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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눕피 Oct 01. 2019

20년 차 힙찔이의 화요 힙합 영화 추천

(10) 10/1(화), 영화 <미드 90>를 찬미하다.

* 대망의 10회 차, 오늘의 화요 힙합 음악 추천은 영화 <미드 90> 추천의 글로 대체합니다. 그래서 타이틀도 '화요 힙합 영화 추천'으로 설정했어요. 일종의 특집인 셈이죠. 물론 추천 노래 2곡 또한 담았습니다. 제가 하수도 아니고 노래 추천을 빼먹을 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명색이 스눕핀데요.

"명색이 스눕피? 그게 누군데?"
"하수요."


    이토록 위험한 영화라는 걸 미리 알았더라면 영화관에 차를 끌고 가지 않았을 거다. 영화 제목으로부터 1차 경고를 받았을 때, 조금 더 신중을 기했어야 했다. 시원한 맥주 몇 캔의 도움 없이, 술독에 절어 움츠러든 드라이 마티니의 올리브 없이 이 영화를 본 건 가히 중죄라고 본다. 음주 운전만큼이나 무서운 중죄 말이다. 더구나 내 손에 든 건 만만한 편의점 음료 1번 타자 동원 보성녹차였는데, 이렇게 구수하고 시원하며 정직한 음료가 필요한 게 아니었단 말이다.


개인적으로 꼽는 편의점 음료 1번 타자. 거스름돈을 받을 필요가 없던 1,000원 시절(대학 시절)에 자주 애용했으나 현재는 무려 200원이나 올라 그 가치가 퇴색했다.


     영화 <미드 90>는 힙합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더욱이 90년대 초중반의 미국 힙합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축복과도 같은 영화다.

영화는 시작부터 끝까지 필살기를 쓴다. Mobb Deep과 Wu Tang Clan의 큼지막한 포스터로 힙찔이의 마음을 할퀴는가 하면 Gang Starr의 앨범이 스윽 무심하게 눈 앞을 지나가면서 잊고 지내던 올드 스쿨 힙합의 입맛을 다시 돋우기도 한다.

주인공들의 스케이트 보드가 이리저리 미끄러짐과 동시에 GZA의 명곡 'Liquid Swords'는 미안하거나 죄송한 기색 하나 없이 얄밉게 터져 나오는데, 감독 '조나 힐'의 작전명 'Let's Turn Up & Go Back To The 90s'에 나는 속수무책으로 무릎을 꿇고야 말았다(사실은 허리를 꼿꼿이 세웠지만).

Nas의 'It Ain't Hard To Tell'과 Wu-Tang Clan의 로고가 박힌 빈티지한 티셔츠, 알파벳 순서로 가지런히 정렬된 힙합 명반의 향연은 또 어떠한가!

Big L의 명곡 'Put It On'을 흘려 내보내면 나 같은 힙찔이가 이런 글을 함부로 써재껴서 자기 영화를 정신없이 자발적으로 홍보하게 될 거란 것쯤 명민한 감독 '조나 힐'이 몰랐을 리 없고, 안 노렸을 리 만무하다.

영화 중간중간, 관객을 향해 한 무리의 스케이트 보더들이 차도 한가운데를 굴러내려올 때 관객은 기분 좋게 자기만의 90년대를 회상하게 되고, 영화의 또 다른 중간중간, 힙합 음악의 비트가 영화관을 가득 메울 때, 관객은 감독이 쏘아 올리는 '청춘'과 '창의' 그리고 '반항'이라는 새삼스럽게 사무치는 개념을 온몸으로 느끼게 된다. 영화는 추체험의 예술이고, <미드 90> 속 힙합 음악은 감정 이입의 배가 장치가 된다.



내 멋대로 요약한 영화 <미드 90>의 줄거리

편모(Dabney) 가정에서 폭력적인 형(Lan)과 함께 살아가는 13살 Stevie의 눈에 든 동네 스케이트 보더 형들의 간지 나는 일상, Stevie는 형(Lan)과의 거래를 통해 얻은 스케이트 보드를 들고 그들이 모이는 보드 샵으로 찾아간다.

