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가든 일단 살면서 가자는 다짐
이사 준비로 바빴다.
올해 또 새롭게 묶이게 될, 자기 통제력을 상실한 나의 전세 보증금.
묻고 더블로 스치듯 안녕이다.
잘 가!
곱하기는 찾아볼 수 없는, 그저 더하고 빼기만 하는 더럽게 정직한 인생.
토막나지 않음에 감사해야 하나요?
매년 제자리걸음 같아도 문득 뒤돌아보면 다른 시공간에 서있다. 그리고 마지못해 씩 웃는다. 위인지 아랜지 감도 못 잡은 채로. 바보 같이 두리번거리고 서성거리면서 때때로 멍하니.
하릴없이 나이만 까먹는 게 징그럽게 싫다던 어른들의 말이 무언지, 이제야 조금, 정말 조금 알 것 같다. 그러나 변화를 기대할 수 있는 인생의 에너지는 청춘의 희망이고 축복일 것이다.
얼마 전에 임대차계약서를 쓰는데, 주인 분이 78년생이란 걸 알았다. 나랑 띠동갑이군?
복덕방의 어색한 공기가 싫어, 눈치를 살살 보다가, 앞으로 잘 부탁드린다고 말하니, 자기가 해야 될 이야기를 대신해준다면서 쿡쿡 웃으신다. 계약금 몇 백만 원을 입금하고, 문서를 챙겨 서둘러 돌아가려는데(십프피에겐 곤욕의 시간이니까),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부동산에서 빌려 준 우산 하나를 주인 분과 나눠 쓰고, 갈라지는 길까지 가쁘게 걸어가며 어색한 몇 마디를 나눴다.
무슨 일을 하는지,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어떤지.
나머지는 기억이 안 난다.
나는 내고, 그녀는 받고. 둘이 반대의 삶을 살지만, 주고 받아야 세상이 돌아간다는 사실에 다소 멍청한 뿌듯함을 느낀다.
그리고 어디로 가든 일단 살면서 가자고 다짐한다.
에리히 프롬 센세께서는 언젠가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생각을 없애기 위해서는 남다른 ‘지성’이 아닌 다른 ’성격‘이 필요하다고.
독립과 모험심 그리고 인생을 사랑할 줄 아는 마음처럼.
그러니까 제 더러운 성격을 먼저 좀 고치라는 말씀이시죠?
글쎄요, 힘들겠는데요.
■ 오늘 함께 듣고 싶은 노래
https://youtu.be/_V47x6iFCh4?si=v5JVMKrr6joEYK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