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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 Choi 메덴코 Jan 16. 2024

세명의 '오페어' 동남아시아 친구들

대략 10년 전, 덴마크에 처음 왔을 때는 지금보다 더 아시아인을 보기 힘들었다. 그래서 그 당시 마주쳤던 많은 덴마크 사람들이 내게 오페어로 이곳에 왔냐는 질문을 꽤 많이 했었다. 나는 그때 처음 오페어에 대해 알게 되었다.


'오페어 (Au Pair)'란 외국인 가정에서 일정한 시간 동안 아이들을 돌보는 대가로 숙식과 적은 급여를 받는 것을 의미한다. 흔히 아는 유모 혹은 가정부와는 조금 다른 형태로 일종의 문화프로그램이다. 그래서 자유시간이 상대적으로 많고 일의 비중이 크지 않다고 한다. 따로 '오페어 비자'가 존재하는데 오직 만 18세 이상 26세 이하까지만 발급된다고 한다.


부유한 덴마크 가정에서는 오페어 제도를 활용하는 집이 많다는 것을 이때 알게 되었다. 우연히 만나게 된 필리핀에서 온 친구들은 대부분 오페어 비자를 받고 덴마크에 살고 있었다. 그들은 노르웨이에서도 오페어를 해보았고 덴마크로 넘어와 생활하고 있었다. 계약이 한 가정에서 최소 6개월에서 최대 1년이라, 매년마다 이동을 해야 한다고 했다.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오페어의 취지에 맞게 아이를 돌봐주는 경우도 있지만, 간혹 가다 어떤 집에서는 마치 가정부처럼 집안일 혹은 잡일을 도맡아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국가에서 사는 것보다 더 여유롭고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어서 오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내가 알게 된 오페어로 덴마크에 오게 된 세 명의 친구는 각각의 다른 운명이 주어졌다. 만 26살이 되기 전까지 덴마크에서 오페어 생활을 하며 삶을 이어나가려고 했던 한 베트남 친구는 한 호스트 가정의 지원을 받아 덴마크에서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덴마크인과 유럽연합 국민은 누구나 무료로 교육을 받을 수 있지만 제3의 국가에서 온 외국인의 경우 비싼 학비를 내야만 한다. 하지만 그럴만한 여력이 안 되는 그녀를 위해 호스트가 학비를 대신 내주었고 그녀는 학생 비자를 받게 되어 현재는 학교를 모두 마치고 덴마크에서 취업까지 하게 되었다.


그중 한 필리핀 친구는 오페어가 끝나기 전 스페인으로 넘어가 불법 이민자가 되기로 했었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몇 년 전만 해도 스페인에서 불법체류를 하더라도 4-5년 정도 지내면 영주권이 나온다고 했다. 그녀는 필리핀으로 돌아가느니 스페인에서 불법체류자가 되어 새로운 삶을 싶다고 했다.


또 다른 필리핀 친구는 덴마크인과의 결혼을 통해 인생을 역전시키기로 했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본인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결혼이라고 했다. 이미 부모님은 돌아가시고 없고, 다시 필리핀에 돌아가면 가난에 찌들어 죽을 수도 있다고 했다. 본인이 살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을 이곳에서 찾아야만 한다고 했다. 설령 사랑 없이도 괜찮다고 했다. 그만큼 간절하다고 내게 이야기했다. 처음에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마음이 복잡하고 여러 감정이 공존했다. 한편으로는 그들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선택에 안타까웠다. 또 동시에 내가 한국에서 태어나 대한민국 여권을 소지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감사함도 들었다. 부모와 국적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순전히 운이라 그 누구도 선택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이 생각이 깊어졌다.


결국 마지막 그 친구는 우연이 아닌 계획대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덴마크에서 결혼을 했고 더 이상 필리핀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온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다. 함께 그녀를 알고 있던 주변의 반응은 엇갈렸다. 그녀가 이렇게라도 새롭게 삶을 살아갈 기회를 얻은 것에 대해 축복해 주는 이가 있는가 하는 반면, 이 일을 계기 및 가치관 차이로 그녀와 연을 끊은 유러피안 친구들도 있었다. 순수하고 고결한 사랑을 이용했다는 것이 그들의 이유였다. 아무쪼록 그녀는 현재의 꿈처럼 필리핀을 떠나 유럽에서 살고 있다. 원하던 공부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그녀와 가까워질수록 그녀의 과거와 현재의 삶에 대해 듣게 되었다. 구걸만 하지 않았을 뿐 삶이 너무나 고달팠던 그녀의 삶. 희망이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던 앞날에 있어 그녀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의 선택은 바로 북유럽으로 오페어를 오는 것이었다. 내가 살면서 당연하게 누리던 것들이 이 친구에게는 당연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와 상황이 다르기에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참 많았다. 나를 그녀의 삶에 대입해 보았을 때 나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이 친구에 대한 평판은 여전히 갈린다. 하지만 나는 이 친구를 만나게 되면서 배운 점이 있다면 모든 상황은 나의 기준과 잣대로 판단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운 좋게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나와 유러피안 국적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단순히 이 친구를 떠나 살면서 누군가의 선택에 대해 내가 과연 옳다 그르다고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이 되지 못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냥 세상엔 이러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거나 혹은 선택하는 부류가 있구나를 배웠다.


끝으로 세상의 많은 것들이 혹은 나의 기준과 경험처럼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며, 내가 노력하지 않고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에 대한 감사함을 잊지 않게 되었다.


세 친구 모두 어디서든 더 나은 삶을 얻고 행복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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