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이 May 21. 2024

손 끝으로 욕망의 외곽을 훑어내기

저마다의 궤적을 응원하며

  욕망에 솔직해져라. 팔로우하고 있는 인플루언서가 자주 하는 말이다. 일상에서 밝은 에너지를 내뿜을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욕망에 솔직한 편이라 그런 것이었구나 싶다. 꼬여있는 사고를 해본 적 .. 사실 별로 없다. 직선적인 사람이라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은 거지 좋으면서도 싫은 일이 없었다. 최근에 좋고싫음으로 범벅된 대상이 하나 생겼다. 연애.


  미남이 좋다. 귀여운 사람이 좋고,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이 좋다. 숱한 경험으로 만들어진 취향들. 당연한 거 아닌가? 좋아하는 사람과 연애를 하는 건 당연히 좋다. 고민이 생기게 된 지점은, 연애를 하기 위해 사람이 좋아지진 않는다는 거다. (저마다의 로맨스에는 각자의 서사가 있을 법하기에 조심스럽지만) 적당한 사람과의 교제가 안 된다. 예를 들어, 나에게 잘해주는 모습에 마음이 자라나 상대와 연애하고 싶어지는 사람도 있지 않나. 대부분의 관계에서 팔로워가 아닌 리더 롤이기에 연인 관계에도 예외는 없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면 (이성일수록) 더더욱 관계 맺고 싶지 않다. 그런데 내가 연애하고 싶은 사람은 나랑 연애하기 싫대. 여기서부터 문제가 시작된다. 취향이 꽤 견고해서 버스의 배차 시간이 길거든.


  지나간 버스의 뒷모습을 마음에서 다 덜어내지 못한 채로, 다음 버스를 기다리며, 정류장에 남아있는 동안 연애 욕구가 거세될 수밖에 없는 .. 상황인 거다. 그런데 이제 배차 시간이 점점 더 길어지는 버스를 기다리며. 지나가는 버스 기사님을 붙잡고 밖이 너무 더우니 에어컨만이라도 쬐게 해달라고 애걸복걸도 해봤고, 텅 빈 정류장 의자에 앉아 목 놓아 울어보기도, 홧김에 정류장 표지판을 뽑아내어 노선을 이리저리 옮기기도 해 봤다. 그럼 뭐 하나, 늘 제자리로 돌아와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다음 버스를 기다리는 게 나인 것을. 예전과 달라진 점은 망부석처럼 눌어붙어 손수건에 눈물만 묻히고 있는 게 아니라, 있는 힘껏 나랑 놀아주려 애쓴다는 것. 기저귀는 새 소리에 귀도 기울여 보고 눈 앞의 풍경도 따라 그려보고 빗 속에서 달리기도 하고 그렇게.


  그러다보면 진짜 괜찮아지는 순간이 온다. 버스 같은 건 까맣게 잊고 지금 이 순간 즐거움과 평온만 가득한 상태. 튼튼한 두 다리로 어디든 누빌 수 있을 것 같고,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 버스를 기다리며 시간을 낭비하느니 내가 직접 면허도 따고 뚝딱뚝딱 버스도 만들고 싶은. 그런 때가 온다. 사실 조금 더 들여다보고 있자면 헷갈린다. 나는 분명히 사람이 좋은데 .. 나는 분명히 연애하는 시간도 좋아했던 것 같은데 .. 진짜 필요 없나? 나 진짜 괜찮나?


  그러다 문득 안 괜찮을 이유는 뭐가 있나 헤아려본다. 시기를 놓치면 연애고 결혼이고 못 하게 된다. 임출육의 생물학적 시기는 정해져 있다. 1인 가구는 경제적으로 효율성이 떨어진다. 늙어서 아플 때 곁을 지켜줄 사람이 없다 등등등. 오직 미래와 연결되어 있다. 현재는 진심으로 행복한데 미래에 대한 불안만이 날 괜찮지 않게 만든다.


  불안하면 미래에도 원하는 분야에 경쟁력을 갖춘 사람이 되면 될 일이다. 절대적으로 막아내지 못하는 요소들이 있기야 하지만 그건 현재 내 선택에 대한 기회비용이니 어쩔 수 없지. 어떤 방식으로든 현재에 최선을 다하면 후회는 없을 거라는 걸 이제는 잘 안다. 미래에 대한 불안은 있어도 과거에 대한 후회는 없는 사람이니까. 마음 한 구석에 버스 정류장 표지판을 끌어안고, 언젠가 만나게 될 수도 있는 1인분짜리 귀여운 미남을 기다리며. 세상의 시선에 지지 마. 꿋꿋이 현재를 즐겨. 여생에 미남이 없으면 또 어때. 내일의 나는 또 어떤 꿈을 꾸게 될지 모르는데. 일단 지금의 욕망에 솔직하며 나에게 최선을 다해보자구!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첫 롤모델, 바비인형 그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