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그저 감사한 일만 있을 뿐.
발렌시아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나는 개인여행을 하기 위해 다음날 새벽 6시 10분에 마요르카로 가는 비행기를 타고 7시 30분에 도착해, 마요르카에서 9시 40분에 다른 비행기를 타고 노르웨이 스타방에르로 가는 계획이었다. 마요르카에서 경유하기 위해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2시간 30분. 나름 꽤 여유 있는 시간이라 생각했고, 나는 큰 문제없이 노르웨이에서의 여행을 시작할 수 있겠다는 섣부른 설렘을 안고 공항 근처에 숙소 침대에 내 몸을 맡겼다.
그렇게 다음날 새벽 3시 30분이 되었다. 어젯밤 미리 샤워를 한 나는 알람 소리가 들리자마자 입은 옷 그대로 가방을 챙겨 공항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거기다가! 가는 길 중간에 비행기를 타고 가는 스페인 가족 덕분에 구글 맵에 나오지 않는 지름길을 통해 내 설렘을 시작해줄 공항에 더 일찍 도달했다. 야호! 이후, 석연찮게 낸 추가금도 감히 내 설렘을 막지는 못했다. 그렇게 탑승 게이트 앞에 자리를 잡고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5시 50분에 모든 상황은 변했다. 꽤나 다이내믹하고, 화가 나도록.
비행기 시간은 6시 10분, 보통 탑승 수속을 15-20분에 한다고 생각하면 5시 50분에 탑승 수속장에 직원이 아예 안 나타는 건 매우 이상했다. 그리고 이상하다 생각하는 순간 내 뒤에 단체티를 입고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던 무리가 뭐라뭐라 쑥덕거리는게 내 귀에 들리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탄성이 나오며 다 같이 어디로 이동한다. 어, 이거 뭔가 잘못됬다. 난 그제서야 비행기 현황판을 봤다. 현황판에 내 비행기 옆에 “INF 60 min”이라고 하는 불길한 글자가 쓰여있다. 그렇다, 연착된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 때까지도 그래, 60 min이라고 하니 1시간 정도 연착이 되었다는 얘기겠지, 하며 침착하자고 스스로 되뇌었다. 그러나 큰 착각이었다. 7시가 되니 새 출발 시간이 11시 30분이란다. 그렇다, 나는 자동으로 두 번째 비행기를 놓친거다. 으어, 이 때에 얼마나 화가나고 멘탈이 어질어질 하던지.. 그래도 다행히 가족과 여자친구와 통화를 통해 내가 어떻게 해야할지 알았다. 그래, 어떻게해서든 노르웨이 가리..!
이후 내 아이폰은 불이났다. 연착된 Ryanair, 놓친 두 번째 비행기의 항공사인 Norwegian air, 그리고 여행 대행사였던 Trip 닷컴에 전화를 돌리고 또 공항 내 Ryanair의 고객센터로 가서 막 따지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돌아오는 대답은 'point-to-point', 즉 자신들과 Norwegian은 다른 항공사니 자신들이 보상해줄 의무는 없다는 것이다. '하, 그래 너네 돈 쓰기 싫다 이거지?'라는 생각부터 얼마나 화가나던지. 이후 대행사와도 여러차례 통화 후 결론은 새로운 항공권을 끊어서 넘어가는게 낫겠다는 것이었고, 불행 중 다행이라 해야할까, 이 날 저녁 암스테르담으로 날아가 그 다음날 아침 스타방에르로 출발하는 네덜란드 항공사 KLM의 비행편을 예약할 수 있었다. 예약을 하고 나는 다시 시내로 나가 만원 짜리 추리닝도 사고 (스페인 물가 최고다!), 돌아다니다가 다시 돌아와 드디어!!! 암스테르담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렇게 나는 암스테르담 공항에 밤 11시30분에 도착했다. 공항 주위는 온통 어두움이 내리 앉아있었다. 난, 자야했다. 새벽 3시에 일어나 롤러코스터를 타고 암스테르담에 도착하니 무지하게 피곤했다. 비록 동행이 없어 소매치기를 당할 위험이 있지만 이 순간에는 그럴 위험이 있더라도 난 2-3시간이라도 자야했고, 난 공항이리저리 누울만한 곳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구석진 곳에 푹신해보이는 회색 시트의 롱벤치를 찾았다. 거기다가 파란색 담요 2개도 그곳에 놓여있는게 아닌가. 여기다, 여기가 오늘 내 쉼터다. 난 바로 간단한 세면을 하고 자리에 누워 가방을 끌어안고서 3시간동안 잠을 청했다. 다행히도 어떤 물건도 훔침당하지 않았고 난 다음날 아침 드디어 염원하던 노르웨이로 출발할 수 있었다.
롤러코스터가 멈추고, 스타방에르로 가며 만 하루동안 있었던 순간들을 곱씹어보았다. 그러다보니, 불만과 화만 많았던 그 순간들 가운데 오히려 감사할 거리가 군데군데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비행편을 구해야하는 급작스러운 상황에 괜찮은 가격으로 새 항공편을 구했고, 이 항공편은 연착 없이 잘 출발했고, 암스테르담 공항에서 노숙을 성공적(?)으로 할 수 있었던 것들이 그런 것들이다. 그래, 사실 이런 것들이 당연하지 않다. 비행기가 없을 수도 있었고 현재 파업이 심한 유럽 항공의 상황가운데 이 항공편도 연착이 당연히 될 수 있었고, 또 잘곳이 없을 수도 자면서 알지 못하는 누구에게 내 물건들을 빼앗길 수도 있었다. 근데 그러지 않았고, 감사하게도 노르웨이에 잘 넘어가고 있었다. 이 생각을 한 순간 창문 밖으로 밝은 하늘과 구름이 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불이 내 앞에 있을 때 불만 보기 급급한 사람이다. 불의 시선이 뺏겨 그 앞에 있으면 눈도 아프고 열기 때문에 힘이 들기도 한다. 그렇게 불이 꺼지면 나도 다 진이 빠지고 힘이 든다. 그런데 왜 그 불에만 시선을 계속 두고 있는 걸까? 그 불이 너무 강하고 뜨거워서일까. 그런데 사실 그 불을 보고 있는 건 나 자신이다, 뒤로 한 발짝 갈 수도 있다. 그렇게 뒤로와 주위를 보면 그 불이 있는 곳은 작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시원함을 느낄 수 있고, 힘이 들지 않는다. 방금까지 뜨겁고 힘들었던 순간이 시원하고 감사한 순간으로 참 쉽게 변한다. 그래 맞다.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 그저 감사한 일만이 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