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월, 리플릿의 역습
몇 년 전 한 지역의 농업박람회에 방문한 적이 있다. 그곳에는 직장인 시절 하루가 멀다 하고 만나며 술 마시고 놀았던 미국인 친구 A가 있어 겸사겸사 함께 박람회를 구경하기로 했다. 지금도 여전하지만 수년 전 농업 분야의 화두 역시 AI, ESG 였다. 특히 ‘바이오월 Bio-wall’이라는 기술이 조금씩 선보이고 있었다. 영어가 모국어인 A에게 물었다.
“바이오월이 뭐야?”
“글쎄. 인체(Bio)를 치유해주는 벽(Wall) 아닐까?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A는 잘 모르겠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우리의 부푼 기대와는 달리 바이오월은 녹색 식물이 달라붙어있는 벽을 말하는 것이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순 영어로만 되어 있는 단어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해당 현상은 이곳 농촌도 마찬가지다. 그린 푸드(Green Food), 로컬 푸드(Local Food) 등 다양한 신규 용어들도 더 이상 생소하지 않다. 이는 한때 ‘영어 공화국’이라 불렸던 한국의 교육사정과 밀접해 보인다. 영어 점수가 대학 입시나 취업에 결정적이며,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어학연수를 다녀오는 것이 유행이었다. 결국 한국은 영어가 공식어인 몇몇 국가를 제외하고 영어가 가장 자연스러운 아시아 국가 중 하나가 되었다.
물론 영어를 배우는 것이 흠은 아니다. 물적 인적 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우리는, 철저하게 교육을 통한 인력을 확보하는 것이 전쟁과 다름없는 이 시점에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일 것이다. 문제는 무분별한 외래어가 일상생활에 도입되면서 세대 간 의사소통에 문제가 생기고 있다는 것이다.
2021년 7월 보도된 한겨레에 따르면 90년 이하 출생자 비율은 전체 인구의 31.7%에 달한다. 해당 연령층은 영어를 회화 중심으로 배우고 인터넷을 통해 해외 정보를 자유롭게 흡수하는, 이른바 영어 그대로 차용된 단어에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세대다. 거기에 더해 취업에 토익점수가 의무이며 단기 어학연수의 붐을 이끈 80년대생(13.7%)을 포함하면, 영어 단어 사용에 거리낌이 없는 인구가 전체의 45.4%가 된다. 때문에 외래어(특히 영어) 사용이 사회 문제로 인식되지 못하고, 나아가 그럴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불편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단어의 난이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유심히 지켜보던 지원사업이 있었다. 농산물 가공품을 만들면서 홍보를 해야 하는데, 홍보비를 지원해주는 사업이기에 공고되면 바로 지원을 할 생각이었다. 그러다 전혀 뜻을 알 수 없는 단어를 보게 되는데, 바로 리플릿(또는 레플렛 leaflet)이었다.
‘지원 범위 : 홍보비(팜플릿 또는 리플릿 제작)’
공고에 적힌 리플릿을 검색해보니 작은 소책자를 뜻하는 영단어였다. 물론 내 영어 실력이 부족해서 단어를 몰랐을 수 있다. 그렇다 해도 4년간 해외에 있었고, 영어를 가르쳐봤던 나조차 모르는 단어를 농촌에 거주하는 대다수를 대상으로 공지하는 문서에 사용이 맞는 것인지 의구심이 들었다.
문제는 ‘리플릿’ 정도는 아닐지라도 너무도 많은 외래어가 순화작업 없이 농촌 곳곳에 스며들어 세대 간 소통 장애를 야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젊은 세대는 스스럼없이 외래어를 말하고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기성세대는 뜻을 묻곤 하지만 대부분 흘려보낸다. 이 문제를 방치해둘 경우 발생할 심각성은 필리핀을 예로 들 수 있다.
필리핀은 300년 넘는 스페인 점령기가 끝났지만 다시 미국의 지배를 받게 되는 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치욕의 역사가 있기 전부터 필리핀에는 공식 언어가 있었는데 바로 타갈로그어다(전 국민의 1/4 사용). 이후 미국의 지배 통치 기간 동안 영어가 공식 언어로 등록되었고, 다른 여러 가지 이유로 필리핀의 공식 언어는 타갈로그어와 영어가 되었다.
20대 중반, 명문이라 불리는 필리핀 대학교 재학생과 화상 강의로 영어 회화 공부를 하던 때였다. 그때 그녀가 해주는 이야기가 15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생생하다.
“마닐라에 있는 대학생은 거의 모두가 영어를 잘해. 영어를 잘한다는 것은 대학을 보낼 여력이 있다는 뜻이야. 모두 타갈로그어를 할 줄 알지만,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은 필리핀 사람끼리 있어도 영어로 말해.”
물론 아무리 외래어를 무분별하게 사용 한다한들 필리핀처럼 빈부격차를 상징할 정도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외래어 사용으로 인해 누군가는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젊은 층의 귀농이 많은 지역일수록 정보 제공 불균형을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지금은 해당 현상이 고령과 농촌이지만, 다른 연령과 도시로 퍼지지 말라는 법은 없다.
이를 막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단어 도입 초반부터 관공서의 의식 있는 외래어 배포를 들 수 있다. 특히 해당 업무를 관장하는 한글문화연대 등에서 정기적으로 교정 지침의 배포가 좋은 예다. 물론 정기적인 지침도 중요하지만 해당 활동이 필요한 이유를 제공하고 공감받지 못한다면 어떤 시도도 무의미하다.
필자는 예산군에서 쪽파를 생산하는 청년 농부다. 쪽파는 양분을 많이 먹는 다비성 작물이라 비료를 많이 줘야 하고, 병해충이 많아 까다로운 작물이다. 때문에 다른 작물을 생산하다가 간헐적으로 한 작기씩 수확한다. 연속해서 쪽파를 심는다면 기하급수적으로 병해충이 늘어나기 때문에 다들 윤작(다른 작물을 돌려가며 심는 행위)을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1년 내내 쪽파를 생산해서 가공까지 할 수 있는 이유는 절대적으로 선제 방제 덕분이다. 물론 적절한 타이밍을 산출하기까지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그 효과는 만족스럽다.
코로나 19로 신음하던 세계는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몸져눕게 됐다. 이로 인해 자본주의를 상징하던 촘촘한 세계 연결망이 느슨해졌다. 이를 보고 혹자는 예전의 세계화는 더 이상 없을 거라 말한다. 더 나아가 예전만큼 영어가(또는 외국어가) 필요한 세상은 오지 않을거라 말하는 이도 있다. 설령 그렇다 해도 우리는 수출을 해야 살아갈 수 있는 나라다. 때문에 외국어는 필수며 그 유입은 막을 수도 없고 막아서도 안 된다. 그렇다 해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해야 한다. 외래어를 최대한 우리 실정에 맞게 고쳐 쓰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미 사람들에게 널리 퍼진 후가 아니라, 사전에 그리고 정기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병해충 때문에 쪽파 밭을 갈아엎는 것처럼, 국가적으로 큰 대가를 감수해야 하는 날이 오지 않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