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년 5월 27일 J&Brand 블로그에 기고했던 글을 약간 수정한 것입니다.
2020년은 1970년생이 만 50세가 되는 해였다. 정부통계나 노년학에서는 65세 이상을 고령자, 노인으로 분류한다지만 소비자 집단으로서는 보통 50대부터 고령자, 시니어로 분류한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X세대의 중심이었던 70년대 생이 처음으로 50대가 되는 해라는 건 새삼 의미심장하다.
역사상 가장 분방했던 세대가 시니어가 된다 - X시니어의 등장
90년대에 20대를 보낸 1970년대생들은 이전 세대와 달리 훨씬 풍요롭고 자유로우며 개방적인 20대를 보냈다. 세계화의 흐름 속에 일본, 그 다음엔 미국, 그리고 다양한 글로벌 문화에 노출되면서 다양한 취미를 즐기고 개성적인 취향을 갖기 시작한 세대로, 랩과 레게, 힙합 등 기성세대에게 기괴하게 보였던 신 문물에 처음으로 열광했던 사람들이 50대로 접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또한 만성적인 저성장 국면이 오기 직전 호황기를 성년으로서 겪은 마지막 세대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베이비부머들과 달리 디지털 문외한도 아니고, 자신을 위해 돈을 안 써 본 것도 아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부터는 이전 세대와 그 다음 세대보다 성취감도 충분히 누려 봤다. 유년 혹은 청년 시절의 경험과 생각들이 쌓여 중장년 이후의 삶을 좌우한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이들이 시니어가 되었을 때 이전과는 사뭇 다른 그림이 펼쳐질 것이라는 예상이 충분히 가능하다.
어떤 세대보다 남다르고 제멋대로였던 세대, 그들이 시니어가 되어 가고 있다
10~20대 때의 경험으로 형성된 자의식이 평생을 지배한다
누구나 동년배 지인들과 이런 얘기를 나눠 본 적 있을 것이다. “역시 노래는 옛날 노래가 좋구나!” 젊은 시절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할 수 있었던 시절의 기억과 경험이 평생 지속되는 취향과 태도를 결정한다. 2018년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열풍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이들에게 열광하려면 최소한 과거의 그들이 어떤 전설의 주인공이었는지, 그리고 그 시절에만 존재했던 낭만에 대한 노스탤지어가 있어야 한다. 영화의 N차 관람, 동 시대 배경과 문화에 대한 재조명에 이어 레트로를 필두로 기성세대의 향수를 자극하는 마케팅이 뒤이어졌던 상황을 떠올려 보자. 과거 [퀸]에 열광했던 세대, 처음으로 힙합과 랩 뮤직에 열광하고, “나는 나”라고 외쳤던 세대가 시니어가 된 후에도 시니어에 대한 규정이 “배려 받아야 하는 세대, 케어 받지 않으면 부족한 세대”, “개성적인 취향 없이 시니어라는 이름으로 통칭할 수 있는 세대”에 머물러 있어도 괜찮을까?
강렬하게 등장했던 X세대의 20대를 기억한다면, 가장 치열한 시절을 지나 시간적, 경제적 여유를 지닌 X시니어로 돌아올 그들을 위한 브랜딩은 달라야 한다. 즉, 시니어에 대한 획일적인 규정, 시니어가 되면 갑자기 건강에만 신경을 쓰고 세상 물정을 모르게 되며 케어가 필요할 것이라는 시각을 탈피해야 한다. 디지털은 정보의 평등을 가져다 주었고, 디지털 세상이 익숙한 새로운 시니어들은, 과거 젊은 시절의 풍부한 문화적 경험과 개성을 추구했던 태도, 현재 젊은 세대보다 여유로운 시간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더욱 활발하게 자기만족을 추구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시니어는 우리 모두의 미래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 [상실의 시대]를 통해 “죽음이란 삶의 대척점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 녹아 들어 있다.”고 말한다. 삶과 죽음, 그리고 그 사이를 채우는 나이듦의 과정은 이분법적으로 분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겪을 수밖에 없는 일련의 과정이라는 의미다. 따라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시니어가 될 미래를 예비하고 있다. 다만 마음의 나이는 몸의 나이에 비례하지 않는다. 이미 철이 들고 성숙한 이후에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경험이 쌓이고 시야가 넓어질 뿐이다.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다른 가치를 위해 절제할 수는 있으나,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좋아하는 것, 하고싶은 것이 줄어들거나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결국 시니어는 우리 모두의 미래다. 개개인이 가진 취향, 한 세대가 공유하는 문화와 경험, 기술이 가져다 준 편리와 평등, 시니어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은 그렇게 달라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