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년 5월 9일 J&Brand 블로그에 기고했던 글을 약간 수정한 것입니다.
젊음이란 가능성이다. 인생을 특정 방향으로 규정짓게 될 선택의 지점들이 이미 선택한 것보다 많이 남아 있는 시절이기에 그렇다. 물론 양 갈래, 혹은 그 이상 몇 갈래의 길 앞에서 불안정과 불확실함에 한없이 흔들린다. 그러나 눈 앞에 펼쳐진 다양한 가능성 앞에 좀더 만용을 부릴 수 있는 시절이기도 하다. 언제는 젊음이 하나의 특징이나 특질로 규정된 적이 있었을까 마는, 이처럼 종잡을 수 없이 다양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에 젊음은 늘 궁금증의 대상이다. 어떤 시대든 젊은이들의 생각과 행동은 이전에 쌓인 히스토리나 데이터가 없기 때문에 앞으로 어떻게 변해갈 것인지 예측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동시대 젊은이들의 생각과 취향과 삶의 방식은 새로운 고객을 맞이해야 하는 기업과 브랜드에게 영원한 탐구의 대상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도 궁금해 – MBTI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은 스스로도 자기자신을 탐구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듯 하다. 최근 대학생들 사이에서 MBTI가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MBTI 테스트가 어제오늘 존재했던 것은 아닌데, 나온지 80년이 넘었다는 성격유형 테스트가 대학생들에게 다시금 유행하게 된 시점은 소셜데이터 언급량 추이로 볼 때 대략 2019년 가을 무렵이다. 요즘 흔히 그렇듯이 어떤 미디어나 콘텐츠 혹은 인플루언서가 재조명 한 것이 최초의 계기로 추정되는데, 어쨌든 이것이 점차 상승세를 타더니 연말 기말시험과 종강을 앞두고 치솟았다가, 방학 기간 중 다소 잠잠했던 것이 온라인 개강과 함께 급격히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따져보자면 관계를 관리하고 형성하는 데 집중하게 되는 시점이다.
'MBTI' 소셜 언급량 분석 - 2019. 1~2020. 4.19 (출처 : 대홍기획 소셜빅데이터분석솔루션 디빅스2.0)
갇히고 싶지 않지만 규정되고 싶은,
다르고 싶지만 이해 받고 싶은 모순
이런 심리테스트가 제공하는 해석 내용은 대체로 긍정적이고 이상적이다. 그래서 결과 해석을 보는 것 자체가 즐겁고 "내가 이런 면이?" 라는 놀라움을 얻기도 한다. 또한 타인에게 내가 어떤 사람인지 마치 객관적으로 느껴지는 도구의 형태를 빌어 알려줄 수도 있다. 정리해 보면 이러한 유행의 기저에 깔린 심리의 초점은, 관계를 유지하고 형성하는 데 있어서, 나의 특징과 특별함을 쉽게 이해시키고 싶은 욕구에 있는 것이다.
출처 : 카카오메이커스
영원한 젊음의 아이콘, "컨버스"
그럼 이번엔 브랜드로 눈을 돌려보자. 여기, 100년이 넘는 히스토리를 가졌음에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젊음의 브랜드가 있다. 스니커즈의 아이콘, 컨버스(converse)다. 브랜드가 표방하는 메인 타겟은 젊은이 중에서도 아주 젊은, 10대 후반부터 20대 초반이다.
컨버스의 시그니처 아이템, 1917년 농구코트를 최초로 밟은 농구화 '척테일러 올스타'는 2017년에 무려 100주년을 맞이했다. 이후에도 잭퍼셀, 원스타 등 전설적인 신발들을 만들어 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동시대 패피들에게 ‘기본템’으로 지칭되는 아이템이며, 시즌 한정판이나 새로운 컬러, 콜라보 제품을 내놓을 때마다 매진과 resell의 행렬이 이어지는 그야말로 핫한 브랜드이기도 하다.
출처 : 컨버스 공홈
시대를 관통하는 젊음의 보편성
컨버스가 100년의 세월을 넘어 젊음을 유지해 온 비법은 무엇일까? 컨버스는 스스로 "우리는 당신이 알고 있는 것 중 가장 새로운 것(We’re the newest thing you’ve known all along.)"이라고 말한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많이 팔린 신발이면서도 ‘당신이 알고 있는 것 중 가장 새로운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자신감은 젊음의 보편적 특성을 시대에 맞게 변주해 온 헤리티지로부터 기인한 것일 게다.
컨버스는 youth spirit을 창의성, 반항, 대담함(creativity, rebellion & daring spirit)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것은 일종의 태도다. 어떤 시대든 젊은이들은 경험이 적고, 관습에 젖지 않았으며, 새로운 것에 더욱 신나게 반응하게 마련이다. 또한 동시대 젊은이 모두에게 어필하려 하지도 않는다. 그들 중에서도 가장 창의적이고 새롭고 실험적인 것에 호응하는 소수 집단을 목표로, 컨버스가 규정한 젊음의 보편성과 그들의 문화 코드를 교차시켜 시대에 맞는 젊음으로 변주해 낸다.
컨버스는 그렇게 락앤롤, 펑크, 그런지 등 youth spirit을 대변하는 하위문화(sub culture)의 탄생과 성장을 함께 했으며, 하위문화가 성장하여 주류로 편입되면 또 다시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문화 코드 혹은 아이콘을 찾아 나섰다. 가장 베이직한 아이템으로 캐주얼부터 포멀룩까지 다양하게 매치할 수 있는 브랜드, 그러면서도 시즌 별 한정판과 컬러, 커스텀, 콜라보를 통해 새로움을 잃지 않는 브랜드다.
다양한 커스텀 컨버스들
지난 2월 공개된 컨버스의 [좋아하는 것을 계속 좋아하자] 캠페인은 자기 스스로도 자신을 규정하지 못하는 Z세대에게 “내가 좋아하는 것을 전부 모으면 그게 바로 나”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어떤 말로도 그들을 규정하지 않았다. 다만 스스로를 어떻게 규정할 수 있는지 알려줬을 뿐이다.
2020년 2월 < 컨버스 [좋아하는 것을 계속 좋아하자] 캠페인 > 출처 : 포스트비주얼
젊음, 비정형의 정형성
젊음은 규정하기 어렵다.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특정한 문화나 코드를 붙잡고 가만히 있는다면 타겟이 늙어감에 따라 브랜드도 함께 늙어버린다. 그래서 젊은이의 브랜드를 표방하는 것은 어렵고도 위험한 일이다.
그러나 시대가 아무리 변한대도 결코 변하지 않는, 시대를 관통하는 젊음의 보편성이 있다. 그것은 바로 “젊음은 규정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최근 MZ세대에 대한 관심과 연구는 사실 유난스러울 정도였다.
오히려 젊은 타겟을 목표로 하는 브랜드라면, 현재 젊은이들이 어떤지를 연구하기 보다는, 시대를 관통하는 젊음의 보편성과 브랜드 컨셉 혹은 아이덴티티를 어떻게 교차시킬 것인지 궁리하는 것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브랜드를 현재 젊은이들 특성에 끼워 맞출 것이 아니라, 그들의 드러난 현상 이면에 있는 젊음의 보편적 특성, 젊음의 태도가 어떤 지점에서 나의 브랜드와 교차할 수 있는지 탐구해 보는 것이 더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그러한 탐구를 통해 비정형의 젊음 속에 내재된 정형성을 꿰뚫어 보는 혜안을 가진다면, 10년 후, 20년 후에도 젊음의 브랜드로 영속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