별 이상한 별명으로 서로를 지칭하고 시답잖은 얘기를 툭툭 던지며 낄낄대는 그들이 Stevie의 눈에는 이 세상에서 가장 쿨한 존재로 느껴지고, Stevie는 그런 형들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갖은 애를 쓴다. 그런 Stevie가 귀엽고 재밌는 형들은 Stevie를 스케이드 보드 크루에 받아들여 준다.

정도를 지킬 줄 아는 프로 스케이트 보더 Ray, 늘 정도를 지나치고 막 나가는 'Fu*ks*it', 언제나 캠코더를 들고 다니며 그들의 시시콜콜한 일상을 조용히 촬영하는 'Fourth Grade', 이 세 형님들로부터 인기를 독차지한 Stevie를 마냥 질투하는 어린 친구 Ruben의 아슬아슬한 장난질은 '시비'의 경계를 넘나 든다.

형들과 어울리며 스케이트 보드와 술, 담배, 대마 그리고 여자를 배우게 되는 Stevie의 호기심과 현실 도피는 곧 일상성이 되고, 그의 인생을 휘감은 이 일상성은 그의 폭력성과 반항심을 극대화하기에 이른다.

과연 Stevie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출처: IMDb


    영화 <미드 90>는 유명 배우 겸 작가 'Jonah Hill조나 힐'의 영화감독 데뷔작이다. 그가 직접 글도 쓰고 촬영도 하고 소품도 챙기고 전부 다 했단다. 그의 화려한 연기 이력이나 생애, 영화 연출 기법 등은 영화 전문 작가님들과 평론가님들께서 친절하고도 소상하게 설명해주실 것이라 믿기 때문에 나는 잠깐 고개를 돌려 '힙합'을 진심으로 아끼는 감독 '조나 힐'에 초점을 맞춰 글을 풀어볼까 한다.


Jonah Hill (출처: Hypebeast)



지난 7월에 공개한 래퍼 Travis Scott의 노래 'Wake Up'의 뮤직비디오는 꽤나 매력적이었고 나는 그것을 몇 번이나 돌려봤다. 뮤직비디오 감독의 이름은 '조나 힐'이라고 했는데, 그때 나는 그의 이름과 처음으로 마주했다. 곧 나는 그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잉하고 그의 신상 정보에 대해 가벼운 구글링을 시작했다(이것은 내가 한가로운 여윳시간을 소비하는 슬기로운 방법인 것이다). 음, 그러면 그렇지. 역시나 그는 진성 힙찔이였다.



내가 영화 미드 90를 만들게 된 주된 이유는 영화 속에서 힙합, 스케이트 보딩이 잘못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었어요. 허구한 날 동네 쏘다니며 샴페인이나 까고...


저에게 힙합은 제가 성장하는 데 있어서의 감정적 뿌리였어요. 부모님 세대에게 비틀스와 롤링 스톤즈가 있었다면 제겐 랩 그룹 Mobb Deep이 있었죠. 100년 후에는 프로듀서 DJ PREMIER가 모차르트가 되는 거고, 래퍼 Q-Tip은 저에게 존 레넌이에요.



힙합 음악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확실히 붙들어 줄 수 있는 구조적인 영화를 만들고 싶었어요.

이 영화는 스케이트 보딩을 개척하고, 힙합을 개척한 이들을 위해 바치는 영화입니다.



우리는 모두 헤드폰을 낀 채 거리를 활보하죠. 음악을 들으면 그 음악에 감정적으로 연결됩니다. 개인적인 방식으로요. 당신과 내가 똑같은 음악을 들어도 감정적으로 완전히 다른 감상을 하게 되죠.

 영화 연출을 할 때에도, 저는 영화 속의 노래 하나하나가 씬에 녹아드는 걸 전부 신경 썼어요. 그 노래들이 저한테 감정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보여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Big L의 Put It On은 제가 정말 좋아하는 곡이에요. 그리고 영화 속에서 그 곡이 나오는 장면도 정말 좋아해요. "여긴 다른 세상이라고!"라는 느낌을 보여주려고 했어요.
아, 모르겠어요, 그 노랜 그냥 미쳤어요.



