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과 오스카 수상 힙합 그룹 'Three 6 Mafia'
새벽 3시에 전화가 울렸다. 누나였다. 복통이 심해 응급실에 가는데, 당장 보호자가 필요하다고 했다. 옷만 대충 갈아입고 병원으로 정신없이 뛰어갔다. 다행히 큰 일은 아니었고, 여러 가지 기본 검사를 진행했다. 나는 침대 옆 간이 의자에 가만히 앉아 눈을 감고 기다렸다.
의사 선생님은 여러 병상을 돌아다니며 개별 증상을 묻거나 검사 결과를 설명했다. 바로 옆 침대에서 한참 배를 부여잡고 있던 다른 여성 분에겐 추가 CT 촬영을 권했다. 자궁에서 혹이 발견된 모양이었다. 돌아서는 의사 선생님에게 여성 분이 CT 촬영 비용은 얼마나 드는지 물었다. “검사할 건 하셔야죠.” 또 다른 침대의 보호자 아저씨는 곧 일하러 가봐야 한다면서 어머니가 혼자 돌아갈 수 있겠는지 여부를 의사 선생님에게 물으며 자꾸만 손목시계를 보았다.
응급실 안에서 들려오는 돈과 일 이야기가 나를 슬프고 우울하게 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이 보이는 복도로 걸어 나왔다. 그리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3시간이 말없이 흐르고, 아무 이상 없다는 누나와 말없이 병원 밖으로 걸어 나오는데, 이미 해는 말없이 밝아 있었다. 헐레벌떡 뛰어온 길은 그대로 두고, 이번에는 지하철에 올라타기로 했다. 긴장이 풀렸는지 갑자기 졸음이 몰려왔고, 지하철의 에어컨 바람이 유난히 차게 느껴졌다.
“이제 더위가 가시고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누구라도 감상에 젖기 시작하겠죠. 그러니까 하는 말인데요, 일단 아프지만은 말자구요. 그럼 더 서러워지잖아요.”
91년 결성된 멤피스 출신의 랩 그룹 ‘Three 6 Mafia’, 훗날 힙합 씬의 헤비메탈에 비견되는 크렁크(crunk) 음악으로 진화한 “벅(buck)” 사운드를 개척하고, 90년대 남부 힙합의 기틀을 닦았다.
95년에 공개한 데뷔 싱글 “Tear Da Club Up”이 팬들의 폭동을 선동한다는 이유로 클럽 금지곡으로 지정될 정도로 한때 논란의 중심에 있던 그룹이었지만,
테네시주 멤피스 출신으로는 최초로 음반 판매 플래티넘 인증을 기록하고(심지어 언더그라운드 앨범으로 골드 인증을 득하고), 2006년에 열린 제7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영화 <Hustle & Flow>(2005)의 주제곡 “Hard Out Here for a Pimp”로 Best Original Song 상을 수상했다.
해당 노래는 Eminem의 "Lose Yourself" 수상(2003년) 이후 두 번째 오스카 초이스 힙합 음악이 되었고, 특히 힙합 그룹으로서는 최초로 오스카 무대에서 직접 공연하는 역사적인 순간을 만들었다. 그리고 (남부) 힙합이 메인스트림 엔터 산업 속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드높였다.
포주 노릇하기 겁나 빡센 거 알잖아.
집세 값 땡기려고 발악하고,
캐딜락 기름 값으로 돈도 다 털리지.
인간들은 뒤에서 험담이나 쳐 해대고!
"Hard Out Here for a Pimp" 중에서
영화 <Hustle & Flow>(2005)는 멤피스 출신 포주이자 길바닥 허슬러인 주인공 DJay가 중년의 위기를 맞지만, 친구들과 함께 고단한 삶의 이야기를 담은 노래를 만들며 성공한 래퍼를 꿈꾸고, 새 삶을 개척하는 과정을 그린다.
나의 때를 기다리는 투쟁과 생존의 기록 말이다.
영화 속 이야기처럼 힙합 음악 역시 다 자기 때가 있다. 그날이 오면 비로소 왕창 이해받기 시작하고, 사람들의 귀가 열리는 것이다.
남부 힙합만 놓고 봐도 그렇다.
오랫동안 동부와 서부의 그늘에 있더니만, 2000년대 초반, 트랩, 크렁크와 같은 서브 장르와 애틀랜타의 So So Def, 뉴올리언스의 Cash Money, No Limit 같은 남부 기반 레이블 그리고 Three 6 Mafia를 위시한 관련 아티스트의 성공과 함께 판도가 변했으니 말이다.
없다면 모르겠지만, 있는 현실을 말하는 정직한 음악 장르가 힙합이 아닐까 싶다. 달리 말해 환경이 바뀌면, 다른 얘기를 기꺼이 꺼낼 수 있는 현실적인 음악이 힙합이고, 그래서 같은 조건을 경험하지 않고는 이해할 수 없는 목소리가 또 힙합이라는 것이다.
하위 장르나 지역 사운드의 뿌리를 찾고, 그 변천 과정을 세심히 따라가며 힙합 음악을 즐기면, 시장을 바라보는 새 눈과 흐름을 읽는 감각이 트일 것이라 확신한다. 특히 그땐 안 들렸던 히트곡 샘플과 사운드의 원천을 만날 때면 숨은 보너스 트랙을 만난 듯 기분이 좋아진다. 십수 년의 텀을 둔 유사 스타일의 힙합 음악 속 주제와 소재의 변화를 비교하며 그때마다의 의식을 느껴보는 재미도 쏠쏠할 것이다. 반복하건대 힙합 음악이란 시대와 세대의 날 것 같은 생각을 정직하게 반영하는 세상 현실적인 장르이기 때문이다.
이번 주말, Three 6 Mafia? 미치지.
https://youtu.be/FCDXwGwgXso?si=Cs70fN2sAlbguQB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