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에 관한 이야기
우리 집에는 몇 개의 요리책이 있다. 밥 짓는 법부터 소갈비찜까지 우리네 식탁에 올라오는 다양한 가정식 조리법을 알려주는 '진짜 기본 요리책'이랑, 시리즈인 '진짜 기본 세계요리책'. 아이들 이유식과 유아식을 위한 책들도 몇 권 있고 다이어트를 위한 요리책들도 있다.
결혼하고 나 혼자 먹는 한 그릇 요리가 아닌 가족들을 위한 밥상을 준비하게 되면서 난생처음 밑반찬들을 만들게 되었더란다. 누구나 그렇듯이 네이버에 '무생채 만들기'. '메추리알 장조림 황금레시피' 등을 검색해서 따라 만들었다. 접근하기는 쉬웠으나 수십 가지의 레시피 중에 어떤 게 맛있을지 알기 어려웠고, 계량하는 기준이 통일되지 않아 복잡했고, 전에 봤던 레시피를 다시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남편이 찾았던가, 내가 찾았던가? 앞서 말한 '진짜 기본 요리책'이라는 서적을 구입하게 되었다. 인터넷에 널린 게 레시피인데 굳이 살필 요 있나 했지만, 막상 이용해 보니 인터넷 검색과는 차원이 달랐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한 스푼이 아빠숟가락인지 계량숟가락인지, 한 줌은 어느 정도를 말하는 건지, 센 불은 어느 정도의 불꽃을 사용하는 건지 자게 설명되어 있었다. 단계별 설명과 사진이 자세해 따라 하기 쉬웠고, 어떤 음식을 만들어도 맛있었다. 한 번은 무생채를 만들어 시댁에 나눠드렸는데, 시아버지께서 어머님이 만드신 것보다 더 맛있다고 하셨을 정도였다. (며느리 손맛이 아니라 레시피 책의 위력이었다.)
너무 책이 맘에 들어 주변 친구들에게 소개했지만 구입하는 경우는 없었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면 된다는 것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으니 이해하지만 아쉬울 따름이다.
브런치에 모인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책을 출간하길 원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나름의 테스트를 통과하여 브런치에서 작가로 활동하고, 글을 쓰고, 출판을 위해 노력한다. 어디 그게 쉬운가? 좋은 글을 써서 책까지 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이 플랫폼의 이용자라면 어렴풋이라도 알고 있을 것이다.
블로그에 올린 글과 책으로 출간된 이야기는 다르다. 수많은 사람들이 블로그에 요리비법을 올리지만, 그중 꾸준하고 인기 많고 맛이 검증된 것들이 책으로 출판된다. 저자는 요리책을 만들기 위해 레시피를 다듬고, 사진을 찍고, 순서를 정리하고, 설명을 곁들인다. 그것을 많은 사람들이 (나는 그 과정을 잘 모르지만) 함께 교정하고 편집하고 시간과 자원을 들여 종이책으로 만들어 세상에 판매한다. 책을 구입하는 것인 그 모든 일련의 노력과 시간을 구입하는 것이다.
물론 세상에 좋은 책만 있는 것은 아니다. 종이책으로 나온 모든 정보들이 훌륭하고, 믿음직하고, 좋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책을 만들기 위해 중요한 내용을 보기 좋게 정리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은 사실이다. 정보가 범람하여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지 조차 어려울 때는, 그래도 그중에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여 만들어진 종이책을 선택해 보면 실패의 확률이 줄어든다. 불조절도 어려웠던 내가 각종 밑반찬을 만들어낼 수 있던 것처럼, 어떤 분야이든 한 권의 책을 읽으면 기-승-전-결에 대한 이해가 생긴다. 자기가 뭘 모르는지도 모르는 막막한 상황에서는 탈출할 수 있게 된다. 별것 아닌 것 같아 보이지만, 중요한 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