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nny Choi 메덴코 Dec 12. 2023

운동선수에서 개발자로 커리어를 바꾼 라트비아 남편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끈기가 없다'라는 말을 자주 들어왔다. 하지만 나중에 느낀 점은 나는 끈기가 없는 것이 아니라 '미련하지 않은 것'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스스로의 한계는 본인이 정한다고 하지만, 나는 나의 한계점을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죽어도 하고 싶지 않은 일인지 혹은 못할 것인지를 빠르게 파악했고 아닌 것은 쉽고 빠르게 내려놓았다. 즉 여러 분야에서 실패를 참 많이 했고 결국 나는 내게 맞고 잘하는 길을 찾아갔다. 누군가에는 노력이 부족하고 끈기가 없는 사람으로 보였을지 모르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는 나의 과감한 선택들이 현명하게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매사 무언가를 진득하게 못하는 나와 달리 나의 남편은 덴마크에서 나를 만나기 전, 15년 동안 운동선수로 살아왔다. 그는 5살 때 부모의 권유로 처음 아이스하키를 시작했다고 한다. 첫 해는 차가운 빙판 위에서 수없이 넘어지고 또 넘어지면서도 울었다고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본인이 원하는 것인지 아닌지 알 겨를도 없이 아이스하키 선수로 살아왔다고 했다. 그는 빨리 세계적인 스포츠 스타가 되기로 마음먹었다고 했다. 그 이유는 그동안 그를 뒷바라지해 주느라 등골이 휜 부모님을 위해 효도하고 싶어서였다고 했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그가 진정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라트비아에서 유망주로 성장하던 그는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고 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지?'


외길 인생을 걸어오던 그는 19살이 되던 해 갑자기 방향을 잃기 시작했다. 유망한 선수였지만 이보다 더 높이 갈 수 없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더 이상 운동을 죽어도 하기 싫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지금 그만두기엔 너무나 멀리 왔다고 느꼈던 그는 크나큰 내적갈등을 겪었다. 그리고 20살이 되던 해, 그는 돌연 아이스하키 선수 생활을 접기로 했다. 은퇴를 한 후 아이스하키 코치가 아니라 뜬금없이 개발자가 되겠다고 했다고 한다. 그러자 가족들은 모두 충격을 받았고 그를 뜯어말렸다. 부모 말에 거역 한번 하지 않았던 착한 아들이 일생 최초로 부모가 원하는 것이 아닌 본인이 원하는 길을 선택하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그는 선수 생활을 관두고 덴마크에 유학을 왔다. 20살이 된 그는 0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결코 쉽지 않았다고 했다. 난생처음 제대로 공부를 하게 된 그는 본인이 원하던 개발자가 되겠다는 집념으로 학업에 집중했고 지금은 어느덧 8년 차 개발자가 되었다. 모두가 그를 말렸고 안될 거라고 했을 때 그는 용기를 냈다. 그는 내게 놓아야 할 때를 아는 것도 정말 큰 힘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이미 시작했기 때문에, 너무 오랜 시간을 투자했기 때문에라는 변명들로 그를 가두었던 것 같다고. 그리고 지금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21살,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에 여전히 어린 나이었다. 하지만 15년 동안 해온 일을 그만둔다는 것은 엄청난 결정이자 고난이 따랐을 거라 생각한다. 누군가에겐 패배자로 비칠 수도 있고 지나온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제든 그만둘 수 있는 용기, 미련하지 않은 것도 하나의 실력이자 힘이라는 생각을 한다. 또한 새로운 길을 가기로 마음먹었을 때 뒤를 돌아보지 않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나는 그를 존경한다. 단순히 커리어를 전환에 성공해서만은 아니다. 용기를 냈다는 것 그 자체, 그리고 더 이상 과거를 돌아보지 않고 현재를 충실하게 살아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아이스하키 세계챔피언이 있을 때마다 부모님과 가족들은 그에게 "네가 그 자리에 있어야 했는데" 혹은 "네가 저 사람보다 잘 뛰었는데"라는 말을 하며 그를 원망했다. 이제는 아주 오래된 일인데도 말이다. 가족들은 그런 식으로 종종 그의 마음을 아프게 하곤 했고 나는 그럴 때마다 화가 나 시부모님을 원망하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에게 다시 한번 일러준다.


"타인을 만족시키기 위해 태어난 거 아니야. 그게 설령 나의 부모라도, 가족이라 할지라도 말이야."


나는 남편을 보면서 또 한 번 깨달았다. 내가 스물이던, 서른 살이던, 마흔 살이던, 쉰 살이든 간에 무엇을 시작할 용기와 열정이 분명하다면 무엇이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말이다. 그 누가 뭐라 하던 결괏값이 어떻든 간에 내 인생은 내가 결정하고 책임지면 되는 거라고. 그리고 하나의 길을 선택했다고 해서 결코 그 길로만 가야 한다는 법은 없다. 세상엔 다양한 기회라는 문이 있다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