"누군가 산에 놀러 왔나 보군."

아주머니는 별 일 아니라는 듯, 지렁이를 손질하고 맛있는 요리를 해 먹었습니다.

"아, 맛있다."

배가 불러 기분이 좋아진 아주머니는 의자에 앉아 낮잠을 청했습니다. 그런데 그 재잘재잘, 조잘조잘, 쿠르르 까까하는 소리가 그치지 않고 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만 집에 돌아가지. 이건 너무 시끄럽네."

아주머니는 더 참아보자면서 눈을 감았지만, 잠이 깬 후에도, 저녁을 먹을 때도, 설거지를 할 때도, 밤에도, 새벽에도 소리는 그치지 않았습니다.

"이건 너무 심하잖아!"


다음날 아침, 화가 난 두더지 아주머니는 땅 밖으로 나왔습니다. 두더지 아주머니의 집 위에는 큰 포도나무가 한 그루 서 있었고, 나무에 달린 포도송이들이 저마다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습니다.

"얘들아! 조용히 좀 해!"

아주머니가 소리쳤지만 포도송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떠들어댔습니다.

"조용히 좀 하라고! 시끄러워서 살 수가 없잖아! 지난번에 너희 뿌리가 우리 집을 뚫었을 때도 난 참았단 말이야. 나처럼 땅 밑에 사는 두더지도 생각을 해줘야지!"

하지만 포도송이들은 여전히 떠들기만 합니다.

"너희 같이 버릇없고 쓸모없는 포도송이는 처음 본다. 조용히 하지 않으면 다 없애버릴 거야!"

머리끝까지 화가 난 두더지 아주머니는 포도송이에게 달려들어 포도알을 와구와구 따 먹어버렸습니다. 아주머니는 불룩해진 배를 쓰다듬으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습니다.  

"이제 편히 낮잠을 잘 수 있겠군."


집으로 돌아온 아주머니는 의자에 몸을 파묻고 잠을 청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스르르 잠에 빠지려는 찰나, 재잘재잘, 조잘조잘, 쿠르르 까까하는 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게 아니겠습니까.

당황한 아주머니는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집에는 아무도 없고 천정에 귀를 대보아도 밖에서 나는 소리는 아니었습니다. 아주머니는 그 소리가 자신의 뱃속에서 나는 소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결국 두더지 아주머니는 시끄러운 포도알들과 평생 같이 살게 되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보자.

짧아도 좋으니, 마지막 문장의 마침표를 찍을 때까지 컴퓨터 앞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보자.  

한 편의 우화를 완성했다면, 당신은 지금 온전히 작품 하나를 완성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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