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 산림치유지도사가 들려주는 자연감성 라이프스타일 이야기
나는 1991년 가을에 경북 구미에서 태어났다. 1990년대의 구미는 백색가전, 전기전자를 주력으로 하는 대규모 산업단지가 조성되어 있었다. 부모님 차를 타고 지나가다 파란 하늘에 하얀 연기가 자욱한 공장들이 모여있는 산업단지를 바라본 기억이 있다. 내가 살았던 동네는 그런 공장들의 이미지와 거리가 있었다. 산업단지와 거리가 멀진 않았지만 나는 산과 논밭이 둘러싸고 있는 듯한 곳에서 생활했다. 도시환경을 경험해보지 못해서 그런지 몰라도 나는 산이나 논밭이 있는 자연환경을 좋아했다. 어려서부터 키와 덩치가 큰 탓에 빠르지는 않았지만 학교를 마치고 온 동네를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게 일상이었다. 지금도 가끔 마음이 답답한 순간에는 그 시절을 종종 회상한다.
초등학교 방과 후에는 동네 친구들과 학교와 집 근처에 있는 앞산에 올라갔다. 긴 나뭇가지를 들고 전쟁놀이와 지형과 나무를 활용하여 숨바꼭질 등 야외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놀이들을 즐겨했다. 사계절 내내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눈이 오면 눈이 오는 대로 온몸으로 즐기며 신나게 놀았다. 그 당시에도 집에 게임기와 컴퓨터가 있었지만 집 안에 있는 건 따분하고 지루하게 느껴졌다.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늦은 시간까지 동네 친구들과 밖에서 노는 것이 좋았다. 누구나 어릴 때 집 밖에서 뛰어놀던 기억이 있겠지만 나는 유독 밖을 좋아했다. 집 근처 아파트 단지 안이나 공원에도 놀이터가 있었지만 규모도 그리 크지도 않았고 시설 상태도 좋지 않았다. 그래서 놀이터보다는 같은 또래인 동네 친구들과 주택가 골목을 뛰어다니며 동네 앞산을 더 놀이터처럼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산길이 험한 곳도 있었고 벌이나 뱀 등 야생동물도 흔하게 볼 수 있어서 위험한 곳이기도 했다. 경사가 급한 곳에서 넘어져 산 아래로 굴러 떨어져 다칠 뻔한 적이나 나뭇가지에 찔리거나 긁혀서 피가 난 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크게 다친 기억이 없던 것을 지금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후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직전에 인천으로 이사를 갔다. 인천에서 초중고를 다오고 성인이 되어서는 지하철을 타고 서울로 대학교를 다녔다. 점점 도시생활에 익숙해지면서 어린 시절만큼 자연환경을 온몸으로 느끼지는 못했다. 그래도 어린 시절의 추억이 남아있어서 자연환경을 친근하게 생각했다. 등산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동네에 있는 산을 올라가 산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만큼은 즐겼다. 운동이나 스트레스 해소의 목적으로 산이든 숲이든 공원이든 자연환경이 있는 곳을 찾고 싶어 했다.
환경교육의 측면에서 주로 사용되는 개념이지만 어린 시절부터 자연과 가까이 지냈기 때문에 자연에 대한 감수성, 즉 생태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이 되었다. 자연이 주는 다양한 자극을 받아들이고 느끼는 감수성은 나를 더 다채롭게 만들어주었다. 자연의 변화를 오감으로 느끼면서 그 속에서 온전히 나를 찾아보는 것이 나를 위한 행복이라 생각했다. 나는 그런 자연을 더 깊이 좋아하게 되었다. 대학교 4학년이 될 때쯤에 '산림치유지도사'라는 직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숲이 주는 치유 요소를 사람들에게 전하는 일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그렇게 '산림치유지도사'라는 직업이 내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