힙합이 나를 만들었어요.
음악은 내게 너무나 소중해요.




    <미드 90>의 개봉을 기념하여 작년 10월 미국의 음악 플랫폼 Genius와 나눈 인터뷰 영상 속에서 '조나 힐'은 영화를 탄생시킨 배경으로서 또 영화의 주제 의식을 지탱하는 중추적인 역할로서 '힙합 음악'을 이야기한다. 인터뷰의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조나 힐'이라는 개인을 만든 건 그가 성장기부터 몰입해 온 '힙합 음악' 그리고 그것과 연결된 자신의 감정적 체험이고, 영화계에서 오용되고 있는 힙합과 스케이트 보딩 문화의 이미지가 아닌 힙합의 중요성을 구조적으로 지탱해줄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감독 개인의 의지가 곧 영화 <미드 90> 탄생의 기원이라는 것.


출처: The New York Times



    이 세상의 모든 형, 누나, 언니, 오빠는 우리에게 취향을 만들어 준 공로 하나만으로도 한가득 칭송받아야 마땅하다. 우리는 그들의 선수 체험과 그것을 뽐내듯이 드러내던 자기 주관을 몰래 그것도 양껏, 반복 흡수하며 막연한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었으니까. 마치 스티브 잡스가 현대인들에게 '아이폰'을 보여주고 미처 모르고 살던 종류의 필요와 욕구를 완전히 새롭게 끌어낸 것처럼 말이다.


영화 <미드 90>의 주인공 Stevie는 폭력적인 형 Lan을 증오하지만, 한편으로 경외한다. Stevie가 형 몰래 그의 방문을 열었을 때, Stevie의 인생은 송두리째 뒤집어진다. 형이 가진 문화적 감각, 즉 이 세상에서 쿨한 모든 것을 대변하는 실체로서 형이 사 모은 '에어 조던' 운동화와 힙합 아티스트의 포스터, 음반 컬렉션은 Stevie의 백지와 같은 몸과 마음에 이식되고 무언가를 또 누군가를 동경하며 꿈을 그려가고자 하는 성취욕과 성장욕에 불을 당긴다. 그러나 기실 Stevie의 체험은 우리 모두의 체험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이 뜨거웠다. Wu-Tang Clan의 앨범 'Enter The Wu Tang'을 처음으로 구매해 들었던 2003년의 어느 날이 지금 여기로 곧장 소환되는 이토록 신비로운 체험, 타임머신의 탑승 티켓 값이 고작 8,000원이라니요. Shout Out To 영화공간주안!



    시시껄렁한 이야기가 넘쳐흐르고, 유치한 대화만이 오고 간다. 하지만 그저 놀 생각, 그저 까불 생각뿐인 <미드 90>의 주인공들도 가끔은 진지할 때가 있다. 하지만 나중에 뭘 하고 싶은지, 우린 지금 뭘 하고 있는지 그들도 잘 알지 못한다. 그걸 알았다면 그들이 바닥에서 보드나 타고 있었겠는가.

다만 그들은 길거리에서 '크리에이티브'를 체득할 뿐이다. Street Knowledge가 아닌 Street Creative 말이다. 뭐가 될지,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그들은 '현재'의 '즐거움'에 집중하고 기성의 잔소리에 반기를 든다. 잔말은 듣기 싫은 것이다.

알 수 없는 미래에 현재를 저당 잡힌 채 지금 당장의 즐거움을 포기하고 싶지 않은 <미드 90>의 주인공들. 즐기는 자를 당할 자가 없다고 말한 건 그 유명한 공자의 논어였던가? 그들은 그저 현재를 즐기며 '재미'에 집착했고, 가끔씩 찾아오는 진지한 성찰의 순간을 꾸밈없이 받아들였다. 조금의 잔머리도 쓰지 않고 말이다.


