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곡갑 트래비스 스캇과 빈티갑 트래비스 눕피
지난 주말에 열린 트래비스 스캇의 첫 내한 콘서트에 다녀왔다.
■ 한줄평: 공연은 짧았고, 날씨는 추웠고, 음향은 나빴고, 지진은 안 났다.
영업 종료 임박을 알리는 안내 방송은 언제나 사람을 다급하게 한다.
백화점, 서점, 카페, 아니, 장소 불문이다.
약 30분 늦게 시작한 공연은 <UTOPIA>(2023)의 마지막 트랙 ‘TIL FURTHER NOTICE'와 함께 급히 막을 내렸다. 해당 곡은 개인적으로 꼽는 4집 앨범 최고의 트랙인데,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겠지요. 다시 만나기 위한 약속일 거야.”라든가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다음에 또 만나요." 같은 식으로다가, 무려 월드 투어 콘서트의 궁색한 이별 노래가 될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러닝 타임, 대충 1시간 30분.
나랑 장난 지금 하냐?
푸른 빛깔을 뿜어대는 무대 디스플레이와 함께, 메트로 부민과 제임스 블레이크의 예술 같은 이별 연주곡이 마무리되고, 앵콜을 기대하는 무수한 관객들의 순수한 기대감을 개박살 내듯, 경기장의 백색 조명이 눈치 없이 눈 부시게 켜졌다.
그리고 한 남성 진행자의 한국어 멘트가 들렸다.
"안내 방송에 따라 질서 있게 퇴장해 주세요."
장난 지금 나랑 하냐?
그리고 벌써 이틀이 지났군.
돌아보니, 기억에 남는 것은 스캇의 마른 장작 같은 몸매와 불필요한 표정 연기 그리고 한곡갑 아티스트를 자처하는 그의 FE!N 6연타뿐이었다. “HIGHEST IN THE ROOM”의 인트로가 흘러나와도, 당최 무슨 노래가 시작된 건지 알 길이 없으니, 제때 흥이 나질 않던 콘서트의 음향 문제는 참 슬펐다.
나만 그랬어?
내 귀만 막귀야?
"스눕피식 회상 TMI"
[1] 반성: 초대권으로 간 주제에 혓바닥이 길었다. 나는 염치가 없나?
[2] 패션: 경기장 안팎으로 존경스러운 패션 피플이 많았다. 이게 말이 될까?
[3] 관찰: 3층 지정석, 내 자리 바로 앞에 하이네캔 맥주 캔을 손에 들고, 검정 후드를 뒤집어쓴 이센스 형이 앉아 있었는데, 이 형이 공연 초반부의 어떤 곡에선가 슬쩍 일어나 리듬을 타려다가, 주변 눈치를 보고 다시 앉았다. 그리고 잠시 후 어디론가 사라졌다. 묘연하군?
[4] 닉값: 옆자리에 친친(친한 친구) 사이로 보이는 여성 네 분이 나란히 앉으셨고, 그들과 나는 가운데 빈자리 하나를 두고, 그것을 공용 선반처럼 활용했는데, 대한민국 대표 스눕피로서 내 에코백 옆에 놓인 어떤 분의 귀여운 스누피 파우치가 탐나서 몇 번인가 훔쳐봤다. 닉값은 과학인가?
[5] 여운: 킨텍스역으로 향하는 길 위의 어떤 승용차 안에서 스캇의 “Mamacita”가 크게 흘러나왔다. 다소 짧았던 콘서트의 여운을 자기 주도적으로나마 즐기려는 모양이었다. 한편, 나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귀갓길에 프랭크 오션의 “Nikes”를 재생했다. 한번 맛도리는 영원한 맛도리죠?
2주 전 주말, 결혼식 참석 차 도쿄에 들른 김에 시모키타자와에서 빈티지 쇼핑을 하였다.
빈티 나는 차림을 하고, 식은땀을 줄줄 흘려가며, 그렇게 빨빨 거리며 나는 카레 냄새 풀풀 풍기는 그곳을 부지런히 싸돌아다녔다.
그리고 (지극히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장면.
1. 썩어 문드러져 가는 칼하트의 위세는 여전하다. 어딜 가나 칼하트 투성이. 앞으로 5년 더? 빈티지 칼하트는 웬만해선 통수를 치지 않을 것 같다.
2. 몇 번인가 고민하다 내려놓은 90년대 갭의 네이비 컬러 아노락 폴리 재킷이 귀국 후에도 눈에 엄청 아른거렸다. 한화로 18만 원 정도 했는데, 마침 요새 사고 싶던 새 신발값이라 내려놓았다. 인연이면 언젠가 또 만나겠지? 90년대 GAP은 분명히 고유한 매력이 있다. 정직하고 헷갈리지 않는 디자인과 아낌없는 소재 활용.
3. 라떼는 '쭉티'라 불렸던 얇은 긴팔 티셔츠 군단(대체로 00년대 아이템 같았다)이 참 아름다웠다. 예나 지금이나 핏 좋은 쭉티는 참 귀합니다. 넥 라인이 어찌나 예쁘게 울고 있는지, 로고 프린팅은 또 어쩜 저리 예술처럼 벗겨지고 있는지!
답도 없고, 탈출구도 없는 곳, 거기가 바로 빈티지 세상이다.
■ 오늘 함께 듣고 싶은 노래
https://youtu.be/zptRsa1pqsk?si=LbbityIWiaMorDR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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