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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거북 Sep 05. 2023

아버지가 타던 차

고인을 추모하는 우리 가족의 방식

나의 쏘렌토와 아버지의 싼타페

 우리집은 가난하진 않았지만 특유의 검소함 덕분에 가난하다고 느끼면서 자라났다. 아버지께서는 가구를 만드는 일을 하셨다. 평생 한 동네에서 살며 묵묵히 가구를 깎으셨다. 나도 방학이 되면 아버지 공장에 가서 가구를 같이 만들곤 했다.


 우리 집은 차가 없었다. 다른 친구들은 아빠 차를 타고 놀러다니는데 나는 그게 부러웠다. 내가 25살이 됬을 때 아버지께서는 차를 구입하셨다. 보통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가장 좋지 않은 시기였다.


 차를 늦게 샀지만 가족과 드라이브를 다닌 총량은 결코 다른 집에 뒤쳐지지 않을 것이다. 주말만되면 외곽의 절로, 명소로 놀러 다녔다. 구경하고 딱히 맛집이랄것도 없는 식당에서 비빔밥을 먹었다. 그리고 돌아와서 다같이 오후 낮잠을 자는게 우리 가족 주말 루틴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나는 독립을 했다. 결혼 생활은 무르익어 가고, 아버지는 은퇴를 하셨다. 그리고 동생도 독립을 할 때쯤 아버지께서는 암투병을 하셨다. 며느리 뱃속에 손주가 생겼다는 소식에 정말 좋아하셨다. 그리고 그날 입원하시고 집에 다시 돌아오지 못하셨다. 손주 소식을 마지막으로 그토록 기다리셨나보다.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했다. 30만km가 다되어가는 2001년식 싼타페는 내가 소유하게 되었다. 우리 부부 중 운전이 가능한 사람은 나밖에 없고 집에 이미 suv차량을 한대 보유하고 있다. 아버지께서는 폐차를 하라고 하셨지만 그럴 수 없었다.


 동네 주차장에 먼지가 쌓여있던 녀석을 우리 집으로 데리고 와서 정성스레 닦고 내 차 옆에 나란히 세워두는데 괜시리 눈물이 났다. 낡은 차를 타고 방방곡곡 돌아다니던 추억이 그제야 선명해졌고, 그 추억이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무서운 현실이 눈 앞을 덮쳤다.


 1년 정도가 지난 시점 싼타페는 30만km가 넘었다. 나는 아버지를 대신해 어머니를 모시고 드라이브를 다니고 있다. 그때처럼 매주 가지는 못하지만 못해도 한달에 한번은 가려고 노력한다. 이렇게 우리는 나름의 방식으로 아버지를 추모하고 있다. 아내가 면허를 따고 복직할 때가 되면 나의 쏘렌토는 아내에게 주고, 나는 아버지가 타던 차를 탈 수 있는 한 최대한 오래 탈 생각이다. 


 다음 주말쯤 되면 날씨가 제법 선선해지지 싶다. 엄마한테 연락해서 운문사로 드라이브나 가자고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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