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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희 Nov 08. 2018

인생에 쉼표가 필요한 시점

  임신할까? 하는 고민이 드는 요즘. 가족계획을 세운 것도 아니고, 아이를 갖고 싶은 것도 아니다. 그냥, 지금 상황에서 도망갈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이고 확실한 수단이라는 생각이 든다. 도피성 선택은 옳지 않은 길로 갈 확률이 높다고 생각해 왔음에도, 이렇게 스트레스 많고 무기력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한 단 하나의 탈출구처럼 느껴진다.


  지금까지의 삶은 가히 모범적이었노라 칭할만하다. 부모의 자랑인 자식이었고 한순간도 쉬어본 적이 없었다. 학업을 마치고 취준생 시절을 겪어볼 새도 없이 취업해 결혼 적령기에 새신부가 되고 나니 게임 속 메인 퀘스트를 훌륭히 수행하고 있는 기분마저 들었다. 거대한 남초 직장에 동기들 중 단 한 명의 여성으로 입사하면서, "이래서 여자는 뽑으면 안 된다니까." 하는 이야기를 듣지 않으려고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았고,  "네가 잘해서 이번에 여직원들을 많이 뽑았나 봐."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했다. 스스로 목표를 부여하고 그것을 이루어나가는 과정은 내 삶 전반에 걸친 힘의 원천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정말 쉬고 싶다.


  여가시간의 팔할을 차지하던 독서도, 절약의 이유였던 여행도 싫다. 게임도 골치 아프고 그렇게 재밌던 악기 연주도 귀찮다. 예상보다 이른 승진이 예고되어있고 상도 받았지만 무슨 소용인가 싶다.  아무것도 안 하고 아무 일도 안 하고 아무 데도 안 가고 일 년만 집에서 쉬고 싶다. 로또를 매주 사볼까? 건물주가 되면 좋겠다. 다른 방법으로 돈을 벌 순 없을까? 여행작가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다 꿈같은 이야기이니 임신이라도 할까,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직장에서 벗어나기 위해 육아에 뛰어들다니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스스로를 달래고 있다.

  

  학생 때처럼 방학이 있는 것도 아니니 이 무기력함을 풀어낼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체력이 문제 인가 싶어 운동을 시작하고 영양제를 구입했다. 쉬고 싶은데 쉬는 것이 아니라 다른 할 일을 찾아내는 것이 내가 살아온 삶의 모양을 나타내는 것 같아 참 우습다. 자기의 자리를 지켜온 수많은 사람들은 이런 마음을 어떻게 이겨내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비단 나만의 고민이 아닐 것인데 그냥 견디고 견디어내는 건지, 다들 자기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이 있는 것인지. 엄마에게 전화하고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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