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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거북 Feb 29. 2024

8년차 사무직의 숙소 노가다 경험기 - 3

 나는 천식이 있다. 아버지도 폐가 썩 좋지 않으셨고 할머니도 폐렴으로 돌아가셨다고 들었다. 역시 몸과 관련된 것은 유전자의 힘이 큰가보다. 처음으로 코로나에 걸렸던 2022년 봄, 코로나 완치 이후에도 기침을 세달을 했다. 덜컥 겁이 났다. 그때는 심지어 부모님 두분 다 암에 걸려 병상 생활을 하고 있던 시기였다.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폐 정밀 진단을 받았다.


 여담이지만 나까지도 그때 폐암 판정을 받았더라면 진짜 볼만했을 것이다. 우리 가족이 무슨 죄가 있어 4명 중 3명이 동시에 암에 걸리냐고 신을 저주했겠지? 다행히도 나는 큰 병은 아니었고, 다만 폐 기능이 약하고 천식이 있다는 판정을 받았다. 그것도 사실 썩 좋은 이야기는 아니다.


 아무튼 현재로 돌아와서, 건강검진을 했던 의사는 다른 노동자들은 30초안에 면담을 끝냈는데 나는 대략 5분 정도 면담을 했다. 폐 기능이 동년배 정상인의 70% 수준이고 천식이 있는데 건설현장에서 일할 수 있겠냐.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가 멍했다. 나는 천식이 있긴 했지만, 사실 일상생활을 하면서 크게 불편함을 느끼진 못했기 때문이다. 사실 천식이 있다는 사실 조차 거의 잊고 있었다.


 물론 한번씩 가슴이 너무 답답해서 심호흡을 크게 해야 하거나(그럼 주변 사람들이 한숨 쉬는 줄 알고 무슨 일이 있냐고 꼭 물어본다), 달리기를 아무리 해도 왜 거리가 늘어나지 않고 매번 처음 할때처럼 힘들지? 하는 의문이 있긴 했지만, 어쨌든 일상 생활에서는 크게 무리가 없었다.


 하지만 일상 생활에는 무리가 없지만 온갖 위험요소와 유해물질을 흡입해야 하는 공사현장은 달랐다. 의사는 웬만하면 하지 않는 것을 추천하지만, 정 하려면 반드시 방진 마스크를 착용하고 하라고 했다. 천식은 관리형 질병이기 때문에 공사현장같은 극한 환경에 노출되면 될수록 안좋아지는 속도가 매우 빠르다고 했다.


지금은 천식발작이 기침 정도지만, 나중에 악화되서 호흡곤란 같은 형태로 진화(?)하게 되면, 그때는 진짜 그야말로 일상생활에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취지였다.


 이런 사실을 숨길수는 없었다. 솔직하게 아내한테 이야기했고, 언제나 나의 건강이 최우선이던 아내는 당장 그만두고 부산으로 다시 돌아오라고 얘기했다. 하지만 나는 그러기는 싫었다. 가뜩이나 멘붕인데 출근 첫날부터 이런 추가적인 멘붕이 오다니... 마음이 아팠다.


 그래도 부산을 떠나 대구까지 왔는데 최소 한두달은 해봐야 하지 않겠나. 그 이후에 판단하겠다. 물론 최고급 방진마스크를 사서 폐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해보겠다. 라는 내용으로 다시 한번 설득작업을 했다. 건강검진을 끝내고 순대국밥을 먹었다.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몰랐다.


 멘붕의 첫날 오전은 건강검진으로 다 날아갔고, 우리는 오후에 현장으로 복귀했다. 장구류와 조끼 등을 지급받고, 첫날에는 별다른 작업을 하지 않고 자재를 양중하고 퇴근시간이 되어 퇴근했다(*양중 : 자재 등을 현장으로 옮기는 것).


 김해 현장에서 날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이 자재를 양중할 때 제법 먼 거리를 가야하고(체감상 150m 정도 됬던것 같다), 2층인데 엘리베이터도 없고, 다른 공정의 반장님들도 있고 해서 길이 좁아서 힘든 점이었는데, 1군 아파트 건설 현장이라 그런지 호이스트라고 하는 것이 있었다(*호이스트 : 아파트 건축 시 외벽에 붙어 있는 공사용 엘리베이터). 그래서 양중은 김해 현장보다는 훨씬 할만했다.


 끌차도 있어서 자재를 끌차에 싣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에 올라가 옮기고, 끌차에서 창고에 쌓아둘때만 힘을 쓰면 됬기 때문에 양중은 긴장했던 것 보다 훨씬 할만했다. 그렇게 멘붕의 이틀차가 지나갔다.

현장에서 나에게 에너지를 줬던 복숭아 음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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