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2학년 담임선생님을 추억하며
서울 00초등학교 2학년 3반 담임 이수미 선생님.
풍성하게 세팅되어 허리까지 내려오던 노란빛 갈색 머리. 작은 얼굴에 단정한 옷차림과 하얀색 스타킹. 늘 웃음을 잃지 않고 모든 과목을 가르칠 줄 알았던 완벽한 선생님. 그녀는 나의 첫 롤모델이었다. 덕분에 장래희망란에 적었던 글자가 화가에서 교사로 바뀌었으니까.
나는 아홉 살이었고, 선생님은 서른두 살이셨다. 연상의 남편과 알콩달콩 일상 얘기를 종종 들려주셨고, 네 살짜리 아들과 함께 살고 계셨다. 어떻게 이렇게 잘 기억하냐고? 학창 시절을 통틀어 유일하게 사이가 좋았던 담임선생님이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에서 일하고 있는 지금, 예전의 나를 돌아보자면 골칫거리로 교내에서 꽤 유명했을 것 같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성적은 늘 1등이었지만 치맛바람은 거의 없었음.
2. 굉장히 산만하여 수업 진행을 어렵게 만들지만 본인 건 기똥차게 수행해내고 구김 없이 밝아서 다루기 힘든 부류의 어린이였음.
3. 또래와 갈등이 있을 땐 남녀를 가리지 않고 줘패서 피를 본 경험이 연 1회 이상은 있었음.
4. 궁금한 게 있으면 참지 않고 질문하는 어린이였음.
.. ADHD 성격을 지닌 우등생이라니 .. 피곤한 학생이었겠다 싶다. 담임선생님들께서 내게 수동공격을 유독 많이 하셨던 건 이런 이유에서였던 것 같다. 교실에선 유별나고 문제 행동을 일으키지만 그러면서도 학교를 대표해서 상을 받는 이상한 모범생이었으니까. 그럼에도 수미선생님한테서는 서늘하고 축축한 눈초리를 받아본 기억이 없다.
학교에서 일하다보면 내가 맡은 학급의 학생이 아니더라도 이름을 외우게되는 아이들이 있다. 그리고 새학년 담임이 배정되면 그 학생과 선생님의 궁합이 맞을지 아닐지 대충 가늠이 되는데, 나와 수미선생님은 궁합이 맞는 사람들이었을까? 학창 시절은 내게 썩 유쾌한 기억이 아님에도 선생님과 함께했던 1년은 또렷하고 행복하게 남아있다. 2학년 때 담임 선생님을 잘 만나 미간이 펴진 우리학교 S 군처럼 나도 .. 그랬을까?
지금의 내 나이는 (한국나이로) 서른둘. 그 시절 선생님의 나이이다. 학교에서 애들한테 화를 한 바탕 아니 여러 바탕내고 심신이 지친 오늘, 잠들기 전 샤워하면서 문득 그녀 생각이 났다. 나는 선생님 기억 속에 어떤 아이로 남아있는지, 선생님은 내 기억 속에 어떤 의미로 남아있는지 이야기 나누고 싶어졌다. 아홉 살 왈가닥 골목대장 예지가 서른두 살 초등학교 도서관대장이 되어 씩씩하게 아홉 살 어린이들과 함께하고 있다고. 여전히 상사에게는 다루기 힘든 사람일테지만 어린이들에게는 다정한 어른이 되어주려 노력하고 있다고. 꽤 괜찮은 어른이 되었다고 자랑하고 싶다. 그 시절 따뜻하게 대해주셔서 감사드린다고, 덕분이라고도 꼭 말씀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