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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혜선 Nov 06. 2018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

네덜란드 바로크 미술에 대하여

그림 수다. 첫 번째 이야기

네덜란드 헤이그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Mauritshuis)은 헤이그 특사, 만국평화회의 등으로 우리에게도 익숙한 도시 네덜란드 헤이그(The Hague)에 위치해 있습니다.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에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작가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작품뿐만이 아니라 렘브란트(Rembrandt van rijin)와 같은 네덜란드 황금시대인 17세기 대가들의 작품을 함께 볼 수 있습니다. 마우리츠하위스는 그 규모가 아주 크진 않지만, 컬렉션의 퀄리티가 상당하며, 굉장히 밀도 높은 전시를 즐기실 수 있는 미술관입니다.  






17세기 네덜란드 바로크 미술

마우리츠하위스에서 작품을 좀 더 재미있게 보기 위한 관람포인트는 17세기 네덜란드 바로크 미술에 대한 이해입니다. 1) 바로크 미술이란 2) 바로크 미술이 감성적이며 극적인 특징을 갖고 있는 이유 3)네덜란드 바로크 미술의 특징 4) 17세기 네덜란드 미술의 황금시대가 가능했던 이유 5) 네덜란드 바로크 시대 대표 작가의 6)네덜란드 정물화, 풍경화 순서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바로크 미술이란?

감성적이고 극적인 바로크 미술

르네상스 미술의 진일보한 기술, 웅장한 스케일과 마니에리즘/매너리즘 (르네상스 미술에 대한 불안과 동요로 시작, 르네상스 미술의 요소를 과장하고 왜곡함) 미술의 감성적이고 격정적이며 극적인 요소가 결합된 것이 바로크 미술(1600-1750)입니다. 바로크미술은 미술사에서 가장 화려하고 탁월한 시기로 자리매김합니다. '바로크'란 용어는 허세 부리고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다는 부정적인 의미로 종종 사용되지만, 17세기는 렘브란트나 벨라스케스와 같은 예술적인 천재를 배출했을 뿐만 아니라 미술의 영역을 일상생활로까지 확장시킨 시기입니다. <참조: 클릭 서양미술사>




바로크 미술이 감성적이며 극적인 특징을 갖고 있는 이유는?  
수학과 과학의 발달로 사물의 형태 자체보다는 그 형태가 주변과
어우러지는 전체적 모습을 보다 중요시 하게됨


바로크미술이 등장하게 된데에는 철학과 과학의 영향이 있었습니다. 철학에서는 데카르트가 등장하였고, 과학에서는 케플러가 등장했습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말로 유명한 테카르트는 인간의 이성으로써 존재를 증명하는 세계를 인식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시하였습니다. 케플러는 행성이 타원궤도로 공정하는 이유를 수학적으로 밝혀내었는데요, 우주 역시 수학적으로 나타낼 수 있음을 증명한 것이었습니다. 

기존의 학문은 세계나 사물의 존재(being) 그 자체에 의미를 두었고 때문에 형이상학적 철학이 학문의 주류를 이루었습니다. 즉 사물이 가지고 있는 본질 등에 집중을 하였고 사물의 존재(being) 그 자체에 의미를 두었던 것이죠. 그러나 수학과 과학을 토대로 한 법칙은 이러한 개별적 존재에 집중하는 것이 아닌, 모든 존재에 적용되었습니다. 즉 법칙은 사물, 혹은 세계의 운동을 설명하는 것이고 이러한 것은 동적인 성격을 가지게 된 것이죠. 쉽게 설명하자면 바로크 미술에서는 사물의 형태 자체보다는 그 형태가 주변과 어우러지는 전체적 모습을 보다 중요시하였던 것입니다. 바로크 시대에 들어와 법칙들이 등장하면서 사람들은 존재보단 그 존재에 적용되는 동적인 것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고 미술 역시도 같은 방향으로 변화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바로크 미술은 르네상스 미술에 비해 굉장히 동적이면서 화려한 미술로 탄생한 것이다.

<참조:https://m.blog.naver.com/the-nopi3/220931256583>




네덜란드 바로크 미술의 특징
신교국 네덜란드에서는 미술의 소재가
정물화, 초상화, 풍경화, 풍속화 등 일상생활로 확대


바로크 시대는 1600년경 로마에서 시작되었는데, 이 당시 로마 교황청은 반종교개혁 이후 자신들의 승리를 자랑하기 위해 엄청나게 사치스러운 성당이나 예술 작품을 통해 신도들을 끌어모으고 그들의 시선을 압도하려는 목적으로 예술 활동을 적극 후원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가톨릭 국가에서는 종교미술이 전성기를 맞았고 반대로 영국과 네덜란드 같은 북부 유럽의 신교국에서는 종교적 그림을 그리는 것이 금지되었습니다. 따라서 네덜란드와 같은 유럽의 신교국에서는 미술의 소재가 정물화, 초상화, 풍경화, 풍속화 등 일상생활로 확대되었습니다.




