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메니티 챙기는 궁상 또는 궁극의 5성급 럭셔리
2018년의 크리스마스, 저스틴 비버(이하 뜨또)가 그의 미들 네임을 딴 패션 브랜드 “Drew House”의 공식 론칭을 앞두고, 최초 공개 판매를 시작한 아이템은 단 돈 5달러짜리 호텔 슬리퍼였습니다.
당시 브랜드의 상품 설명을 빌리자면, 제품은 비록 쌈마이(cheap ass)지만, 하루 끝의 발끝 힐링을 원하는 손님을 위한 완벽한 선택이 될 거라고 했습니다.
‘한없이 가벼운’ 호텔 슬리퍼와 함께 신규 브랜드 론칭을 알린 뜨또의 엉뚱한 면모, 물론 충분한 복선이 있었어요.
2017년을 기점으로 뜨또는 새하얀 호텔 슬리퍼를 신고 레스토랑, 주차장, 해변, 비버리 힐스 거리, 뉴욕 한복판을 싸돌아다녔고, 매체들은 영 앤 리치 셀럽의 패션 기행을 앞다퉈 다뤘습니다.
5성급 호텔에 묵는 게 일상인 사람의 궁극의 럭셔리 스웨그라든가, 남 눈치 안 보고 오직 자기 리듬에 맞춰 살기로 유명한 팝스타의 놀라울 것 없는 패션이라든가, 그의 스타일을 둘러싼 갖가지 해석들이 꽤 재밌기도 했습니다.
관련하여 ELLE의 한 에디터는 호텔 어메니티를 미친 듯이 챙기던 시트콤 <프렌즈>의 주인공 ‘로스 겔러’의 본전 욕구 대사("호텔이 준 걸 챙기는 건데, 이게 왜 절도야?")와 뜨또의 호텔 슬리퍼 집착을 엮기도 했고, 어쩌면 그가 아직도 신발끈 묶는 법을 모르거나 특이하게도 정형외과에 자주 가고 싶은 타입의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유머러스한 추측을 던지기도 했죠.
그리고 시간이 흘러 ‘조용한 럭셔리’ 열풍을 일으킨 올슨 자매의 The Row부터 Loro Piana, Toteme, Proenza Schouler 등의 브랜드가 호텔 무드에 젖은 여유로운 슬리퍼 패션을 시장에 기어코 안착시키게 됩니다.
투숙객으로서 느끼는 일회용 안락함의 여운과 피로한 현실과 거리를 두는 약간의 부유감, 무엇보다 너무 진지하지 않은 스타일링의 위트와 여유, 요즘 시대가 원하는 쿨한 이미지가 뭐 그런 거 아니겠나요?
며칠 전에는 우리 칸예(현 예예) 형아가 캘리포니아 기반의 패션 브랜드 ‘ALEXANDER DIEGENOVA’의 ‘호텔 슬리퍼(상품명이 진짜 HOTEL SLIPPERS!)’를 신고 있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었죠. 쩝.
자, 그럼 다시 뜨또 이야기로 돌아가 볼까요?
수천억 대 자산을 보유하고도 비렁뱅이 꼴을 잃지 못하는 셀럽 ‘뜨또’, 그는 대체 왜 저러고 다니는 걸까요?
한때 “Scumbro 스컴브로 패션”이라는 용어가 대두됐던 적이 있습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쿨하고 불친절한 스타일을 자랑하는 오늘의 주인공 ‘뜨또’와 ‘피트 데이비슨’, ‘조나 힐’ 등이 스컴브로 패션을 대표하는 셀럽들이었는데요,
스트리트웨어 베이스의 무척 엉성하고 편안한 옷차림을 보여주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은근히 비싸고 괜찮은 브랜드가 막 섞여있고, 패션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척 게으르고 느긋한 표정을 지으며 대충 눈에 보이는 아무 옷이나 걸치고 나온 듯 보이지만,
기실 누구보다 패션에 진심일지도 모르는, 그렇게 다소 아이러니한 패션 안티 히어로들의 스타일을 일컫는 용어였습니다.
그들은 자주 되는대로 막 입고 다니지만, 존재 자체가 빛나는 스타이기 때문에 그러한 상반된 가치가 서로 충돌하면서 자연스러운 호기심과 관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Anyway 사회적 권력과 부를 가진 남자들이 대충 편하게 옷을 입고 다니는 모습은 늘 흥미로운 화젯거리가 되곤 합니다.
사람들은 나를 표현하기 위해 옷을 멋지게 꾸며 입기도 하지만,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에서 옷을 차려입기도 하는데요,
그래서 언제든 원하는 대로 또 내키는 대로 편하게 옷을 입을 수 있는 성공한 남자는 괜히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패션에 있어서 진실로 중요한 것은 무얼까요.
얼굴? 돈? 권력? 브랜드? 편집 능력?
뭐 다 맞는 말이지만요,
개인적인 생각을 밝혀보자면,
1. 작고 사소한 디테일에 나만의 의미를 부여할 줄 아는 문화예술적 취향
2. 스스로를 너무 귀하거나 진지하게 여기지 않는 저자세의 여유
3. 번듯하게 갖춰진 당위에 대한 유머러스한 저항 정신(마치 뜨또의 호텔 슬리퍼처럼)
이렇게 3가지 감각이 입혀지고 깃들 때에 한 사람의 패션이 보다 매력적으로 빛나보일 수 있는 것 같아요.
음, 그건 그렇고 뜨또의 호텔 슬리퍼 패션을 이야기하다가 이상하게 멀리도 와버렸네요? 요즘 폼이 많이 죽었던 패션 카테고리 포스트를 다시 많이 올리려고 하니까요, 많은 관심 부탁드릴게요.
감사합니다!
■ 오늘 함께 듣고 싶은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