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대의 로봇, 요거트가 세상을 지배할 때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러브 데스 로봇’은 옴니버스 형식인 성인용 애니메이션이다. 공포, 고어, 미스터리 등등이 섞인 18편의 SF가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매 에피소드마다 감독과 장르가 달라진다. 사이버펑크를 포함한 SF 장르의 가장 큰 매력은 미래를 통해 현실과 인간, 기술에 대한 정체성과 회의적인 고찰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점에서 SF 장르에서 나올 수 있는 18개의 다양한 상상력과 표현력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매력적이었다. 18편의 각기 다른 그림체들과 색감, 연출, 분위기가 모두 달라 비쥬얼적인 요소에서도 더욱 다양하게 감상할 수 있었다. ‘러브 데스 로봇’은 앤솔로지 시리즈라는 낯선 구성 방식인데다 평소 고어물을 즐기지 않아 모든 에피소드가 만족스럽진 않았고, 나와 같이 캐릭터에 진득하게 정을 붙이며 드라마를 감상하는 스타일인 시청자들의 충성도는 얻지 못할 수 있겠지만 다양한 소재와 드라마에서 취향을 찾는 재미도 있었다. 그 중 인상에 남은 두 편 정도를 소개해보고자 한다.
1) 2화. 세 대의 로봇
인류가 멸망한 뒤, 차세대(?)의 정체성을 가진 로봇 세 대가 나와 폐허가 된 인간의 도시를 관광하며 몰락한 인간의 비효율성에 대해 코믹하게 말하는 에피소드이다. 인류와 그 사회는 잿더미가 되고 전멸했지만 고양이만은 진보하여 살아남아있다. BBC 영국 드라마 ‘닥터후’에도 미래 지구의 모습에 말하는 고양이가 나온다. 최근 개봉한 ‘캡틴마블’에서도 고양이는 인류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람들을 끌어들일 귀엽고 매력적인 소재라고만 생각하기에는 SF에 자주 등장하지 않는가. 언젠가 ‘인류미래와 고양이’라는 주제에 대해 생각해보고 글을 써보고 싶다는 재밌는 생각을 했다.
2) 6편. 요거트가 세상을 지배할 때
인류를 요거트가 지배하게 되는 세상이라니. 미국 대통령을 물러나게 하고 그 자리에 금그릇에 담긴 요거트가 놓이게 되는 장면이라니 얼마나 터무니없는 이야기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앞에도 썼듯이 SF의 묘미는 이러한 터무니없는 이야기에서 터무니 ‘있는’ 현실 풍자를 찾아내는 것이다. 지적허영심, 탐욕, 거짓으로 이루어진 탐관오리들 때문에 우리는 아주 옛적부터 얼마나 고통받고 있는가. 요거트(라고 표현되지만 엄밀히 말하면 발효균)는 과학적이고 이성적이고 공적의 존재이다. 즉 요거트의 정치는 윗대가리, 아니 높으신 분들, 아니 정치인들에게 ‘불필요한 인간성’이 배제된 정치이다. 요거트가 정권을 잡은 뒤 사회는 안정적이고 인간들의 삶은 쾌적해졌지만 요거트는 인간 정치와 지구에서의 자신의 정체성에 한계를 느끼고 우주의 다른 세계로 떠난다. ‘균’, 또는 ‘액체’가 지배하는 행성. 우주는 넓고 세계는 셀 수 없이 다양할 것이다. 충분히 터무니없지 않다.