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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싱클레어 May 15. 2024

우산과 우산

  어린 시절, 맞벌이 부부의 자녀로 살면서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은 ‘나는 절대로 맞벌이는  하지 않겠어’ 였다. 하교 때 갑자기 쏟아지는 비 틈에 여럿의 엄마 무리 중에 나의 엄마가 절대로 없을 것이라는 마음. 우산을 준비해온 친구 틈에 끼어 넉살 좋게 “야 너네집 OO아파트 지? 그 앞까지만 같이 가자” 아니면 나와 같은 처치의 친구와 “우리 비 맞고 한번 걸어 볼래?” 혹은 비가 잦아지기를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다.


  토요일 오전수업만 하고 갑자기 결성된 친구 집에 가는 약속. “너네 밥 안먹었지” 하며 선아네 엄마가 볶아주신 김치볶음밥은 내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엄마가 회사에 가지 않고 집에 계신다는 것은 혼자서 밥을 차려 먹지 않아도 되는 것이구나. 심지어 동생 밥까지 차리지 않아도 되는 것이구나. 그날 선아 엄마가 만들어 주신 김치볶음밥은 내게 적잖은 충격을 줬다.

  학교에서 받은 가정통신문에 부모님이 다시 체크 해서 회수해야 하는 안내장 안 가져오기 일 수, 담임 선생님은 안내장 회수에 불호령이 떨어지면 제일 마지막 까지 못 내는 사람. 학교 준비물은 많고 나의 노력만으로는 장만하기가 힘든데 출근하는 엄마는 그저 돈을 주며 필요한 것을 사서 가라고 했다. 그때의 준비물은 문방구에서 파는 물감, 색연필이면 오히려 다행이었다. 문방구에서 팔지 않는 화분, 당근, 재활용품 이용한 만들기 재료 같은 것들이 문제였다.

  엄마의 사정도 딱해 보였다. 현장 일 하는 엄마 그리고 아빠. 준비물은커녕 학교 숙제, 가정통신문 어느 것도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런 마음 위에 그런 마음들이 쌓여 나의 결핍을 채워줄 수 있는 엄마를 원했다. 교복도 빨아주고 실내화도 빨아주는 그런 엄마를 원했다.     


  애석하게도 결혼 n년 차부터 맞벌이가 되었다. 기저귀 찰 때부터 어린이집에 가던 아이들이라서 빠진 준비물이 없는지 꼼꼼히 살피고 또 살폈다. 맞벌이 엄마지만 아이에게 소홀하다는 인상을 남기는 것은 죽기보다 싫었다. 학교에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유독 아이들의 준비물에 집착했다. 내가 당한 곤란을 아이는 겪지 않았으면 했다. 아무리 애를 쓰고 노력하고 챙기더라도 빈틈은 여지없이 드러났다. 내 뜻과는 다르게 우산을 챙겨주지도 못했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지는 날도 있었고, 학교에 제출해야 하는 안내문은 아이가 까먹고 가방 속에서 몇일을 묵어 있었다. 아이들은 그중에서 배우고 자랐다. 선생님께 야단맞지 않기 위해 더 잘 챙기고 익히는 법을 익혔고, 우산이 없으면 학교 앞 와플집 사장님께 빌리는 방법을 택했다. 그 시절의 나와 같으면서도 다른 저마다의 방법으로 자라왔다.


  몇 해 전, 딸아이와 히사이시조의 음악 연주회에 간 적이 있다. 지브리 음악 중에 어떤 걸 좋아하냐는 나의 물음에 망설임도 없이 ‘언제나 몇 번이라도’라고 말했다. <센과 치히로>라는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음악인데 주인공 소녀의 외커플 눈매와 삐져나온 포니테일 머리가 딸의 어린 시절과 많이 닮았다. 주인공 소녀가 꿋꿋하게 역경을 헤치고 가족을 만나는 모습이 마치 엄마의 손길이 필요했던 그때의 나 같기도 하고, 딸 같기도 하다. 그 음악을 들으면 다정한 듯 슬픈 목소리가 엄마가 딸에게 이야기하는 것 같다. 그리고 제목이 꼭 맘에 든다. 언제나 몇 번이라도 우산을 들고 교문 앞에 서서 기다리고 싶다. 딸아이가 좋아한다는 그 노래가 나도 왜인지 모르게 좋다. 요즘 학교에 우산 잘 챙겨가냐는 걱정스런 질문에 아이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한다.  

    

 “엄마 요즘에는 ‘안심우산’이라고 학교에 다 비치되어 있어 걱정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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