17세기 네덜란드 미술의 황금시대가 가능했던 이유 
중산계층 대중들의 예술 후원과 열성적인 미술품 수집열 

네덜란드는 신교가 지배적인 독립된 민주국가로 종교화가 금지되어 있었고 성당, 왕실, 귀족 계급과 같은 미술의 주요한 후원자들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미술의 주제와 소유권이 민주화되었습니다.미술가들은 역사상 처음으로 미술 판매 시장을 통해 작품을 거래하지 않으면 안 되었는데요, 다행히 부유한개 네덜란드 중산계층은 미술품 수집에 열성적이었고 미술품의 수요도 끊임이 없었다고 합니다. 다른 유럽국가들과 다르게 중산계층의 대중들이 예술을 후원했기 때문에 미술품의 수요가 끊임 없이 있었고 이러한 열성적인 미술품 수집열 덕분에 수많은 화가들과 높은 수준의 미술품들이 쏟아져 나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네덜란드 바로크시대 대표 작가 : 렘브란트, 베르메르


렘브란트,초상화로 명성을 얻다.


렘브란트

좌. [마르텐 솔만스 초상] 1634, 캔버스에 유채, 207x132.5 cm / 우. [오프옌 코피트 초상] 1634, 캔버스에 유채, 207x 132.5cm

렘브란트는 역사화가가 되는 것이 그의 야심이었으나 개신국 공화국 네덜란드에서는 종교나 역사, 신화 주제의 대작을 주문할 교회나 궁정이 없었습니다. 미술품의 주요 수요자는 네덜란드의 시민, 즉 상인을 중심으로한 중산계급이었는데 활동 초기 렘브란트는 이러한 고객의 초상화가로 명성을 얻었습니다. 이 작품에서 보이듯 인물의 사실적인 묘사, 음영의 뚜렷한 대조, 엄청나게 큰 솔만스의 구두 장식을 비롯해 다양한 옷감으로 이루어진 의상의 완벽한 재현은 당시에 렘브란트를 가장 주목 받는 초상화가로 만든 요인이 되었습니다. 





<깃 달린 모자를 쓴 남자> 1635-40년 사이

대담하고 두꺼운 물감 사용법은 렘브란트 회화기법의 특징입니다.이는 붓으로 물감을 두껍게 칠한 후 밝은 부분은 팔레트 나이프를 사용하여 손가락 절반 굵기의 두꺼운 물감을 임파스토 기법으로 발라나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작품을 제작하면 표면이 울퉁불퉁하여 빛을 분산시켜 반짝거리는데, 대신에 어두운 부분은 엷게 유약을 칠해 빛흡수를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 그림은 밝은 부분인 얼굴과 어두운 쪽의 모자, 옷의 대비가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는데요, 밝은색 부분인 얼굴은 두텁게 물감이 발려 있어 울퉁불퉁한 표면을 갖게 되고, 결과적으로 빛을 분산시켜 더욱 반짝여 보이게 합니다. 반대로 어두운 부분은 엷게 칠해 빛이 흡수되어 더욱 어둡고 깊은 느낌을 주고 있는 것이죠. 









순수하고 밝은 색감, 베르메르

베르메르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1665

베르메르는 렘브란트 다음으로 유명한 네덜란드 화가입니다. 그가 남긴 작품은 35~40여 점에 불과한데, 작품들은 매우 꼼꼼하게 제작되어 있다고 합니다. 빛의 사용법에 능란한 화가로 인정받는 화가입니다. 또한 다른 화가들이 회색, 녹색, 갈색을 주로 사용하는 데 비해 베르메르의 색채는 보다 순수하고 밝은색을 사용한 것이 특징적입니다. 










카메라 옵스큐라, 그리고 푸엥틸레


<우유를 따르는 여인> 1658

베르메르는 자신의 소묘에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 '카메라 옵스큐라'를 사용하였습니다. 그는 단순히 투사된 영상을 베끼는 데 그치지 않고, 물감 사용법도 매우 혁신적인 방법으로 사용했습니다. 보통은 세부묘사에 치중한 부드러운 화필을 사용하였으나 때때로는 그림의 표면 위에 도드라지도록 점을 찍어 거칠고 진동하는 듯한 3차원적인 질감의 느낌과 함께 빛의 반사율을 돕도록 했습니다. 이를 '푸엥틸레'(pointillés) 라고 하는데요, 베르메르는 수백 개의 점을 엷게 칠해 빛을 표현해 내고 있는 것입니다. 빵의 질감이나 우유가 담겨있는 병입구쪽 묘사부분을 보면 잘 이해 할 수 있습니다. 






'카메라 옵스큐라'란 작은 구멍이 뚫려있는 검은 상자로서 반대편에 있는 사물의 영상을 투사하여 종이 위에 흔적을 남기는 장치입니다. 



네덜란드에서 발달하기 시작한 정물화

네덜란드 정물화

회화의 한 장르로서 정물화는 종교개혁 이후 네덜란드에서 발달하였습니다. 

비록 다른 나라에서는 열등한 회화 형태로 

무시당했지만, 17세기 네덜란드에서는 뛰어난 사실주의적 기법의 정물화가 정성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독립된 장르로 다루어지기 시작한 풍경화
네덜란드 풍경화
반 루이스달 < 풍차가 있는 풍경> 1665

바로크 시대 이전에 풍경은 그림 전면의 대상 뒤에 그려지는 배경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네덜란드 화가들은 풍경을 그 자체로 독립된 장르로 다루기 시작했습니다. 네덜란드 풍경화가들은 광대한 하늘 위에 떠다니는 구름을 즐겨 그렸으며 자연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데 치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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