지금 미국 대중음악 시장을 뒤흔들며 어마어마한 돈을 긁어모으는 래퍼들은 그렇게 '부'를 축적한 것이다. 지금 잘 나간다는 메가 랩스타들의 가사를 한 번 번역해보라. 유치 찬란함에 두 손, 두 발을 다 들게 될 것이다.


"얘넨 진짜 이렇게 멍청해가지고 어떻게 성공한 거야? 아무나 다 돈 버는구나."


하지만 그게 그들이 일군 성공적 라이프스타일의 요체이다. 그들은 자주 대마를 태우고, 욕을 하고, 돈지랄을 하고, 멍청한 소리를 내뱉고, 지들 마음대로 살지만 길거리에서 배운 크리에이티브를 토대로 잔머리 하나 쓰지 않고 현재의 즐거움-랩-에 집중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것이다. 그 대가는 다름 아닌 '성공'이다. <미드 90>에서 이야기하는 '뻔하지 않은 인생'을 살면서 말이다. 나는 <미드 90>에서 그러한 이야기를 읽었다. 성장 영화라든지, 시대의 거울과도 같은 영화라든지 하는 뻔한 설명은 조금은 지루한 법이니까.


글을 마치며 이 시대 패션 크리에이티브를 대표하는 디자이너이자 럭셔리 스트릿 패션의 선구자 Virgil Abloh의 인터뷰 한 자락을 옮긴다.


"아주 어린 시절인 10대부터 저는 힙합과 스케이트 보딩에 빠져 있었어요. 90년대의 아이들처럼요. 저는 정식으로 패션을 공부하지 않았어요. 다만 그저 관심을 가지고 있었죠."






<참고>

- Jonah Hill's Interview by Genius.com

- Virgil Abloh's Interview by TeenVogue.com





* 오늘의 추천곡 설명은 예의 상 짧게 치겠습니다.
 
오늘의 첫 번째 추천곡 - Big L 'Put It On'

첫 번째 추천곡은 어린 나이에 총격에 의해 목숨을 잃은 할렘 출신의 Lyricist 래퍼 Big L의 'Put It On'입니다. 힙합 역사를 빛낸 명반을 꼽을 때, 늘 튀어나오는 대표적인 동부 힙합 명반 <LIFESTYELZ OV DA POOR & DANGEROUS>(1995)의 수록곡이자 영화 <미드 90> 속에 등장하는 노래이기도 합니다. 앞서 잠시 언급한 것 같긴 한데, <미드 90>의 감독 조나 힐이 이 곡을 두고 그러더군요. 이 노랜 그냥 미쳤다고요. 이어폰 볼륨 짱짱하게 높여서 한 번 들어보세요. 이 네 글자가 절로 떠오를 겁니다. 정. 통. 힙. 합.

"I got the wild style, always been a foul child."

* 곁다리 추천곡 - Big L 'Ebonics'



오늘의 두 번째 추천곡 - GZA 'Liquid Swords'

두 번째 추천곡은 Wu-Tang Clan의 최연장자이자 정신적 지주이며 정재승 박사만큼 '과학'을 사랑하는 래퍼 GZA의 두 번째 정규 솔로 앨범인 <Liquid Swords>(1995)의 동명의 타이틀 곡 'Liquid Swords'입니다. 물론 영화 <미드 90>에 등장하는 곡이기도 합니다.
Wu-Tang Clan의 대표 프로듀서 RZA의 초-실험적인 프로듀싱 기법과 GZA의 심오한 주제 의식과 가사, 환상적인 라임이 빛을 발합니다. 첫 번째 추천 앨범처럼 이 앨범도 미국 힙합 역사를 빛낸 명반을 꼽을 때 꼭 들어가는 앨범이니 시간을 내어 모든 트랙 리스트를 들어보시길 권합니다. 듣다가 부대끼면 끄면 되잖아요. 저도 요즘엔 단순한 최신 트랩 힙합에 주로 집중하며 살아서 그런지 오랜만에 GZA의 <Liquid Swords>를 다시 들으려니 조금은 부대끼는군요. 우웩!

"When the MCs came to live out the name"

* 곁다리 추천곡 - GZA 'Shadowboxin''

    

* 프런트 이미지 출처: The Fordham 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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